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재 Feb 21. 2018

잠 못 드는 베를린의 다섯

3박 4일 베를린 여행 이야기

1. 어제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한인 민박 8인실. 오늘 밤은 세 남자의 코 고는 소리가 귓가에 스치운다. 이 환장할 놈의 불협화음. 규칙이라도 있으면 적응이라도 하련만. 내가 이래서 도미토리 안 쓰겠다고 다짐했었으나 망각이 나를 집어삼킨 덕에 오늘 잠은 글렀다. 


2. 조용한 카페에 앉아 일을 하겠다던 원대한 다짐은 한 블록 앞도 예측 불가능한 베를린의 모습에 무너졌다. 뭐가 튀어나올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궁금함에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흥미롭고, 다채롭다. 크리에이티브들이 사랑할만하다. 저녁은 프랑스식 베트남 쌀국수 가게와 김치가 사이드로 나오는 일본 스타일 햄버거 가게 중에서 후자로 결정했다. 


3. 수많은 숙소를 두고 굳이 한인 민박을 고른 이유는 누군가 차려주는 한식이 그리웠고, 모국어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아니, 유창하게 말하는 내 모습이 그리웠던 것 같다. 그렇게 3일 동안 세 명을 만나 하루에 적어도 5시간은 떠들었다. 종종 하품도 하고, 목이 타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4. 그럼에도 베를린이 썩 유쾌하지 않은 건 흐린 날씨 때문인 건지, 구석마다 풍기는 대마 냄새 때문인 건지, 거리 전체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붕 떠 있는 느낌 때문인 건지, 해야 하는 일이 둥둥 떠다니는 복잡한 내 머릿속 때문인 건지, 아니면 어디든 자리 잡고 안정을 찾고 싶은 내 마음 때문인 건지 모르겠다. 따듯해지면 다시 한번 오리라. 


5. 요즘 들어 싫은 게 많다. 모르고 싶고, 피하고 싶고, 지나가고 싶다. 별거 아닌 일에 분노하고, 금세 나가떨어진다. 나는 이를 도전 후 스트레스 장애 혹은 도전 후유증이라 부르겠다.


Photo by @jinbread, Edited by @soiml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