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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너머 Oct 19. 2019

설리와 아이유는 왜 서로를 아끼고 존경했을까

성별 대결 프레임은 진짜 문제를 은폐한다

故 설리씨를 추모하는 진보너머 운영위원 박원익 (필명 박가분) 평론가의 글입니다.


설리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상심에 빠진 아이유가 앨범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설리와 아이유가 각별한 사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왜 이들은 각별한 사이였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둘 다 아이돌 출신이면서도 아티스트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냈고 이로 인한 불협화음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아이돌 업계에 능통한 지인의 설명을 들으니 단번에 납득이 되었다. 아이돌에게 춤, 노래, 예능 등 종합 예술인으로서의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지만(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연습생들을 소모하지만), 정작 전문적 영역에 도달한 이들이 스스로의 예술적 자의식을 드러내는 순간 이들에 대한 팬들의 기대와는 화해하기 어려운 대립으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기형적인 아이돌 산업구조가 낳은 모순과 대립을 정면으로 겪은 대표적인 연예인이 바로 설리와 아이유다.


이들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아이유가 자신의 자의식과 욕망을 드러내는 데 있어 일종의 '정무적 판단'을 우선시한다면, 설리는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있어 기존 팬덤 집단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둘은 기본적으로 같은 욕망을 공유하면서도, 아이유는 자신에게 없는 설리의 거침 없는 튀모스(thymos)를, 설리는 자신에게 없는 아이유의 마키아벨리즘적 노련미를 동경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썅마이웨이'. 그를 이야기할 때 많이 나왔던 표현이다. 넘한테 피해 안주고 지맘대로좀 살겠다는데 그렇게들 고나리질이 많았다.


다시 말하지만, 설리와 아이유 모두 K-Pop 아이돌 산업의 기형적 구조의 피해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설리의 죽음을 페미니즘 이슈로 활용하려는 욕망을 노골화한 민주노총 성명은 물론이고 진보정당의 논평이나 진보언론 기사를 보며 불쾌감을 느꼈던 이유가 있다. 설리의 죽음을 단순히 남녀 대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진짜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설리는 물론이고 아이유를 비롯한 자의식 강한 연예인에 대해 집요하게 악플을 단 이들 중 상당수는 여성이었고 또 그들 중 대다수는 "로리타"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등 페미니즘 의제를 빌려 자신의 악플을 정당화했다. 물론 그만큼 여성 연예인의 옷차림이나 외모나 사상에 대한 주제 넘은 지적질을 일삼은 남성 악플러들도 많았다.


한편 아이돌 산업이 가진 구조적 모순의 피해자는 비단 설리만이 아니었다. 샤이니 멤버들 중에서 유독 예술가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했던 종현도 비슷한 피해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설리의 죽음에서 성별은 전혀 본질적인 사안이 아니다.


진짜 핵심적인 문제는 아이돌이 아티스트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기 어려운 아이돌 산업 구조와 더불어, 개인의 사생활을 보도하면서 악플을 유도하고 이익을 얻는 언론구조이다. 민주노총과 한겨레가 가져간 성별대결 프레임은 이 본질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아주 어렵게 만들어 놨다. 그런 의미에서 공론장에서 지양되어야 할 논의 방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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