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노트] 63. 소웨토 광시곡(상)

남아공 악명 높은 범죄 도시 이야기

by 진보

요하네스버그 중심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이 있다. South Western Township의 앞자를 따 지어진 소웨토(SOWETO)란 마을은 아파르트헤이트 인종 차별 정책 하에 흑인들이 강제로 이주당한 구역이다. 여태까지 남아공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소웨토는 위험한 곳이니 절대 가면 안 되고 설령 가더라도 관광버스를 타고 잠깐 둘러보기만 하라고 한다.


"너네 어디를 간다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호스텔 매니저 심바가 말했다.

"소웨토 간다니까, 넬슨 만델라 생가가 있다는데?" 내가 물었다.

"이런 너네들이 아직 남아공 온 지 얼마 안 된 뉴비라서 뭘 모르나 본데 거긴 우리들도 안 가는 곳이야!" 평소 유쾌한 톤과는 사뭇 다르게 심바가 말했다.

“인터넷 보니까 여행자용 숙소가 꽤 있던데. 수요가 있다는 뜻 아님?” 데이빗이 물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 한 외국인 관광객이 타고 있던 택시가 신호등 앞에 잠시 멈췄는데 그때 강도들이 차 안으로 손을 뻗어 가방이랑 지갑을 약탈해 갔어. 얼마 전 일이야.” 심바가 말했다.

"굳이 다른 곳도 많은데. 나라면 절대 안 가겠어" 테라스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떡대 좋은 한 게스트가 거들었다.


솔직히 여기서 쫄았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 소웨토를 범죄도시로 묘사를 했다. 목숨이 여러 개고, 싸움 좀 한다 싶으면 슬쩍 산보 나가 볼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그래도 일단 한번 가볼게. 갔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지 뭐.” 내가 말했다.

"걸어 다니지 말고 동네 슈퍼를 가더라도 우버를 부르도록. 도착해서 메시지 꼭 보내고." 매니저 심바는 끝까지 우리가 걱정이 된 모양이다.


요하네스버그 로즈뱅크를 떠나 북남 쪽으로 빠져나왔다. 빌딩의 높이가 조금씩 낮아졌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위험하길래 사람들이 저 난리를 칠까. 우리가 정녕 실수하는 건가. 정말 큰일이 나는 건 아닐는지. 슬럼은 다 위험한가?


소웨토에 도착했다.


해맑게 웃으며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 구멍가게 앞에서 낮맥을 하며 여유롭게 주말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골목을 들어서니 길거리에서 닭발을 굽는 냄새가 차 안으로 솔솔 들어온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물리적으로만 사람을 갈라놓은 게 아니었다. 사람의 의식을 통째로 세뇌해 눈과 귀를 막아 버렸다. 소웨토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지극히 평범한 사람 사는 곳이었다. 남아공 독립운동가 스티브 비코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당신은 조작된 허구를 진실처럼 왜곡하고 있다
~스티브 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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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도 이방인이 반가웠던지 손인사를 한다.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길거리에서 놀고 있던 꼬마 아이들의 전매특허 “안녕 차이나!!!” 환영을 열렬히 받으며 숙소에 도착했다. 가정집을 여행자용 게스트하우스로 꾸며 둔 곳이다. 생각보다 숙소 가격이 비싸서 잠시 데이빗과 함께 작전 회의를 했다.

sw2.jpg 룽기 아저씨네 게스트하우스

“아저씨, 우리 방 말고 뒷마당 빌려도 돼요?”

“음? 무슨 소리지?” 게스트하우스 주인 룽기 아저씨가 물었다.

“우리 텐트랑 침낭이 있어서 뒷마당 빌릴 수 있으면 저기다가 텐트 쳐놓고 지내려고요.” 데이빗이 텐트를 배낭에서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신선한 제안에 관심을 보인 룽기 아저씨는 큰소리로 웃으며 흔쾌히 요청에 응해주었다.

sw4.jpg 이렇게 정원을 빌려서

예산이 빠듯하기에 나와 데이빗은 정원을 저렴하게 대여했다. 아담한 정원에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한 뒤 동네 구경을 하기 위해 나섰다. 한적한 시골마을 분위기. 예쁜 벽돌 집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만델라 생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생가에 들어가진 않았다. 겉에서 집안을 보았다. 공허한 내부 공간을 창살 너머로 바라보며 잠시 그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sw5.jpg 텐트를 치면 보금자리 완성!

배가 고파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적하게 거리를 거닐고 여유롭게 마을을 구경했다. 벽화가 인상적인 가게에 들어갔다. ‘Shova’란 가게인데, 젊은 사회적 기업가가 운영하는 곳으로 지역 사람들이 만든 수공예품과 디자이너 아이템을 판다. ‘Shova’는 To push for greatness란 뜻과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매 순간 페달을 밟는 소웨토 사람들의 진취적인 정신이 돋보인다.

IMG_7365.JPG Shova
IMG_7368.JPG 정상을 향해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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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동네 꼬마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다행히도 내가 축구를 발로 하는 지라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 재밌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딸 ‘아이야’란 꼬마를 세 번이나 울렸다. 시원하게 샤워를 한 뒤 먹거리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녔다.

sw3.jpg 룽기 아저씨 딸 '아이야'랑 데이빗

숙소 근처에 재밌는 가게가 하나 있다. 창고를 고쳐서 만든 옷 가게인데 모든 옷을 주인이 직접 만들고 디자인했다. 그 건너편엔 슈퍼가 있다. 소웨토에서 지낼 때 매일 아침 계란과 소시지를 샀던 곳이다. 나중에 친해지니 주인아주머니께선 항상 소시지를 한 개를 더 얹어 주신다. 우리 몰골이 딱했나 보다

sw1.jpg 길거리 오락기. 1탄도 못 깨고 게임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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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14.jpg 매일 아침 여기서 일용할 양식을 조달

슈퍼 옆 철길을 건너 100m 정도 내려오면 생필품 가게가 있다. 이 가게 바로 앞 길거리에서 늦은 오후부터 숯불 닭발을 개당 100원에 판다. 닭발을 좋아했으면 10개도 먹었을 텐데. 닭발 한 개를 사서 오물오물 깔짝대며 걷다 보면 맥줏집이 나온다. 브라이(남아공 스타일 바비큐)를 안주로 내놓는데 이 동네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하루 끝 땅거미가 지면 이 곳은 파티 피플의 놀이터로 변한다. 주인장은 벤츠를 몰고 다니는데 잘 안 보이고 직원 2명은 여자가 끊이지 않는 소웨토 정통 인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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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웨토에서 한동안 눌러앉기로 했다. 딱히 할 게 있고 볼 게 있어서가 아니라 분위기가 좋아서. 짧게나마 이 마을에서 살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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