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폭풍우와 홍수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캘리포니아에도 봄이 찾아왔다. 어디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은 화창한 주말이지만 토요일 오후엔 내가 즐겨하는 요가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토요일 아침이 좋다. 보상 심리에서인지 원하는 만큼 침대에서 뭉개고 일어난다. 푹신한 베개를 끌어안고 뒹굴뒹굴하다 일어나면 몸이 한결 가뿐하다. 아침 루틴을 마치고 오후 요가 수업 전까지 끝내고 싶은 것들의 목표를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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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몸을 요가합니다
토요일 오후 요가 수업에 간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고속도로를 타면 10분 만에 갈 수 있지만, 봄 풍경을 눈에 담고 싶어 일부러 골목길로 천천히 돌아간다. ‘pre-conditioning’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전기차 충전소에 가기 전 ‘pre-conditioning’ 버튼을 눌러주면,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전기차를 충전하듯 나도 요가원에 가기 전 일종의 ‘pre-conditioning’을 하는 셈이다. 시속 20마일로 운전하면서 동네 풍경을 눈에 담으며 ‘요가할 마인드’를 장착한다. 회사 일 걱정은 잠시 스위치 해제, 느려 터진 파트너사와 이메일로 짜증 났던 마음도 지우개로 쓱싹. 주말엔 잠시 셔터 내리고 다음 주에 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아. :)
사람 사는 모습은 이리도 아름답다. 미국 가정집 풍경, 주인장의 개성이 담긴 각자의 정원, 그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이를 미니 자동차에 태우고 밀어주는 아빠의 모습, 신나서 만세 하는 꼬마들, 마당에 중고품을 내놓고 파는 모습,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봄이라는 계절에 손색없이 빛난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싱글 하우스를 구경하며 언젠가 저런 집에서 넓은 정원을 가꾸고 살게 될 날을 꿈꾸어 본다.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면 어느새 요가원에 도착해 있다.
요가원에는 수업 시작 15분 전에는 꼭 도착하려고 한다. 수업 시작 전까지 따뜻한 방의 온기 속에 누워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특히 인도인 선생님이 하는 토요일 수업은 인기 폭발이다. 미리미리 자리를 맡아야 한다. 스튜디오 뒤편에서 블록과 스트랩 하나를 챙겨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점점 스튜디오를 채워가고 점점 매트 옆 내 영토가 줄어든다. 웬만한 동작은 매트 위 공간을 활용하면 되지만, 매트 반경을 넘어가는 동작을 할 때 옆 공간이 너무 비좁으면, 땀에 젖은 몸이 서로 부딪히는 민망한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불편한 기색 없이 매트 펼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이 수업은 항상 주제가 있다. 선생님은 수업 시작 전 말씀하셨다.
“오늘의 목표는 어려운 동작에 도전하며 자신을 푸시하되, 속으로는 웃는 겁니다. 한계를 넘어 푸시하다 보면 얼굴을 찡그리게 되는데, 그럴수록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내면에서 한발 물러나 활짝 웃어보세요!”
© 지나쥬르 via Midjourney
얼굴을 찡그렸다 내면으로 웃는 모습을 열심히 ‘발 연기’하는 선생님을 보며 학생들도 함께 웃었다. 얼마 전에 접했던 이 구절과 맞닿아 있는 말이라 뇌리에 박혔다.
“Sometimes your joy is the source of your smile, but sometimes your smile is the source of your joy. (기쁨은 웃음의 기원이지만, 가끔은 웃음이 기쁨의 기원이 된다)"
- Thich Nhat Hahn
요가원의 유일한 인도인 강사인 A 선생님의 특징은 요가 아사나를 영어로 먼저 말해주고, 산스크리트어로 요가 용어를 읊어주는 것이다. 원어민 발음으로 아사나를 배우는 것도 꽤 특별한 경험이다. 그래서인지 매번 학생들이 바글바글하다.
요가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옴(aum)’ 진동 소리와 함께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고 기본자세를 여러 번 반복한다. 다운독, 업독, 전사 자세, 팔다리 막대기 자세는 숨 쉬듯이 하는 동작이다. 20분 정도 기본자세로 워밍업을 하면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아사나도 클라이맥스에 달한다. 푸시업, 하이 플랭크, 로우 플랭크, 윗몸일으키기, 하체 일으키기, 두루미 자세, 헤드 스탠딩 등 지옥의 후반부 코스에서 땀 한 바가지를 흘리고 나면, 모두 요가 매트에 철퍼덕 엎어져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선생님 말씀대로 힘들어도 웃어보려고 발 연기를 했더니 오늘은 동작이 안정적인 편이었다. 평소엔 균형을 못 잡아서 흔들대던 나무 자세도, 한 손으로 오른쪽 발가락을 잡고 당기니 다리가 사선으로 쫙 펴졌다. ‘오... 내가 웬일이지?’싶은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어깨나 오른쪽 골반을 많이 써야 하는 동작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지만, 오늘의 아사나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긍정의 힘이다.
수업 마지막에는 ‘행복한 아기 자세(happy baby pose)’를 하고 크게 웃는 시간이 있다. 선생님은 “Don’t be shy!”라며 맘껏 웃으라고 하는데 나는 크게 웃는 것이 왠지 조금 부끄러웠다. 내 옆의 미국인들은 마치 무대에서 연기하는 사람처럼 하하하, 깔깔깔 하며 큰 웃음을 터트린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그들의 표현력이 참 부럽다. 선생님의 과장된 연기와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터지는 웃음소리에 결국 나도 크게 웃었다.
하하하 웃음소리가 스튜디오를 꽉 채웠다.
"힘든 순간에는 더 활짝 웃어야지!"
봄날의 요가가 내게 준 마음이었다.
<봄날의 요가 II>에서 to be continued...
© 지나쥬르 via Midjourney
※ 요가 자세 용어 (본문에 '레드'로 표시): 한국어(영어) → 산스크리트어
아래로 향한 개 자세, 다운독: 아도 무카 스바나 아사나
위로 향한 개 자세, 업독: 우르드바 무카 스바나 아사나
전사 자세: 비라바드라 아사나
팔다리 막대기 자세: 차타랑가 단다 아사나
두루미 자세: 바카 아사나
역자세, 헤드 스탠딩: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
나무 자세: 브륵샤 아사나
행복한 아기 자세: 아난다 발라 아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