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기안84 논란, 누가 죄인인가?>
기안84의 웹툰 나아가 주호민 작가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지난 수년간 반복되어온 이러한 무분별한 여론재판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깊은 피로감을 느낍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번 논란의 본질은 일말의 공익성도 없는 대단히 폭력적인 집단린치입니다. 애초에 여성혐오에 대한 개념규정조차 언중 사이에서 일관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판의 잣대를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하기보다는, 자의적인 '끼워 맞추기식' 고발을 통해 먼저 상대가 굴복하도록 압박하는 여론재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판하는 쪽이나 비판받는 쪽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발전적인 방향이 아닙니다.
사실 논란의 핵심은 논란 한참 이전부터 이미 기안84를 (황진미 기자 자신의 증오에 찬 표현을 빌리자면) ‘X남’이라 낙인 찍으며 단단히 벼르고 있던 일부 집단의 증오심입니다. 이처럼 같은 혐오의식을 공유하고 있던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와 이들에 편승해 조회 수를 노린 ‘일부 언론’ 그리고 자신에게 타인을 정죄할 지적·도덕적 권위가 있다고 믿는 ‘일부 작가’들이 한데 뭉쳐 한 웹툰 작가에 대한 집단폭력을 가한 것입니다. 물론 이들 세력과 문화컨텐츠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가진 평범한 독자와 시민들을 구분해야 합니다.
건설적인 논쟁과 비판은 마땅히 장려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심증에 근거해 특정인을 공론장에서 배제하는 일련의 여론재판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마저도 증오에 가득 찬 ‘일부’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입니다. 공공성을 내세우는 겉보기의 명분과 정 반대로 이들의 행태는 각 개인의 자기검열을 강화하며 문화 컨텐츠는 물론 담론지형 전체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집단폭력은 작가, 연예인 등 대중의 기호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문화예술인을 주 타겟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겁하기까지 합니다.
아시다시피 새로운 논란은 아닙니다.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청년들에게는 수년 전부터 대단히 익숙한 풍경입니다. 사회적으로 충분히 합의된 바 없는 자의적인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목조르고 개개인에 대한 무분별한 린치를 가하는 방식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창작자들이 '힘겨운 시기에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주호민의 지적은 기안84 논란을 떠나서도 곱씹을 필요가 있는 대목입니다.
진보너머는 이러한 분열주의적 페미니즘과 평범한 시민을 폭력적으로 계몽하려는 PC주의에 일관된 반대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요즘은 얼마나 더, 언제까지 더,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 드려야 할지 아득할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진보너머는 섣불리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짜 맞서야할 이 사회의 부조리한 벽, 기득권과 특권에 맞서는 더 큰 스크럼을 짜내기 위해 앞으로도 낮은 자세로 말 걸고 부단히 토론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창작의 자유를 위해,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에 저항하며 온 몸 바쳐 싸워왔던 모든 분들께 호소드립니다. 언제까지 이 광기의 굿판을 지켜만 보실겁니까?
"인종 차별을 타파하기 위해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방식은 긍정적이고 포용적이다. (..) 나의 형제들이 날 따돌리고 자신들만 들어가는 둥그런 원을 그리면, 나는 더 커다랗게 원을 그려 그들을 감싸 안을 것이다. 또 그들이 어떤 하찮은 집단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크게 높이면, 나는 인류전체의 권리를 위해 더 큰 함성을 내지를 것이다."
- 흑인 시민운동가, 파울리 머리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