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배낭여행의 기록 첫번째: 태국 - 방콕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친절한 호스텔 매니저 메이가 웃으며 나와 데이빗을 반겨줬다. 서글서글하고 정겨운 웃음이 매력인 메이와 짧게 담소를 나눴다.
“여기 어디가 재밌어? 우리 방콕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편도 비행기편이 제일 싸서 일단 여기로 왔거든” 내가 말했다.
“여기는 맛집들이 많은 곳이고 요쪽은 사원들이 많은 곳. 아 그리고 여기 수쿰빗 백화점은 꼭 가봐 완전 쿨한 곳이야. 특히 여기 화장실이 웅장하고 대단해” 메이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관광지도를 펼치며 이곳 저곳 추천 해 준다.
음? 뭔가 이상한데. 뭐 일단 알았다고 하고 체크인 안내를 받았다. 아직 손님들이 체크아웃 안 했지만 웃으면서 들어가도 된다고 했다. 다른 게스트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조기 체크인을 했다. 미안합니다 다들. 8인 남녀 혼성 도미토리에 짐을 푸는데 옆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던 게스트가 신기한 듯 쳐다본다. 영어로 인사를 했더니 웃으며 손사레를 치고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태국인이란다. 그렇다면 어제 예습한 태국어를 시전해봤다.
“싸외디캅!”이랬더니 뭐라뭐라 하는데 당연히 못 알아 들었다. 멍한 표정을 지으니 구글 번역기를 꺼낸다. 그 친구이름은 다루코라고 한다.
[구글 번역기 대화]
다루코: 어디에서 왔어?
나: 한국에서 왔어 너는?
다루코: 나는 좋아한다 한국. 드라마랑 K-pop 좋아해. 치앙마이 근처에 살아.
나: 방콕엔 무슨일이신지?
다루코: 회사 면접보러 왔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지.
나: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네.
간단하게 핸드폰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했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번역기도 성능이 계속 좋아지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다. 짐 정리를 마치고 밥 먹으러 나서려 하는데 다루코가 핸드폰을 내민다. “말 걸어줘서 정말 고마워, 지난 며칠간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었는데” 왜 그럴까 생각 해 봤다. 아 그렇지. 여기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다. 대부분의 투숙객들은 외국인이며 그들 중 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디를 가더라도 일단 대화가 안 되면 만남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 나도 사실 다루코가 꽤 예뻤기에 말을 걸고 휴대폰으로 대화를 이어간 동기에 사심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러 나섰다.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거리에는 국수를 맛나게 드셔주는 사람들, 구멍가게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낮맥을 즐기는 어르신 들. 완전 우리 취향이라 마냥 즐거웠다. 저녁엔 데이빗의 고등학교 친구 운(Une)을 만나러 수쿰빗으로 향했다. 명동역에 잘못 내렸나 생각이 들 정도로 명동 쇼핑거리와 비슷한 수쿰빗(Sukumvit). 솔직히 쇼핑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나와 데이빗은 약속시간까지 Terminal 21이라는 쇼핑몰 안을 어슬렁 거렸다. 호스텔 매니저 메이가 강력히 추천한 곳이 바로 이 쇼핑몰 안에 있는 화장실이다. 웅장하고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 화장실은 깜빡하고 못 가봤다.
시간에 맞춰 그 친구가 나왔다. 함께 여행하는 데이빗의 고등학교 동창인 Une은 스포츠 뉴스 리포터 일로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단다. 쇼핑몰 옥상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출출해진 우리는 차이나타운 야시장에 가기로 했다.
차이나타운에 도착했다. 온갖 맛있는 냄새가 사방에서 코를 자극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식을 다 갖다 놓은듯 한 야시장에서 파전, 꼬치, 볶음국수, 스프 등을 조금씩 사서 바깥 테라스에 앉아서 먹었다. 가격은 접시당 $2 정도였던 것 같다. 음식 맛은 훌륭했다. 허겁저겁 먹어치운 우리는 이내 배가 불러왔다.
“아까부터 계속 보이던데 이 분은 누구셔?” 태국 지폐를 보던 데이빗이 물었다.
“라마 9세야. 가장 사랑 받았던 국왕이셨서. 작년에 그 분이 돌아 가셨을 땐 나라 전체가 한 달동안 울었어. 살아 생전 태국의 모든 지역을 돌며 민생을 살폈었고 평생을 태국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고” 운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와 데이빗은 이 친구한테 끌려 디저트로 전통빵도 먹고 요구르트도 먹고 또 무언가를 계속 먹었다. 더이상 못 먹겠어서 일단 좀 걷기로 했다. 카오산로드에 갔는데 식상해서 근처 동네를 걸었다. 이곳엔 유난히 황금색으로 빛나는 건물들이 많은데 은은한 야간 조명과 참 잘 어울린다. 태국 사람들의 전 국왕 푸미푼 아둔야뎃(라마 9세)에 대한 사랑은 아직도 어마어마한 듯 하다. 화폐, 거리, 건축물, 거의 모든 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들보다 훨씬 왕권이 실질적이었고 영향력 또한 굉장했다고 한다. 참된 주군이 더 나은 나라를 위해 온 정성을 쏟을 걸 태국 사람들이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것에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