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자살' 같지 않은 삶

by 진초록


니체의 영원회귀와 불교의 윤회는 삶의 무한 반복을 전제로 둔다. 전자는 영원히 반복해도 좋을 만큼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라는 것이고, 후자는 번뇌라고 불리는 욕심, 분노, 무지를 끊어내고 해탈하여, 생사의 수레바퀴를 벗어나라는 것이다.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니, 두 개념 다 숨이 막힌다.


같은 하루를, 같은 후회를, 같은 이별을 끝없이 되풀이해야 한다면, 그건 영원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시시포스의 돌처럼 말이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주인공인 필 코너스는 영원히 반복되는 2월 2일에 갇힌다. 처음에는 실수를 하거나 여자를 그저 놀이처럼 대해도, 하루가 지나면 2월 2일이 새롭게 시작되고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니까, 추문으로 곤욕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신이 난다. 그것도 하루이틀이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하루를 견딜 수 없던 주인공은 자살을 반복하지만, 어김없이 2월 2일 아침에 눈을 뜬다. 절망적이다. 이후 주인공은 그 반복을 좋은 쪽으로 활용하여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결국 ‘반복되는 오늘’에서 탈출, ‘진짜 내일’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주 재밌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시간이 된다면 꼭 보시길!)


우리의 오늘은 영화 속 2월 2일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회귀와 윤회의 전제 속에서 살지도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모두의 삶은 언젠가 끝이 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간을 좀 더 소중히 바라볼 수 있고, 소멸의 미학을 말할 수 있고, 끝내는 미움을 내려놓기도 한다.


이 유한한 삶이 참 좋다. 영원이 아닌 이 짧은 생이, 그래서 더 아름답다. 똑같이 반복되는 영원한 삶 속에 갇힌다면 어떤 기쁨도 의미를 잃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소거하듯 마음을 죽이며 살지 않기로 하자. 느끼고 사랑하고 흔들리며 살자.


‘느린 자살’ 같지 않은 삶. 그렇게 생생하게 오늘의 삶을 살자.


(’느린 자살’이라는 표현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 등장한다. 정말 멋진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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