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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Apr 14. 2019

샤넬의 '스댕' 귀걸이

그러니까 이건 60만원짜리 손가락 마디만한 스댕입니까?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돈을 쓰겠다는데 줄 서서 기다리라니. 아, 샤넬. 줄서서 기다린 게 억울해서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입장해서 구경한 시그니처 로고 귀걸이에 대해 물었다. "소재는 스댕입니까"하고 물으니 "알러지 방지 메탈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구나, 60만원 짜리 스댕. 그런데 왜 이 단단한 소재를 굳이 하얀 장갑을 끼고 다루십니까.

일전에 에르메스에서도 스카프링(이라는 용도의 손가락 마디만한 제품이 있다. 마디만한!)의 소재에 대한 탐구를 꽤 괴팍하게 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순순히 넘어갔다. 당시 점원은 "스댕이냐"는 내 질문에 예의 '메탈'이라는 대답을 했다. 이에 나는 "메탈은 금, 은을 포함하는 카테고리를 가리키는 말이고, 제 질문은 이 스카프링이 그 범주 안에 있는 스테인레스인지를 묻는 겁니다만"이라는 매우 합리적인 지적을 했다. 그러면서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스댕 아닙니까"


다행히 나는 수 년간 매진한 정신 훈련을 통해, 입점여부가 고급백화점을 가른다는 샤넬과 에르메스 매장 안에서도 전혀 주눅들지가 않았다. 그래서, 60만원짜리 귀걸이를 한 저 아줌마가 나보다 날씬하니? 그래서, 29만원짜리 스카프링을 한 저 아가씨가 나보다 피부가 좋니? 아우 진짜, 돼지 목에 진주귀걸이 많네...라는 아주 고전적인 방식의 정신승리를 이뤄낸 다음 의기양양하게 매장을 나섰다.


그러나 고백한다. 나의 경제력이 쿨하게 스댕 따위에 돈을 지불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저 매장 안에서 지갑을 여는 자들은 조그만 귀걸이가 냄비 소재 따위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놈의 '메탈'이라는 것이 결코 값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나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그들이 디자인이나 브랜드라는 매우 매우 진입장벽이 높은 가치에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못해. 결코.  


어쩌면 이 상황은 얼마나 한가한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경제력을 드러내는 베블런식 유한계급과 비슷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60만원짜리 스댕 귀걸이는, 이토록 싼 금속에도 별 구시렁 없이 여유 있게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소재요? 굳이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어떻게 일일이 그런 것까지 고려가며 사나요. 그냥 지나던 길에 귀걸이를 하나 사고 싶었을 뿐이에요"  


나? 나는 금귀걸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최후의 화폐는 역시 금 아니겠는가(라고 적으며 역시 나의 경제력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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