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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너머 Feb 12. 2021

마틴 루터 킹: 적당히 끊어준다는 것

박세환 기고 카럼

편집자 주 : 박세환 운영위원의 기고 칼럼입니다. 좌파들이 내부의 극단주의와 편향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 대안우파가 창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론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많은 경우 사회운동 집단들은 내부 선명성 경쟁을 거치며 끝없이 극단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현실'내지 '사회통합'을 말하며 덜 투쟁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은 변절자, 배신자, 수정주의자, 반동분자로 몰리게 되고, 결국 집단은 더욱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에 의해 끌려 나가게 된다.


사람이나 집단이 한번 극단화가 되면 다른 대중의 인식을 읽어내는 눈은 상실되게 된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눈도 상실된다. 결국 이들은 사회로부터, 타자로부터 점차 고립되어 결국 그렇게 사라지곤 한다.


60년대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 역시 그러했다. 일부 운동가들은 한없이 극단적으로만 나아갔고 그 끝에는 말콤 X가 있었다. 극단의 끝에 선 사회운동이 늘 그러하듯 말콤 X와 그의 패거리들은 언제나 항상 증오와 폭력을 말하고 다녔다. 선명성 경쟁에 빠져버린 운동가들은 그들 스스로 어느 지점에서 끊어 주어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만약 미국의 흑인운동이 끝까지 '그들'에 의해 주도되어 그렇게 한도 끝도 없이 나아갔다면, 오늘날 미국 흑인들의 현실은 지금보다도 훨씬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체 미국 내에서 흑인의 인구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 50%도 아닌, 20%의 사람들이 남은 80%를 상대로 벌이는 극단적 분리주의 운동이 상식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그들은 한 곳에 모여 살지도 않았으니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일부 흑인 슬럼가들이 있긴 하지만, 그 슬럼가들은 전 미국 도처에 퍼져있었다.)


그러나 미국 흑인들에겐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극단화된 운동가들도 있었으나 모두가 그렇게 되진 않았다. 다른 사회운동 집단들의 일반적인 흐름과는 달리, 60년대 미국 흑인 인권운동에는 강경파에 휩쓸리지 않고 제도권을 지향하는 온건한, 그리고 막강한 또 하나의 축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저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있었다.


혹자는 킹 목사가 급격한 사회변동을 회피하려던 기성 백인 부르주아지들에게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킹 목사에겐 "백인 기득권 세력과 그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제도권 질서에 지나치게 순응적인 비겁한 타협 주의자"라는 식의 비판이 줄곧 (주로 말콤X 측으로부터) 따라붙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당시 기성 백인 부르주아지들 입장에서 급진 흑인운동이 대체 뭐가 무서웠단 말인가?! 내가 만일 당시의 반동적인 기성 백인 부르주아지 였다면, 나는 킹 목사보단 말콤 X를 내심 더 지지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난리'를 쳐 주어야만 '우리'가 그들을 총칼로 짓밟고 탱크로 깔아뭉개버릴 명분도 생길 테니까.


어찌 되었건 60년대의 미국 흑인운동의 헤게모니는 결국 말콤X 보다는 킹 목사 쪽으로 더욱 기울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흑인 지위는 더욱 향상되었다.


말콤X는 결국 같은 흑인들의 총에 맞아 죽었고 킹 목사는 백인의 손에 살해당하고 만다.




오늘날의 피씨스트(PC 이념을 파쇼적으로 강요하는 세력 - 편집자 주)들을 보면 항상 킹 목사가 떠오르곤 한다.


다른 곳에서도 너무나 자주 반복한 이야기지만 오늘날의 피씨스트들은 내부 선명성 투쟁이 신좌파 집단 전체의 끝없는 극단화를 부추기는(그것도 이상한 방향으로) 불행한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피씨스트들이 일반 대중들의 인식을 읽어내는 눈을 완전히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립되었고, 스스로 지지를 상실한 그 공백마다 대안 우파들이 창궐하고 있다. 


만일 대안 우파들이 이렇게 흥성하기 전에, 신좌파 내부에서 킹 목사처럼 "여기서 끊어주어야만 해!"를 외치는 강력한 인물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나마 가장 비슷한 역할을 하려 했던 것이 버락 오바마 아니었을까 한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란 타이틀 아래 일각에서는 '미쿸 피씨스트'의 상징 정도로 여겨지게 된 사람이지만 사실 이 사람은 내부에서 "좀 적당히 할 필요가 있어"라고 말해 왔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대선운동 기간에 극단적인 언행을 반복한 자신의 동료를 눈 하나 깜빡 않고 손절해 버리기도 했다.) 이런 부분들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적어도 그의 집권기에 피씨스트의 난동은 어느 정도 자제되었다. 그러나 그의 후임으로 '기획되어 있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좀 달랐던 듯하다. 그녀는 그냥 마냥 피씨의 극단화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16년 대선의 구도 자체를 피씨 VS 언피씨로 잡고 들어갔다. 아마도 그것이 먹힐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피씨의 승리, 대안 우파의 흥성과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마틴 루터 킹은 결코 쉬운 길을 선택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 반대다. 특정 사회운동이 한없이 극단화되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비겁자, 타협자, 변절자를 자처하며 온건 타협적인 길을 고수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극단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된다. 그러나 킹 목사는 그것을 해 냈고, 반면 오늘날의 피씨들은 그것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온건 타협이라는 것은 최소한 양측 간의 교집합이 남아 있을 때나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그러나 어느 일방의 계속되는 극단화로 인해 서로의 간극이 너무나 벌어져 버리게 되면 더 이상 '타협'은 불가능해지게 된다. 이때 남는 옵션이란 양측의 처절한 전투뿐이며, 이 분열은 둘 중 하나가 멸절되어야만 끝나게 된다. 


이 갈등 과정에서 기존 사회 흐름의 방향성 자체가 뒤집혀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한데(더 이상 극단 온건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오늘날 대안 우파운동은 그 '사회 흐름의 방향성' 자체가 뒤집히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징조일 것이다.


(그림설명) 비록 트럼프는 패배했지만 2016년보다 득표수를 늘렸으며 백인여성과 히스패닉 계층의 지지세도 늘었다. 트럼프 배후의 대안우파 현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신좌파 피씨스트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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