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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Jul 03. 2023

2평 남짓 고시원에서 사는 기러기아빠 김씨(1)

미납자 신세가 된 김씨 아저씨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고시원 원장이 된 이후로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24시간 가동되고 있는 고시원 CCTV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CCTV라는 것을 살아생전 볼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요즘은 틈만 나면 수시로 모바일과 연결되어 있는 6.7인치짜리 화면을 통해 염탐 아닌 염탐을 하고 있다. 물론 각 방 내부는 절대 보이지 않으며, 주요 출입구 복도 주방 등 공용공간에 사람들이 드나들고 왔다 갔다 하는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공간이지만 원장인 내가 고시원에 상주하면서 입실자들을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CCTV와 보안 시스템은 정말 필수이다. 분실이라던지 예기치 못한 싸움(?)이라던지 화재 사고 라던지..다양한 사건 사고들이 늘 도사리고 있는 와중에 기댈 곳 크게 없는 초보 원장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CCTV화면 뿐이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CCTV 보기'라는 새로운 취미 생활이 생겼다.(혹여나 남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탐닉하는 변태는 절대 아니니 불필요한 오해는 마시길 바란다.) 이렇게 수시로 화면을 확인 하다 보니 대략적으로 사람들의 일상 루틴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402호 김철수님은 아침 7시에 주방에서 전 날 사둔 편의점 음식을 레인지에 데워먹고 8시 30분쯤이면 출근길에 나선다던가, 310호 박영수님은 주로 밤늦은 시간인 10시 넘어 퇴근한다는 사실, 그리고 420호 청년은 밤 12시에 종종 주방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던가 하는 흥미로운 사실들이다. 그리고 회계사를 공부한다고 엄마 손 꼭 잡고 지방에서 올라온 순박한 얼굴의 청년은 방만 구해 놓고 매일 어딜 가서 무얼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월세는 어머님께서 꼬박꼬박 넣어주신다. 어머님께는 차마 이 사실을 알릴 수 없다)




2평짜리 고시원에 사는 기러기 아빠 김씨 아저씨


우리 고시원의 입실자들 대부분은 20~30대 청년들인데, 그중 김씨 아저씨는 몇 안 되는 중년의 입실자 분이시다. 매일 쥐색 정장에 좋게 말해 레트로 감성이 가득한 빨간색 혹은 파란색 줄무늬 넥타이를 즐겨 메신다. 오래 신어 뒷굽이 해져 보이는 검은색 구두와 네모난 사각의 서류 가방을 들고 아침 8시에 출근길에 나서는 중년 남성분이신데, 그다지 눈길을 끄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 번은 그분께서 나에게 생각지 못한 민원을 넣으신 적이 있는데, 민원은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원장님, 공용공간인 복도에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맨발로 다니는데 말이죠. 본인 집이면 저렇게 신발 신고 다니겠습니까? 발자국 좀 보십쇼! 주의를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을 첨부합니다.(+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사진)"



민원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김씨 아저씨는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약간 정의감도 있는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추측되었다. 김씨의 카톡 프로필은 5살쯤 돼 보이는 천사 같은 딸아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세 가족의 얼굴은 꽤나 행복해 보였지만, 김씨는 2023년 현재 홀로 쓸쓸히 2평짜리 고시원에 수년 째 살고 있는 기러기 아빠이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김씨가 꽤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결정적 사회적 증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 번도 밀린 적 없이 꼬박꼬박 내 통장에 들어오는 고시원 입실료 명세표였으며 나는 그 증명서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습하디 습한 어느 날이었다. 늘 흐트러짐 없이 회사와 고시원을 오가던 김씨 아저씨는 그날따라 어디서 거나하게 막걸리를 걸쳤는지 밤 11시가 되어서야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CCTV 너머로 보이는 김씨 아저씨의 뒷모습이 괜스레 애처로워 보여 하마터면 화면 너머로 말을 건넬 뻔했다.


'김씨, 혹시..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늦은 밤 모든 사람들이 곤히 자는 시각 틀리려야 틀릴 수 없는 도어록 비밀번호 1234를 여러 번 시도한 끝에 행여나 가족들이 깰까 봐 숨죽이며 귀가하던 어릴 적 아빠의 뒷모습이라도 보았던 것일까. 당연히 CCTV 너머로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렇게 나지막이 말을 건넨 후, 간신히 방으로 들어가는 김씨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일주일 뒤, 김씨 아저씨의 월세 입금일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동안 단 한 번의 미납도 없었던 성실 납부자인 김씨는 불행히도 그날 돈을 입금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우선은 하루 이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났지만 돈은 역시나 입금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먼저 문자를 보내보았다.



"안녕하세요. 000고시원 원장입니다. 이번달 10일 입실료가 입금되지 않아 연락드렸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혹시 …….무슨 일 ….생기셨나요?" 하지만 김씨는 며칠째 문자도 전화도 받지 않고 묵묵부답이었다.



이쯤 되니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고시원에서 내가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혹은 신뢰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이고 믿음직한 지표는 꼬박꼬박 입금되는 입실료이다. 그것은 입실자들이 무사히 살아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자, 나의 밥줄이기에 매우 중요한 일이며 고시원 원장에게 있어서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입금도 하지 않고 모든 연락을 피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안부 전화 묻듯이 끈질기게 전화와 문자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김씨가 응답했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제가 지금 엄청난 위기상황에 처했거든요. 딱… 딱!! 일주일만 시간을 더 주시면 꼭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짧은 문자였지만 다급함이 느껴졌다. 도대체 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교통사고라도 당했나? 사채 빚이라도 생겼나? 혹시 생긴 것과 다르게 도박을 하나? 아.. 아니다 주식으로 날렸나 보다!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그다지 친밀한 사이는 아니기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더 이상 자세한 내막은 묻지 못했다. 일주일 전 추적추적 비가 오던 날 CCTV 너머로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던 김씨의 뒷모습만이 선명하게 오버랩될 뿐이었다.



"네... 무슨 일이신지 모르겠지만 잘 해결하시길 바라고 다음 납기일은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사막처럼 무미건조한 말투로 답변했다.

"네.. 감사합니다 원장님. 제가 정말 이런 사람이 아닌데.. 진짜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 꼭 입금하겠습니다..."



'제발 꼭 약속을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제발요!



하지만 김씨와의 끈질긴 악연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와 우리 사이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왜 2평 고시원에서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성실해 보이던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to be continue..





김씨와의 끈질긴 인연, 이어지는 이야기..

<따로 또 같이 고시원, 삽니다> 바로 가기




1년 여간의 브런치 글을 엮어 드디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브런치에는 차마 쓰지 못한 숨겨진 이야기들, 개인적인 스토리들을 담아 흥미진진한 책이 나왔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담 작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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