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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Mar 03. 2023

이성은 차갑게, 감성은 뜨겁게

1996년 우리 반 교훈이자 내 인생의 모토

얼마 전 내가 일하고 있는 유치원에서 아이들끼리 사고가 있었다. 만 두 살 된 아이 둘이 서로 밀고 당기며 놀다가(?) 한 아이가 철봉에 이마를 부딪친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마를 부딪친 아이가 미처 울기도 전에 이마는 부풀어 올랐다. 금방 탁구공만 한 혹이 푸르스름 불그스름 해졌다. 아이는 그러고 이내 울기 시작했다.


밀었던 아이는 평소에도 다른 친구들을 자주 미는 아이였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다른 아이를 밀쳐서 울리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매일 선생님들은 그 아이를 졸졸 따라다녔다. 부모에게도 늘 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왔다. 간간히 다른 부모들의 불평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찰나에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선생님들은 다급하게 아이스팩을 가져다가 아이의 이마에 대주었다. 아이는 선생님의 무릎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팩을 대고 있으니 마음은 이내 진정되는 듯 보였다.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은 바로 원장님에게 알렸고, 원장님은 아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이마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두 아이 부모에게 모두 연락을 했다. 다친 아이는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해 보라는 권유의 전화였고, 밀었던 아이의 부모에게는 직접 나와서 상황을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다.


한 20분쯤 후에 두 엄마가 동시에 유치원에 도착했다. 밀친 엄마는 다친 아이의 이마를 보고 자신의 아이를 혼냈다. (호주 부모들도 아이들을 훈육할 때는 꽤나 엄한 편이다.)그리고는 다친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훔쳤다. 다친 아이의 엄마는 묵묵히 그 뒤에 서 있었다. 그저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후 원장은 오늘은 집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며 밀친 아이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다친 아이의 엄마는 친구가 간 후 자신의 아이를 꼭 안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oo이 너무 용감해,
아픈데도 울지 않고 엄마 잘 기다리고 있었네.
대견하다.
엄마랑 같이 병원에 한 번 가볼까?

그러고는 다친 아이도 엄마와 함께 유치원을 나섰다. 선생님들에게 잘 케어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난 아직도 호주 문화에 적응이 안 될 때가 많다. 특히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더 그런 걸 느낀다. 어느 때는 감정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성적이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내가 너무 냉철하지 못한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답이 어딨겠나. 결국은 다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가.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성은 차갑게
감성은 뜨겁게
이거 참 어려워



photo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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