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배낭여행의 기록 열두번째: 모로코 - 마라케시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상업 밀집 지역이라 건물 외엔 볼 게 없어 내일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마라케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까르푸로 가 갓 구운 바게트 2개와 딸기잼, 치즈 조금, 올리브를 한 통을 사 숙소로 돌아와 데이빗과 함께 에피쿠로스가 칭찬할 만한 향연을 벌였다. 거렁뱅이 여행객이 무슨 올리브냐 네가 부르주아냐고 욕하겠지만 올리브 한 통에 $2니 안 먹을 수가 없다.
올해는 5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가 라마단 기간이다. 가게들도 라마단 기간에 맞춰 일찍 문을 닫기도, 늦게 문을 열기도 한다. 영업시간 따윈 알라 신 앞에서 알 바 아니란 숭고한 이슬람교도의 뜻이기에 존중해주어야 한다. 나와 데이빗도 덩달아 라마단 단식을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여행 버킷리스트에 단식이 있었고 마침 라마단 기간에 모로코에 왔으니 참 시기적절하다.
카사블랑카에서 기차를 타고 마라케시로 갔다. 마라케시 중심가 메디나의 미로를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간신히 숙소를 찾았다. 고즈넉한 골목길에 위치한 가정집 옥탑방을 호스텔로 꾸며둔 곳이다. 짐을 풀고 차 한 잔을 마시는데 확실히 굶으니 힘이 하나도 없다. 책을 읽으려는데 눈에 안 들어온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더 처지는 것 같아 데이빗과 함께 메디나로 나왔다. 골목길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일몰 후 길거리 음식을 사서 먹었다. 사람이 겸손해지며 내 앞에 있는 음식을 좀 더 생각해보게 된다. 숙소로 돌아가는 골목길,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풍성한 식사를 한다. 표정이 참 행복해 보였다. 당분간 금식을 계속하기로 했다. 사람과 문화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성이라.
처음 만나기 전까지 마치 그리워했듯 듣기 전까지 간절히 기다려왔던 소리가 있다. 처음 듣지만 익숙한 소리, 마치 어린 날 따듯한 햇살 아래서 놀던 그런 편안함의 소리. 메디나 아르피나 광장을 지나는데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프리카 청년들이 원을 돌며 허밍을 하고 있어 빨려 들어가듯 멈춰 서 가만히 들었다. 한참 동안 흠뻑 빠져 몰입했다. 소리는 없는 세상을 열어내는 것이라고, 그 세상은 본래 있는 세상이라고 누가 말했다.
달맞이를 하며 원을 돌고 노랫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강인한 생명력과 희망을 노래하는 자유의 소리가 공기를 울리며 전달됐다. 서아프리카로 가지 못하고 모로코로 와야 했던 이 시점에서 선택에 따라 소거된 다른 선택지에 대한 그리움과 마라케시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있는 현재, 존재함에 대한 즐거움이 이 소리의 모습으로 시공간의 구분을 관통한다. 소리는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며 살아있는 동안만의 소리라 하니 정말로 살아있음을 느낀 감동적인 소리를 전달해준 이 청년들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