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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May 11. 2023

다시 요가할 결심

Welcome back to my Yoga-verse!


내가 요가를 즐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기억이 살아난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한국에서 요가 수업을 들으며 내 몸이 그걸 기억해 냈다.


작년 너무 몸을 움직이지 않고 책상에 붙어있었던 벌로 허리와 골반 통증이 찾아왔다. 한국에 간 김에 한의원에서 치료도 받고 종종 요가 수업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 되는 동작 천지였다. 예전에 쉽게 했던 동작이 하나같이 다 되지 않아 무척 당황스러웠다. 조금만 무리한 동작을 해도 금방 통증을 느꼈다. 몸무게도 불어나고 동작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따라 할 수 없어 좌절스러웠다. ‘내 몸도 노화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니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열흘을 넘기며, 신기하게도 내 몸이 조금씩 말랑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혀 못 할 것 같았던 동작들도 하나씩 기억해 냈다. 꾸준히 요가만 했어도 문제가 있다는 걸 금방 알아챘을 텐데… 미국에 돌아가면 꼭 요가를 다시 시작하리라 마음먹었다.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짐을 풀고 이튿날, 예전에 다니던 요가원을 찾았다. 팬데믹 이후 집콕에 재택근무만 했으니, 내 인생에 요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예 잊고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가’는 내 일상에 살포시 얹혀 있었던 루틴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주변에 ‘나 요가 다닌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요가는 퇴근 후 잠시 들러 하고 오는 주중 운동이었다. 반면, 주말 댄스 수업은 친구들과 항상 함께였다. 그래서인지 친구들도 나를 춤추는 걸 좋아하는 녀석으로 기억하지, 요기니(yogini, 요가하는 여자)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내게 안부를 묻는다면 “요즘도 춤추러 다니니? 발리우드는 계속 배우고?”라고 물어볼지는 몰라도, “요즘도 요가하니?”라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상기해 주는 사람도 없고 나도 요가에 그리 진심이 아니었는지, 요가는 팬데믹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 인생 첫 요가 수업을 들었던 건, 비장하게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등록한 명동의 한 피트니스센터에서였다. 당시 나는 격렬한 운동으로 살을 뺄 요량이었기 때문에, 퇴근 후 복싱이나 바디 펌프(body pump)와 같은, 강도 센 수업을 연속으로 들었다. 하루는 수업 두 개를 연달아 듣고 근육이 타이트하게 느껴지길래 스트레칭을 좀 해줘야겠다 싶었다. 집에 가기 전에 마지막 타임 수업을 들었는데, 그게 요가 수업이었다.


© dylandgillis, 출처 Unsplash


강사분은 몸이 정말 아름다웠다. 수업이 끝나고 탈의실에서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가하면 저도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


수줍게 물어보는 내게 요가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지나씨도 날씬하잖아요. 요가를 계속하면 유연성을 기르는 데 확실히 도움 될 거예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누군가의 가스라이팅으로 시작한 비장의 다이어트로 일자 몸매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요가 선생님은 날씬하면서도 볼륨감이 잡힌 소위 여성들의 ‘워너비 몸매’였고. ㅎㅎ


'나도 요가를 계속하면 저렇게 여성스러운 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점점 요가에 마음이 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문 요가원에 다닐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당시 많이 없기도 했다). 격렬한 GX 수업 사이에 스트레칭을 위해 간간이 끼워 넣어해 왔던 것이 내 요가 세계의 전부였다. 돌아보니, 요가는 내게 계란 프라이에 살짝 뿌린 소금 같은 존재였다. 없어도 먹을 수 있지만 확실히 맛은 덜한 그런 것.




이후 나는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한국에서 10년 남짓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미국에 왔다. 취직 후 첫 1년간은 회사에 적응하느라 인간다운 삶은 잠시 내려놓았지만, 2년 차부터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적어도 저녁 시간에 운동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가게 된 곳은 마운틴뷰(Mountain View)라는 곳에 요가 스튜디오였는데, ‘Class Pass’라는 패키지를 사서 시간이 될 때마다 요가 수업을 들었다. 사장님의 출장 시차에 맞춰 야근해야 하는 날이면, 아예 6시 수업을 듣고 와 조금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가기도 했다.


미국의 요가원은 한국에서 다니던 피트니스센터 안의 수업과는 많이 달랐다. 뭐가 달랐냐고 묻는다면 학생들이 다들 선생님 같았다. 다들 전문적인 요가복과 매트, 블록 등을 구비하고 있어 전문가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한참 룰루레몬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던 시기라 다들 룰루 쫄쫄이를 하나씩 입고 있었다. 요가 고수처럼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조금 주눅이 들기도 했다.


© matt909, 출처 Unsplash


운동에 더 초점을 둔 요가원과 명상에 초점을 둔 요가원을 1년 동안 번갈아 다녔다. 이후 회사 캠퍼스가 요가원에서 조금 먼 곳으로 이사했고, 새로운 캠퍼스에는 사내 피트니스센터가 생겨 더 이상 요가원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내 피트니스 수업을 통해, 나는 춤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고 요가는 다시 스트레칭이 필요할 때만 참가하는 수업이 되었다.


춤과 스트레칭용 요가의 경계를 드나들며 운동의 세계를 탐색하던 중, 직장 동료를 통해 새로운 요가원을 알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요가 매트를 어깨에 메고 나가는 두 동료가 내게 인사를 했다.


“지나, 우린 간다. 내일 봐!”


두 남자가 요가 매트를 메고 요가원에 가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지만 좋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요가는 여자가 하는 운동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나 보다.


“그래 내일 봐~ 너희 요가하러 가니?”


“응, 너도 요가해?”


“안 한 지 오래되었는데, 요즘 다시 하려고 알아보고 있어. 어디 다니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럼, Core Power Yoga라고, 못 들어봤니? 스튜디오도 깔끔하고 선생님도 좋고. 네가 핫 요가를 좋아한다면 가볼 만한 곳이야.”


대체 어떤 곳이길래… 궁금증이 폭발했다. 1주일 무료 이용권으로 체험을 해보니 일단 스튜디오가 깔끔했고 강사분들도 수준이 높았다. 사방에서 스팀이 나와 20~30분만 지나면 온몸에서 땀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한 시간 요가 수업을 듣고 나면 마치 사우나를 한 것 같았다. 짠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려 눈을 뜰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아무리 격렬한 운동을 해도 등에 조금 땀이 젖는 정도인 내게 매우 매력적인 수업이었다. 물론 운동 자체보다는 스팀으로 인해 땀이 난 거였지만… ㅎㅎ


이후 퇴근길마다 요가원에 들렀고, 1년을 넘게 그곳에 다녔다. 내가 좋아했던 수업은 ‘Hot Power Fusion: Candlelight’라는 수업이었다. 움직임이 가벼운 편이고 마지막 사바아사나(Shavasana, 시체 자세) 할 때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아로마 오일을 발라주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호로록 잠이 들곤 했다.


힘이 남는 날에는 요가와 함께 덤벨 운동을 하는 ‘Yoga Sculpt’, 일터에서 모든 힘을 소진한 날에는, ‘Candlelight’ 수업을 들었다. 퇴근할 때 제로가 된 에너지바가 충전되는 시간이었다. 한참 요가에 맛을 들이며 바카사나(Bakasana, Crane pose, 두루미 자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요가 생활의 대미를 장식할 헤드 스탠딩 자세에 야심 차게 도전하기 시작할 무렵 팬데믹이 터졌다.


© cocoachoa, 출처 Unsplash


2020년 3월 말 이후 두 달째, 요가원이 다시 문을 열 거라는 기약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멤버십을 중단시켰다. 스튜디오에서 하는 피트니스 수업은 문을 닫았고, 가끔씩 댄스 클래스를 위해 찾던 24 Hour Fitness 체인점마저도 파산 신청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 가끔 야외 댄스 수업에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활동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재택근무를 하며 나는 부엌과 식량창고를 풀구리처럼 드나들었고, 당연히 체중도 많이 늘었다. 작년 겨울에는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숫자를 기어코 넘기고 말았다. 체중은 늘었는데 체력은 반비례로 떨어진 느낌이다. 몸의 소중함도 모르고 냅다 달리기만 한 직장인의 최후인가… ㅠ


한동안 불면증이 있었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등 별로 건강하지 않은 습관이 생겼다. 팬데믹 동안 업무용 컴퓨터뿐 아니라 핸드폰 사용 시간도 늘어나면서 거북목과 어깨 결림은 더 심해졌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숨 가쁜 일상에 잠시 느리게 가도 된다고 잠시 나를 토닥여 주는 쉼표가 필요했다.




망각의 3년을 넘어 다시 요가의 세계로 귀환했다. 요즘엔 퇴근 후 요가원에 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살짝 뛴다. 특히 수업이 유난히 강도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선생님 이름을 확인하면 더욱 설렌다. 오늘은 얼마나 땀이 날까? 두루미 자세는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과연 헤드 스탠딩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명상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 오로지 외면을 가꾸기 위한 요가가 아니라 내면과 외면을 모두 아름답고 탄탄하게 가꾸는 요가가 되었으면.


캘리포니아의 봄날과 함께 요가라는 설렘이 찾아왔다.


Welcome back to my Yoga-verse!


© 지나쥬르 via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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