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년은 2년째 왜 고시원에 살고 있을까?
3개월간의 기나긴 임장을 거쳐 드디어 우리는 고시원 원장이 되었다. 각 방에 화장실 겸 샤워실이 모두 구비되어 있는 원룸형 고시원이었다. 여기서 잠깐, 이해를 돕기 위해 고시원 유형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고시원에는 원룸형/샤워룸/미니룸이 있다. 원룸형은 일반적인 원룸과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샤워룸은 간단한 샤워공간이 포함되어 있지만 공용 화장실을 이용한다. 미니룸은 룸만 제공하기 때문에 별도의 공용 사워실과 화장실을 제공한다. 당연히 서비스 가격은 원룸형>샤워룸>미니룸 순이다.
우리는 42개의 올 원룸형 고시원을 선택했다. 샤워룸이나 미니룸에 비해 높은 월세를 받을 수 있고, 주기적으로 원장이 청소하고 관리해야만 하는 공용시설 부분이 적었으면 했다. 또한 보다 높은 입실료를 받을 수 있었고, 그 말인즉슨 조금이나마 경제적 여건이 나은 입실자들을 상대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었다. 따라서 좀 더 운영상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경제적인 이유로 입실료를 자주 미룰 가능성이 높은 진상 고객도 피하고 싶었다.)
8월 더운 여름날 임장을 시작하고, 12월이 되어서야 우리는 최종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그동안 정말 다양한 타입의 고시원을 보았고, 다채로운 사람들을 마주쳤기에 고시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어색함은 많이 무뎌진 상태였다. 타인의 지옥이라고만 생각하고 뛰어들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초보 원장이었다.
고시원을 인수하고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앞으로 내가 운영해야 할 이 공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하는 것들이었다.
선배 원장님들에게 어깨 너머 듣기로는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거나, 열악한 환경의 고시원에서는 종종 고독사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니 알 수 없는 '악취'가 난다면 반드시 의심해 보라고 했다. 만일 고독사가 발생한다면 소리 소문 없이 시신과 방을 정리하고 남아있는 입실자들의 동요를 최소화하는 매뉴얼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당황하지 말고 조용히 본인에게 전화를 하면 도와주겠다는 친절한(?) 선배 원장님도 계셨다.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긴 한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제안이었다.
만일 당신이 운영하는 업장에서 누군가가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나간다면 어떨 거 같은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슬픈 일이 아닐까?
온실 속 화초처럼 직장생활만 하던 나로서는, 그런 엄청난 사건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지만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말이다.
고시원을 양도한 전 원장은 우리 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생각보다 동안이었으며 서글서글한 말투와 달리 무신경한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1차 충격은 나보다 어린놈이 벌써 이 험한 업계에 뛰어들어서 '부업'삼아 고시원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2차 충격은 본인이 운영하는 고시원에 대해 놀랄 만큼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장님, 지금 고시원에 주로 어떤 분들이 지내시나요?"
"아.. 음.. 아마도 대부분 공부하시는 학생분들이 많을 거예요." (잘 모르겠다는 듯이)
"나이 드신 분들은 없나요?"
"제가 알기론 없어요... 한두 분 계시려나?"(관심 없다는 표정)
인수인계 할 때 뭘 물어보면 대충 이런 식이 었다. 전 원장은 정말로 고시원에 대해 딱히 아는 것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며 대부분 외주화를 해서 오토 운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본인이 운영하는 고시원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이토록 모르다니. 그럴 수가 있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전 원장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일이었다. 혹시 신변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없는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42명이 입실자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었다.
입실자 파악을 해보니 정말 대부분 직장인이거나 근처 학원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20-30대 수험생 분들이었고 남성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고시원의 태생이 원래는 고시 공부를 하던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시원에 수험생들이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우리가 인수한 고시원 근처에는 각 종 유명한 대형 학원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방에서 일부러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도 많았다. 1차 2차 시험 일정에 맞춰서 학생들이 들어가고 나가기를 반복하는 듯했다.
나도 처음에는 고시원이라는 곳은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만 사는 곳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운영을 해보니 생각보다 좋은 기업에 다니고, 괜찮은 급여를 받으며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2030 청년들도 꽤 많았다. 서울의 주거비용이 많이 높기는 하지만, 그래도 웬만한 대기업에 다니면 원룸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이 굳이 고시원에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속사정이 궁금하지 않은가?
여기 30대 초반의 한 남성 입실자가 있다. 인수인계받은 입실자 관리 명부를 보니 2년 넘게 장기 거주를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근처 대형 금융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었는데 팀장 직함을 달고 있었다.
한 번은 그 입실자분께서 본인 방에 물이 샌다고 카톡으로 연락을 주셨다. 그런데 카톡 프로필을 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5만원짜리 방에 2년 동안 거주하고 있다는 그 입실자분의 카톡 프로필은 너무나도 화려했다. 평소에는 톰브라운 셔츠와 가디건을 즐겨 입으며 겨울에는 몽클레어 외투를 입고 다녔다. 손목에는 번쩍이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외제차 앞에서 한껏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뭐지..? 이 사람?)
아, 이렇게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느라고 원룸 하나 얻을 돈이 없어서 고시원에 거주하는 것인가? 한심하다.. 한심해!!!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허영심만 가득하고 내실은 1도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다. 고시원에 오는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속사정이 있기 마련이니까.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그 청년은 단 한 번도 입실료를 밀린 적이 없는 우량 고객이었던 것이었다. 평소 말투나 행실을 볼 때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성실해 보이는 사람도 아니었다.
며칠 후 우리는 그 입실자 방의 누수를 해결하기 위해 허락하에 방으로 들어갔다. 몽클레어와 롤렉스 시계를 걸치고 35만원짜리 고시원에서 2년 동안 살고 있으며, 화려한 카톡사진을 자랑하고 있던 그분의 방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이쯤에서 막간 퀴즈를 내보겠다. 입실자의 방 상태는 과연 어땠을까?
1) 놀랍도록 더러운 쓰레기 방이었다.
2) 각 종 술병이 쌓여있고, 찌든내가 진동을 하는 방이었다.
3) 의외로 매우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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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정답은 없다. 왜냐하면 매우 깨끗한 정도가 아니라 놀랍도록 단정하고 말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향기가 났다. 방향제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즐겨 쓰는 향수 냄새인지 분간은 가지 않았지만, 도저히 고시원에 혼자 사는 30대 남성의 방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향기로움이었다.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여자 혼자 자취하던 20대 시절 내 자취방보다 훨씬 깔끔했다. 그 좁은 공간에 모든 물건은 신기할 정도로 제 자리를 찾아 안정감 있게 정돈되어 있었고, 90cmX190cm짜리 좁은 침대는 호텔방처럼 각이 잡혀 있었다.
뭐지? 이사람...대체 정체가 뭐야?
알고 보니 그분은 정말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바와 같이 멀쩡한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괜찮은 월급을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그분이 고시원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 고시원이 바로 회사 코 앞 5분 거리에 있으며, 라이프 스타일 상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고 집에서는 잠만 자기 때문에 주거비용에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알고 보니 멀쩡하다 못해 핵 가성비를 추구하는 똑똑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본인이 좋아하는 명품 소비는 좀 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완벽한 직주근접,
보증금 5만원, 월세 35만원
심지어 추가 공과금 전혀 없음.
생각해 보니 가정이 없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거나 밖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 밤 늦게나 집에 들어오는 직장인 싱글 남성에게 정말 최적의 조건이었다. 요즘 시세로 최소 보증금 5천만원은 있어야 서울 한복판에 원룸을 얻을 수 있을 것인데, 보증금 5천만원이면 웬만한 경기도 지역이나 지방 소도시에 부동산 갭투자도 할 수 있는 액수이다. 극 가성비를 추구한다면 고시원에 살면서 주거비용을 최소화하고 부동산에 투자를 할 수도 있고, 본인이 좋아하는 여행을 즐기거나 종종 명품 쇼핑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통장에는 삐까번쩍한 오피스텔 월세를 얻고도 남을 만한 잔고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어사전]
선입견(先入見)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
편견(偏見)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강남에 살면 분명 개부자일 것이다."
"8학군 출신이면 당연히 똑똑할 것이다."
"고시원에 살면 당연히 가난할 것이다."
"지방대를 나오면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뭐 이런 선입견들 말이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때가 많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으레 그럴것이라고 짐작하는 것들에는 많은 오류와 헛점이 있음을 종종 있고 산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나의 이런 편견과 선입견은 보기 좋게 해체되곤 한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이라는 편견. 당연히 가난할 것이라는 선입견. 허영심 높고 소비 관념은 안드로메다에 있을 것이라는 오해. 나 뿐만 아니라 '고시원'에 산다는 이유 만으로 그 사람이 견뎌야 할 타인의 시선은 생각보다 따갑고 쓰라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고시원에 살고 있는 그 청년이 어쩌면 더욱 대단한 선택을 한 것일지 모른다.
35만원짜리 2평 남짓 고시원에 살지만, 명품을 좋아하는 이 청년에게 과연 그 누가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따로 또 같이, 고시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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