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보너머 Mar 17. 2021

회색을 말하지 말아라

TERF에 대한'거리두기'만으로 불충분한 이유

편집주 : 운영위원 박세환의  칼럼 기고입니다. 최근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거부 움직임 등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계열 페미니즘의 혐오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과 새삼 거리를 두려는 진보 여성계의 움직임이 왜 충분하지 않은지에 대한 단상입니다. 

주류 여성계의 무기력한 선언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TERF 같은 퇴행적 요소들은 이미 페미니즘의 대중적 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진보적 페미니스트 자신부터 세상의 대립이 '페미니즘 대 안티페미니즘'의 명확한 '선악대결'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지적입니다.
해외에서도 페미니즘의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며 논란이 뜨거운 TERF


1. 


트랜스젠더 변하사의 죽음에 반응하는 소위 TERF(트랜스젠더에 부정적인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의 태도가 한동안 온라인 무대의 이슈가 되었다. 그 TERF들의 수장 격(?)이라 할 법한 열다 북스 사장의 저주에 가까운 페북 막말을 통해서 말이다. 이 인사는 "아무리 수술을 한다 한들 남성은 결코 여성이 될 수 없다." "남자가 죽었을 뿐" 이라고 주장했고 많은 이들, 특히 트랜스젠더를 포용한다 말하는 '진보적'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거센 비난이 뒤를 이었다. 


현제 논란이 된 그 글은 삭제된 상태이나 발언의 수위에 분노한 많은 이들에게 박제되어 계속해서 온라인 공간을 떠도는 중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드는 상념 한 조각.


헛소리를 늘어놓는 TERF 인사들이야 당연히 못마땅하지만 그 못잖은 어떤 불쾌함을 어떤 '진보적' 페미니스트들에게서, 좀 더 엄밀히 말 하지면 TERF를 비난하는 '진보적' 페미니스트들에게 달리는 어떤 '진보적인' 사람들의 반응에서 느낀다.


그들은 TERF를 비난하며 흥분하는 '진보적' 페미니스트 친우들에게 점잖게 말한다.


"흥분할 것 없이 아예 (TERF들에게) 관심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TERF들을 잊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존재에 대한 언급 자체를 삼가 주세요."




2. 


오늘날 진보(신좌파-리버럴)들의 선조즘 되는 이들은 언제나 선과 악의 구분 자체를 지우자 말하고 다녔다. 내편과 네 편, 그 이분법이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며 강변하고 다녔다. 그런 그들의 목소리가 모여 68 혁명을 만들었다.


그 자체의 옳고 그름(세상엔 정말 선도 악도 없는가?) 여부를 떠나, 이는 어쩌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들이 어떤 세상을 원했건 간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퍼뜨리고자 하면 필연적으로 정치사회의 장에서 세력을 규합해야만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언제나 정치사회의 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인 '선악 이분법' 프레임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선악 구분의 철폐를 외쳤던 '진보들' 역시, "이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길목에서, 어쩔 수 없이 과정적으로 척결되어야 마땅한 적들이 있었다!"는 명분하에 (그들 스스로가 그토록 거부했던) 선악 이분법으로 빠져 들어갔다.


세상엔 페미니즘, 세계시민주의, 문화상대주의, 여성, 이슬람, 흑인 등등과 같이 '선한' 존재들이 있으며 이에 반대하는 이들, 백인, 기독교 등과 같은 '악한' 존재들이 있음에 세상은 여전히 선과 악으로 나뉜다!




3.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보는 이들은 악으로 선정된 이들을 싫어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악의 소멸이 아니라 악의 존재로 인해 영원히 굳어지는 선악 이분법 프레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선악 이분법 프레임 속에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는다. 때문에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프레임이 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프레임 유지를 위해서, 악은 언제나 항상 존재해야만 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ex : 그 옛날 악명 높았던 남산의 빨갱이 제조기들) 


이들은 '악'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악'의 존재가 잊힐까 두려워 없는 악도 만들어 내는 식으로 항상 사람들에게 그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분법자들, 이들이 진정으로 싫어하는 대상은 선명한 악이 아니다. 당연히 선명한 선도 아니다. 


이들은 언제나 그들의 프레임으로는 선과 악을 재단할 수 없는 모호한 대상을 가장 싫어한다. 그래, 회색이다.

회색의 존재는 그 이분법자들이 가진 프레임으로 실제 세상이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프레임의 한계를, 그 프레임이 그렇게 유효하지 않음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준다. 이분법을 팔며 그 선악 프레임 속에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이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다.   




4. 


나는 항상 진보 이분법자들에게 그들이 싫어하는 회색의 질문을 던져왔다.


문화상대주의는 선인가? 그럼 여성의 권리를 남성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는 어떤 무슬림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엄벌주의는 악인가? 그럼 여성에게 성적 위해를 가한 이를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사형제는 악인가? 그럼 전두환에게, 그리고 나치 전범들에게 사형은 언도한 재판은 잘못되었나?

그리고


성소수자를 부정하는 건 악인가? 그럼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이들을 진보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물론 나는 위의 '불편한' 지점들에 대해 '진보'가 자신 있게 답변하는 모습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선악 이분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회색의 지점들'에 대해 답변하지 못한다.




5. 


보통 이러한 회색에 직면했을 때, 이분법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보통 한 가지, 바로 '회색 지우기'이다. '선명한 흰색과 선명한 검은색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회색을 지우려 한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맙시다."


"그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잊히게 만듭시다."


"회색을 지움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엔 선명한 흰색과 선명한 검은색만이 존재한다고 여기게 만듭시다!"


그리고


"세상엔 선량한 진보적 페미니스트와 이에 맞서는 사악한 극우 안티 페미, 두 종류의 사람들만이 존재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6. 


이분법자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항상 선이거나 악으로 깔끔하게 나뉘길 원하지만 실재 세상의 대부분은, 못해도 90%는 그들의 프레임 밖에 존재한다. 이분법자들이 들고 나오는 그 구분 프레임으로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전체 세상의 10%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자들은 그 부실한 자신들의 프레임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남은 90%의 세상을 지우려 든다.


바로 그러한 기만이 "TERF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이들에게 느껴지는 불쾌감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