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전은 내가 책임진다
새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뭘 해야 할까? 수년간 꿈꿨던 나의 로망대로라면 당장 예쁜 가구와 화분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사 가자마자 내가 시작한 일은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1인 가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안전’이다. 집 비운 동안 봐줄 사람 없고, 험한 일이 닥쳐도 혼자 해결해야 하는 해외 비혼에게 문단속은 우선순위 0번이다. 집은 아름다운 공간, 편한 공간이기에 앞서 ‘안전 공간’이 되어야 한다.
수리할 곳이 몇 군데 있어 리얼터에게 집수리 잘하는 컨트랙터(Contractor)* 연락처를 좀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다. 리얼터가 소개해 주신 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분이었다. 수리 목록과 견적 비용을 주고받던 톡 방에 뜬금없이 ‘노래가 너무 슬프다’며 유튜브 링크를 보내질 않나 (찬송가 링크는 양반이었다), tmi 가득 사적인 문자를 보내 나를 식겁하게 했다. 이런 문자에 무례하지 않을 만큼만 대답하고 본론으로 돌아가 견적 얘기를 꺼내면 버럭 화를 내곤 하셨다. 그런데도 당장 끊어내지 못한 이유는 수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이상해서 리얼터에게 물어보니 몇 년 전 따님을 잃고 정신이 왔다 갔다 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며 웬만하면 다른 업체를 알아보라고 하셨다. 가격이 괜찮았던 업체라 얼른 수리를 끝내고 싶었는데, 그동안 수고가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수리도 수리였지만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편물이나 택배를 받아야 하는 경우, 집에 초대한 지인을 제외하고 내 집 주소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알고 있다. 내 집 주소를! 내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집수리도 아닌 예쁜 가구도 아닌, 안전장치였다.
마침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땡스기빙 세일이 한창이었다. 월세 아파트에 살 때는 첫째도 둘째도 ‘가장 저렴한 가격’이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이젠 제대로 된 물건을 사고 싶은데, 집에 들일 물건 하나하나 고르는 것도 엄청난 리서치와 비교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쁜 가구에 대한 로망은 잠시 두고, 당장 필요한 주방 식탁, 의자, 매트리스만 우선 사기로 했다.
이제 곧 연말을 맞아 한국에 간다. 시스템을 다 설치해 놓고 가야 할 텐데, 대체 뭘 사서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 걸까? 다행히 그때 오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예전에 진행했던 ‘Home Security System’ 프로젝트에서 했던 소비자 설문조사와 사용자 테스트가 생각났다. 그때 읽었던 자료를 다시 찾아 읽어보고, Arlo, Nest, Ring, SimpliSafe 등 몇몇 홈 시큐리티 브랜드 장단점을 찾을 수 있었다.
※ 검색창에 Ring vs. Nest vs. SimpliSafe Security System comparison chart라고 치면 다음과 같은 비교 차트가 나온다.
수많은 정보의 바닷속에서 내가 결국 선택한 브랜드는 ‘SimpliSafe’였다. (#광고아님 #내돈내산 :) 당시 SimpliSafe 인지도는 Arlo, Nest(Google), Ring(Amazon)에 비해 다소 뒤처졌지만, 꾸준히 팔리는 제품으로 NPS**도 높은 편이었다.
브랜드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지인의 추천'이었다. 종종 도수 치료를 해 주시던 카이로프랙틱 선생님은 30대 중반에 이미 집을 두 채나 소유하신 분. 그래서 집에 대한 모든 것을 나보다 잘 알고 계셨고, SimpliSafe 제품을 쓰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있다며 추천해 주셨다.
세일 가격이 아니었으면 400~500불 선에서 사야 했던 안전장치를 모두 300불 선으로 구입했다. 문제는 설치였다. 7년을 월세 아파트에서 살았으니 직접 뭔가를 설치해 본 적이 없었다. 유튜브 튜토리얼을 보며 설치했더니 오전 나절이 훅 가버렸다. 도어 벨은 이미 붙어있는 예전 초인종을 뜯어내고 전기선을 연결해야 해서, 끙끙대다 포기했다. 결국 도어 벨 설치는 집들이에 놀러 오셨던 선배님께서 도와주셨다.
그렇게 시작해 지금까지 야금야금 추가한 안전장치는 카메라, 패닉 버튼, 창문 깨짐 경고 장치(glass breaker), 연기 센서(smoke sensor), 물 넘침 방지 센서(water sensor), 키 포브 (key fobs) 등이다. 약 15개의 안전장치가 SimpliSafe 앱에 연결되어 있다.
안전장치의 큰 장점은 집을 비울 때, 외부에서도 카메라를 통해 집을 상시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에 갈 때, 앱으로 집 상태를 체크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 ‘Away’ 상태에서 문이 열리거나 이상 작동이 감지되면 고객센터에서 바로 연락이 온다. 연락을 받지 않으면 가끔 경찰이 바로 파견되기도 하는데, 이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얼마 전엔 Fedex에서 택배 상자를 거의 내동댕이치다시피 놓고 가서 물건이 파손된 적이 있었고, 배달원이 대문을 너무 세게 닫아 문이 고장 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카메라 녹화본이 있어 둘 다 쉽게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진짜 도둑이 들어 알람이 울린 적은 없었다 (knock on wood!!***). 첫해에는 나도 (열쇠를 맡긴) 지인도 안전장치 사용이 익숙지 않아서 실수로 알람을 울린 적이 종종 있었다. ‘false alarm’ 때문에 경찰서에서 경고장을 받은 적도 있다. ㅎㅎ 누가 보면 조그만 타운하우스 갖고 뭐 그렇게 난리부르스냐? 고 할 수 있지만, 생애 첫 집이라 나에겐 너무 소중하다.
옆집 이웃과 잘 지내는 건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수다. 땡스기빙이나 크리스마스 연휴 때 도둑이 들어 가족들 선물을 싹쓸이해 갔다는 호러 스토리는 너무 흔한 일이다 (특히 메일함이 넘치거나 택배 상자가 쌓여있는 집이 타깃이 된다고 한다). 심지어 옆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이사 가길래, ‘그래도 이웃이었는데 말도 없이 이사를 가네…’ 섭섭하게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옆집이 여행 간 사이 도둑놈이 이삿짐 업체인 양 행세하고 그 집을 싹쓸이해 갔다는 메가급 호러 스토리도 전해진다.
나처럼 집에 별 훔칠 물건이 없는 사람도 조심해서 손해 볼 것이 없다. 이곳에선 심심하면 자동차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훔쳐 가는 ‘증오 범죄(hate crime)’도 많이 일어나니까. 가정집 가라지 바로 밖에 세워 둔 차 창문이 깨진 것도 여러 번 보았다. 글로벌 테크 회사가 즐비하고 언뜻 잘 사는 곳처럼 보이는 실리콘밸리지만, 살기에 마냥 안전한 곳은 아니다. 그러니 집이 생기고 나서도 안전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
아파트 층간소음 지옥에 살던 내게도 집이 생기다니, 천하의 기계치였던 내가 스스로 장비를 설치해 스마트홈을 만들다니…! 뒤늦게라도 안전 공간이 생기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 뿌듯한 요즘이다. 혼자 현관문 자물쇠와 열쇠도 교체하고, 온도조절기도 설치해 점점 그럴듯한 스마트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웬만한 고장과 설치는 셀프로 처리하는 ‘준 베테랑 수리공’이 되었다. 앞으로 험한 산과 계곡을 만나도 이 과정을 통해 쌓은 유능감은 또 한 번 고비를 넘게 도와줄 것이다.
※ 용어 설명
1. *컨트랙터(contractor): 집수리를 해주는 사람
2. **NPS: Net Promoter Score의 약자로 간단히 말해 브랜드에 대한 고객 충성도를 알 수 있는 지표
3. ***Knock on wood: 미국에서는 ‘나는 아픈 적이 없어, 나는 도둑맞은 적이 없어’ 등 나쁜 일이 겪은 적이 없었다고 얘기할 때, 불운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며 "Knock on wood!"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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