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요가 PT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요가 시작한 지 11개월이 되어가는데, 그룹으로 하는 수업이다 보니 내가 요가 자세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못된 자세를 계속 반복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서이다. 직장 초년 시절부터 피트니스센터에 꾸준히 다닌 편이지만, 내 운동 인생에서 PT를 받아본 것은 10번도 안 될 것이다. 이번에 요가 PT를 받기로 작정한 걸 보니, 근 1년 동안 요가에 애정이 많이 생겼나 보다.
두 번째 PT 수업 때였다. 150가지 요가 아사나(자세)가 담긴 요가 포스터를 가져가 아사나를 하나씩 짚어가며 뭐가 되는지 안 되는지 설명하고 있는데, 한 여자분이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앞뒤도 없이 요가 수업이 있는지, 당장 수업을 들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시더니, “오늘은 더 이상 요가 수업이 없으니, 앱으로 수업 예약하는 걸 알려주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약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금방 나가겠지 싶어 나는 옆에서 부지런히 스트레칭을 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남편과 아이, 일에 대한 고민을 하나씩 털어놓더니 본인이 불안/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계속 한숨을 쉬었다. 요가 수업 중간에 갑자기 들어온 그녀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를 위해 요가 매트를 깔아주며 일단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여기 앉아 호흡하며 쉬라고 말씀하셨다. 쉬라고 멍석을 깔아주었는데도 그녀는 스튜디오 안팎을 오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그녀가 잠시 나간 사이, 내게 “이번 수업은 그냥 친구끼리 요가 연습하는 세션으로 치자, 대신 다른 가능한 시간을 정해서 알려주겠다"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재빠르게 수업 방향을 틀었다. 서로의 이름을 소개하며, 우리 모두 요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니 함께 요가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내가 가져온 요가 포스터를 가리키며, 이걸 보면서 함께 진도를 나가자고 말이다. 그녀가 다른 얘기를 꺼낼 때마다 일단은 요가에 집중해 보자고 포스터를 가리키며 진도를 뺐다. ㅎㅎ
처음에는 솔직히 좀 화가 났다. 남의 1:1 수업에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와, 처음 보는 요가 선생님께 TMI 가득한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하소연을 늘어놓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선생님도 귀한 주말 시간을 내어 수업을 하고 있는데 불쑥 들어와 훼방을 놓다니… 속으로 “지금 요가 수업 중이니 다음에 얘기하자."라고 선생님이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해 주시기를 바랐다.
하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 일단은 선생님의 판단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녀의 딱한 사정을 이해해 보려고도 했다. 선생님에게만 작은 소리로 얘기해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일과 가정사로 뭔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 같았다. 요가로 돈을 벌 수 있냐고 물어보는 걸 보니 일자리를 새로 알아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게 대체 머선 129?’하는 상황에서 정신없이 1시간 수업이 끝났다. 요가 포스터를 보며 수업을 진행했기에,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진도도 조금 나갈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그녀는 계속 고민 상담을 했고 선생님은 경청해 주셨다. 다른 스튜디오에서 다음 수업이 있다고 하셨는데, 잘 빠져나오셨을까? 사람인지 성인인지 모를 사람이다.
다음날 선생님은 “I felt bad for you, but I also felt bad for her, so I hope you understand.”라며 어제는 미안했다고 사과하셨다. 내가 어제 그런 상황에 있었다면, 선생님처럼 대응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오히려 많이 배웠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왜 이리 물러 터지셨나 싶었다.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정석대로 “지금은 1:1 수업 진행 중이고 앱으로 수업 예약하는 걸 알려줬으니, 미안하지만 다음에 얘기하자"라고 하지 않았을까? 낯선 이의 밑도 끝도 없는 하소연을 다 들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걸 다 받아주고 있는 선생님이 고구마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수업을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요가 수업보다도 큰 가르침은 준 시간이었다. 흔히 요가 선생님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곡예와 같은 어떤 요가 자세도 가뿐히 소화할 수 있는 유연함, 지방 한 톨 없이 가볍고 가늘면서도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 매일 아침을 명상으로 시작할 것 같은 차분한 마음의 소유자… 이것이 내가 요가를 시작하기 전 상상했던 요가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1년 동안 요가 수련을 하며, 요가를 잘하는 것과 좋은 요가 선생님이 되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는 아사나를 잘하는 사람을 요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선생님보다 아사나를 잘하는 수련생들도 많을뿐더러,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면, “인간이 어떻게 저런 동작을?” 하는 자세를 숨 쉬듯 하는 요가 인플루언서들도 널리고 널렸다.
소위 인기 많은 요가 선생님 수업을 청강하는 요가 선생님들도 종종 보이는데, 신입 요가 선생님일수록 자신의 아사나를 뽐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 보인다. 다른 선생님 수업에 들어와 1시간 내내 핸드 스탠딩 자랑질만 하고 가는 선생님도 종종 보았다. 음악 소리에 고막이 터질 거 같아서 조금만 줄여 달라고 부탁하니, 줄여 주기는커녕 스피커 위치만 바꾸고, 됐지?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수련생인 나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자신의 빼어난 핸드 스탠딩 자랑질만 하는 선생님 vs. 어려운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선생님… 미안하지만, 나는 전자를 결코 요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사나를 잘하고 요가 자격증을 따서 선생님이 될 최소 자격을 갖추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가 선생님이든, 의사 선생님이든, 어느 전문 분야에서든 남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고 그 마음은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자신의 지식과 실력을 뽐내려는 말이나 태도, 우월감 또한,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대로 전달된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남에게 전문 지식을 돋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니, 조심할 일이다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따뜻한 마음이 결여된 가르침이나 의술은 거부감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8년 전 실리콘밸리에 와 첫 미국 직장에서 텃세로 마음 고생할 때, ‘이곳 사람들은 참 차갑고 피도 눈물도 없구나!’ 하며, 미국에 남기로 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낯선 이가 요가 수업에 찾아온 그날,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 또한 이곳에서 서바이벌하며 따뜻한 마음보다 냉철한 이성이 앞서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말도 있지 않나.
선생님은 요가원에서 나름 ‘아사나 천재’라고 불리는 분이다. 수업이 끝나면 수련생들이 박수를 치는 유일한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어찌나 겸손하신지… 그날 갑자기 수업에 들어온 그녀를 경청하며 도와주는 모습을 보며, 저런 마음 때문에 수련생들이 그토록 따르는구나 싶었다.
다음 1:1 수업에서 선생님은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 그날은 정말 미안했다고… 하지만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아 옆에 있어 주고 싶었다고. 다행히 그녀는 선생님과 얘기를 나눈 후 조금 진정되어 요가 수업을 알아보고 집에 갔다고 한다. 그녀가 요가와 함께 마음의 평화를 되찾길 바란다.
“We do yoga for our healthy mind and body, and happiness, but if we are not kind to others, why do we even practice yoga?”
나는 그날 진정한 요가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훌륭한 요가 선생님을 넘어 불쑥 들어온 나그네까지 따뜻하게 감싸는 스승을 만난 나는 참 행운아다. 비록 그날 1:1 수업은 취소되었지만, 어떤 요가 수업보다 값진 것을 배웠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 연민, 따뜻한 가슴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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