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삼자회담이 열렸다.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참 다 달라서 커피를 마시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후 결론이 나왔다. 우리 셋이 방문하고 싶은 장소의 중간 지점에 있는 코랏을 베이스로 두고 오늘은 당일치기로 피마이 사원(Phimai Prasat)을 보고 내일은 프놈렁 유적을 본 뒤 태국-캄보디아 국경 마을인 수린으로 넘어가는 일정이다.
아침으로 태국식 샤브샤브를 먹었다. 한약 맛이 기분 나쁘지 않게 육수와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냈다. 빨래방에 빨래를 맡기고 (10kg/160바트) 피마이 행 버스를 탔다. 피마이 사원은 12세기 융성했던 크메르 왕조 시절 지어진 사원으로 파놈릉 유적과 함께 앙코르와트의 모체가 된 사원이라고 한다. 불교 양식이지만 ‘나가(인어)’ 등 환수들이 건축물 곳곳에 화려하게 수 놓여 있었다. 적토와 고풍이 세월과 함께 버무려져 빚어진 이 사원의 고유한 느낌이 좋았다.
약 1시간 정도 사원을 구경한 뒤 출출했던 우리는 길거리 국수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동네 사진관 앞에 라마 9세의 포스터가 보였다. 마음에 들어 사진관 안으로 들어가 포스트카드 사이즈로 인화해 달라고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 우리 셋 다 잠시 눈을 감았다 기지개를 켜니 숙소 앞이었다. 벤이 양식을 먹자고 해서 어니언링과 갈릭브레드를 저녁으로 먹었다. 시원하게 맥주 한 잔씩을 한 뒤 근처 바에 가서 진 토닉 한잔 더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거렁뱅이지만 사치 좀 부려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겨 브리람(Briram) 행 버스를 탔다. 브리람 정거장에서 내려 택시기사와 옥신각신 흥정을 했다. 파놈릉(Phanom Rung) 유적지 왕복 운행을 협상하고 짐을 맡긴 뒤 사원을 둘러보았다. 웅장하고 정교한 파놈릉 사원은 화산 위에 지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힌두 신화를 소재로 한 장식이 눈에 띄었다. 15세기 불교 양식과 힌두교 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산 위에 위치해 브리람 마을과 자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결혼식 행진을 여기서 해도 좋을 것 같다.
약속한 시각에 택시기사가 나타나 우리를 다시 버스 정거장에 데려다줬다. 이제 수린이라는 국경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언제 올지 주위에 물어봐도 모른단다. 고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우리 셋 다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1시간 만에 버스가 왔고 약 2시간을 달려 수린에 도착했다. 강행군으로 지쳤지만, 석양이 예뻐서, 또 예상치 못한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졌다. 정갈한 마을에서 시골 인심과 호기심 어린 시선을 느끼며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아무 가게나 들어갔다. 가격은 방콕의 절반, 맛도 무난해서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코끼리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느릿해서 처음엔 위압적으로 느끼지 못했는데, 불쑥 내 공간을 침범당해 깜짝 놀라는 그런 느낌을 아는가? 성큼성큼 거대한 걸음걸이로 코끼리가 우리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오는 바람에 국수도 팽개치고 갑자기 일어나서 대피했다.
코끼리 뒤에서 나타난 현지인이 능숙하게 이놈을 진정시켰다. 관광용 코끼리인데, 돈을 내면 한번 만져볼 수 있고, 더 많이 내면 잠깐 타볼 수도 있다고 했다. 코끼리를 터치하는데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던 우리는 정중히 사양하고 우리 숙소를 찾아 길을 나섰다. 구글맵이 워낙 잘 되어있어 금방 찾은 것까진 좋았는데… 이 숙소는 참. 뭐랄까 겉은 방사능 입은 벨라지오 같았고 속은 낡은 평양 관광호텔의 모델하우스 느낌이랄까? 3인 1실 350바트(약 12달러)라 가격도 저렴하고 나름 타임머신 타고 70년대로 이동한 느낌이어서 흥미로웠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나는 또 다시 침낭을 깔고 바닥에서 자게 되었다. 바퀴벌레 2마리를 잡고 난 뒤 편하게 잠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