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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Jun 15. 2023

요가 수업 100번, 헤드스탠딩을 했다


지난 6월 6일(화)은 내게 특별한 날이었다. 요가 수업 100번째 날이었기 때문이다. 100번을 채웠다는 뿌듯함과 그간의 힘겨웠던 다이어트가 말짱 도루묵이 될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LA 디즈니/샌디에이고(San Diego) 여행에 나섰다.


100번이란 숫자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수많은 자기 계발 콘텐츠에서 100이라는 숫자를 강조한다. 자기 암시를 위한 100번 쓰기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팬데믹 떼 수많은 100번 챌린지에 참여했다. 돌이켜보면, 오프라인 삶은 최소화되고 모든 것이 온라인화되어 가는 가운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고 나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될까 봐 불안한 심리가 100번 챌린지를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싶다.


팬데믹 초기 푸시업 챌린지를 시작으로, #어예바(어제보다 예쁜 바디클럽)라는 인스타그램 기반 다이어트 챌린지 두 번 완주했고, 캘리최 동기부여 필사 100일 챌린지도 완주했다. 작년에는 혼자서 자기 암시 100번 쓰기도 했다. 다섯 번의 100일 챌린지 참여 후 내가 느낀 100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좋은 습관을 정착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

- 희망, 좌절, 두려움 등 감정 기복과 성공/실패의 과정을 극복하고 뭔가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시간

-  단지 숫자임에도 불구,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완성'의 의미가 있다.


100일의 여정은 충분히 의미 있지만, 기계적으로 하는 100번은 소용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예바 챌린지 두 번째는 인스타그램 인증이 너무 힘들어서, 70일째부터는 정말 영혼 없는 포스팅을 했던 기억이 있다. ㅎ


하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던 나 홀로 요가 100일 챌린지는 달랐다. 등 떠밀려한 게 아니었으니까. 뒤늦게 도장 깨기에 맛 들인 요가 중독자의 기록을 살펴볼까? :)


1월:

요가에 시동을 거는 시기. 팬데믹 때 떨어져 나간 회원들을 다시 모집할 요량이었는지, 요가원에서 10회 무료 회원권을 줬다. 10번 무료 수업을 들었고, 1월 말 유료 회원 등록을 했다.


2월: 

무제한 회원권을 끊어 꾸준히 다녔다. 회원권이 조금 비싼 곳이라 ‘적어도 10번 이상 수업에 가자’가 내 목표였다. 작년 이상근 증후군이 생기면서 못했던 동작들이 조금씩 돌아오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몸은 정확하게 내가 어디서 멈췄는지, 어떤 동작을 할 수 있었고, 못 했는지 깨알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3월: 

가장 저조했던 시기. 글 쓰는 플랫폼이 하나 더 늘면서 분주했던 한 달이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 폭풍우로 비바람이 몰아치고 어두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날씨가 안 좋다는 핑계로 계속 집콕.


4월: 

매일 요가 수업을 듣기에는 무리였던 시기. 어떤 날은 신기할 정도로 잠을 무지 잘 잤고 어떤 날은 근육통이 심해서 타이레놀을 몇 알 먹어야 잠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번데기에서 애벌레가 되어가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ㅋ 그래도 규칙적으로 요가 수업에 갔던 달.


5월: 

5월 중순부터는 매일 요가를 해도 몸에 큰 무리가 가지는 않았다. 6월 디즈니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그때까지 체중 목표를 달성하고 요가 100번을 채울 요량으로 열나게 달렸다.


6월: 

6월 6일부로 100번 수업을 완주하고 여행을 다녀왔다. 그간의 다이어트가 물거품이 될까 두려웠지만, 여행 동안 많이 걸어서 다행히 체중이 늘지는 않았다. 여행 가기 전 100번을 채운 건 순전히 계획적이었다. 한 달 전, 친구는 생축 저녁을 사주며 가족들과 디즈니랜드에 가는데,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팬데믹 이후 첫 디즈니랜드인데 당근 yes.




아사나의 왕, '헤드스탠딩'을 해냈다


6월 6일은 100번째 수업이기도 했지만, 수업 중 헤드스탠딩(머리서기,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 자세로 1분 동안 버텨내서 더 특별했다. 이미 4월에 <요가 다녀왔습니다>를 읽고 첫 헤드스탠딩에 성공했으나 나의 아사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잘 되고, 어떨 때는 매트에 수십 번 등짝 스매싱을 하며 넘어졌다. 수업 시간에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헤드스탠딩을 시도하다 꼬꾸라져 남의 매트를 침범하는 '우당탕탕 민폐녀'가 될 뻔했다. (다행히 남의 매트에 떨어지진 않았다)


한 번은 어떤 인도 남자가 내가 등짝 스매싱을 해대며 헤드스탠딩을 연습하는 걸 보더니 함께 온 여자 친구와 킥킥거리면서 웃기도 했다. 굴욕적인 순간은 내 파이팅에 더 불을 지폈다. '그놈의 헤드스탠딩이 뭐라고...' 넘어지는 건 창피했지만 나는 꼭 해내고 싶었다. 매일 침대 밑에서 연습을 했다. 매트리스에 떨어지면 적어도 아프진 않으니까.


수많은 등짝 스매싱 끝에 헤드스탠딩 - 뭔가 어설프지만 그래도 해냈다. 달걀(머리)을 깨지 않고 세우는데 성공! :)



4권의 요가책을 완독했다


요가 100번을 채우는 동안, 주문한 요가책 8권 중 4권을 완독했다. 요가의 세계에서는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저자의 색다른 경험을 담아서인지 각각의 책은 모두 매력적이었다.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1. <요가 다녀왔습니다>, 신경숙

'호흡의 중요성'에 대한 작가님의 글을 읽고 첫 헤드스탠딩에 성공했으니 너무나 고마운 책


2. <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 배런 뱁티스트

아사나를 잘하는 게 요가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책. 비좁았던 내 요가 매트의 세계를 더 넓고 더 깊게 만들어주었다.


3. <아무튼, 요가>, 박상아

뉴욕에서의 초보 요기니 시절부터 쿤달리니 요가를 통해 척추 떨림까지 느끼는 요가 고수가 되기까지, 성장 과정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4. <요가의 마음>, 김경리

매 챕터마다 각 아사나에 대한 이미지, 경험, 명상 포인트가 정리되어 있어 요가 교과서 + 에세이가 적절히 조합된 느낌이다. <요가의 마음>에서는 머리서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 - 달걀을 깨지 않고 세우듯이

(p.190-195)


- 이미지: 아사나 중의 왕, 뿌리를 하늘에 둔 나무, 새로움           

- 경험: 머리서기를 하기 전, 후에 발라 아사나와 사상가 아사나를 해서 척추의 긴장을 풀어준다. 팔꿈치와 옆구리 힘을 이용해 목이 너무 눌리지 않게 한다.

- 명상 포인트: 섬세함, 꾸준함, 관점과 발상의 전환            



요가, 건강하고 느린 다이어트


팬데믹을 거치며 14kg이 쪘고 (사실 급격하게 찐 건 막상 팬데믹이 끝난 작년이었다 ㅠ) 지금까지 8kg을 뺐고 아직 6kg이 더 남았다. 엄청난 TMI 지만 나처럼 먹는 대로 정직하게 살찌는 사람을 위해 이 한 몸 던져본다. ㅎㅎ 요가 만으로 살을 빼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요가 + 러닝, 요가 + 헬스, 요가 + 필라테스' 등,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하나 더 '접붙이기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 요가인 걸 어쩌리... 그냥 천천히 가는 수밖에. :)


아직 목표치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건강하게 먹으면서(적어도 지금까지 굶은 적은 없다) 아주 천천히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나이 들어 왜 그렇게 운동과 다이어트에 집착? 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10년, 20년, 30년 후 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20대에는 단 2개월에 8kg 도 거뜬히 감량했지만, 신체 변화가 매우 느리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10년 후면 신진대사도 더 저하될 거고 나잇살도 더 생길 거다. 무시무시하게 체중이 늘었던 10년 전에도 너는 해냈노라고 내 몸에 각인하고 싶어서, 오늘도 요가원 도장을 찍는다.




요가 수업 100번은 내게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었고 마음의 평화와 나의 고독력(고독을 즐기는 능력) 증강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100번을 넘긴 나의 요가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요가를 계속하면 나이 들어도 몸과 마음이 탄탄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힘이 뽀짝 솟는다.


도장 깨기에 맛들인 요가 중독자의 기록




※ 이미지 출처: 지나쥬르 사진첩,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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