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고시원 본격 임장기
8월의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날씨는 꽤 더웠지만 구름 한 점 없는 좋은 여름날이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들뜬 마음으로 고시원 임장을 가기로 했다.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매우 낯선 곳이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마음 한편은 설레었다. 도대체 고시원은 어떻게 생긴 곳일까?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고시원에 들어가 본 적도 살아 본 적도 없었다.
TV 드라마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 전부였기에 매우 열악하고 음침하고 어딘가 모르게 불쾌한 느낌만 연신 떠올릴 뿐이었다. 타인의 지옥= 고시원. 내 머릿속은 그렇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설레는 마음 반, 불안함 마음 반으로 본격 임장을 시작했다.(이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무려 3개월이나 고시원 임장을 할 줄이야..)
일단, 고시원 전문 중개사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고시원 매매/고시원 매수/고시원 매도 등등 다양한 키워드를 조합해서 초록창에 검색을 해보았다. 고시원 전문 중개 사이트들과 여러 개의 고시원 매물을 홍보하는 블로그들이 보였다. 평소 블로거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그래도 블로그 포스팅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개사가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 가장 퀄리티 있는 포스팅을 하고 있는 중개사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참고로 고시원은 일반 부동산에서 거래가 되지 않는다. 고시원창업을 생각 중이라면 꼭 믿을만한 고시원 전문 중개인을 먼저 찾길 바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시원 매물 포스팅 올리신 것 보고 연락드렸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원하시는 금액대가 어떻게 되세요?"
중개사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듯 약간 귀찮은 목소리였지만, 매우 단도직입적이었다. 우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살짝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사실 이때만 해도 얼마가 적정한 금액인지 감이 없었다.)
"아... 1...억에서 1.5억이요. 오늘 시간 되시면 바로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마침 딱 맞는 물건이 있는데....종로에서 11시에 뵐까요?"
그렇게 고시원 중개사와의 첫 만남이 급 성사 되었다. 대망의 첫 번째 임장이었다. 중개사는 술집이 즐비한 서울 한복판 번화가에 위치한 한 고시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도저히 시끄럽고 복잡해서 사람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위치였다. 이른 오전이었지만 아직 숙취가 해소되지 않은 듯 어딘가 모르게 걸음걸이가 엉성한 사람들도 보였다. 근처 해장국 집에서는 해장인지 아침밥인지 모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다.
'이런 위치에 고시원이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중개사가 나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한마디 던진다.
"(호갱님..) 고시원은 처음이시죠?"
"아... 네..."
"이쪽으로 올라가시면 되고요, 일단 한번 보세요. 원장님이 오래 운영하셨는데 지방으로 내려가셔야 해서 급하게 파신다네요." (백이면 백 기존 원장님들은 신기하게도 팔 수밖에 없는 아주 급한 개인 사정이 있으시단다. 건강상 문제, 자금 문제, 이사 문제 등등)
덩치가 큰 남편과 보통 체격의 30대 여성인 내가 나란히 설 수 없을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계단이었다. 계단을 따라 한 명씩 올라가는 와중에 정돈되지 않은 몰골로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다른 한 손에는 믹스커피를 든 채 무기력하게 길을 나서는 30대 초반의 남성 입실자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단연코 그것은 경계의 눈빛이었다. 순간 나는 얼음이 되고 말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태연한 척하며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총 2개 층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시원에는 각 층마다 15개~20개 정도의 방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식상한 표현은 쓰고 싶지 않지만, '닭장 같다'라는 문장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정말 딱 그랬으니까.
샤워는커녕 발도 씻기 어려워 보이는 비좁은 공용 샤워실과, 똥 싸다가 공황장애가 올 것만 같은 공용 화장실이 층마다 한 두 개씩 있었다. 찐득하게 눌어붙은 공용 주방의 기름때 덕분인지 안 그래도 더운 날씨가 더욱 끈적하게 느껴졌다. 싱크대 밑에서는 금방이라도 들쥐가 나올 것 같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조명은 또 왜 이렇게 어두침침한지. 빨간 불만 켜놓으면 당장이라도 스릴러 한편 찍어도 될 거 같은 극강의 비주얼이었다.
나는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로 생각했다.
맙소사. 신이시여!
나 지금 번지수 제대로 찾은 것 맞나?
도대체 이런 곳에서 누가, 왜 사는 거지?
이게 장사가 된다고? 돈이 된다고?
중개사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웃으며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2 평남짓 되는 공간에 침대, 책상, 의자, 옷장이 단출하게 구비되어 있는 미니룸이었다. 방 청소는 나름 잘 되어 있었는데 사실 청소를 할 만한 공간도 딱히 없어 보였다. 처음으로 마주한 2 평남짓 고시원에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크게 벌려 보았다.
양 손가락 끝이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 덩치 큰 우리 남편은 아마 억만금을 준다 해도 도저히 이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미니룸은 화장실/샤워실이 없고 방만 덩그러니 있는 형태의 방을 말한다.)
그 좁고 활기란 1도 없어 보이는 공간에서 한 껏 양팔을 벌리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누군가의 고단한 인생을 대가로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내 속마음과 닮아서 씁쓸함이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비슷한 환경, 비슷한 사람들만을 만나왔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 조금 특별한 사람이라고 해봤자, 50대 후반의 나이에 승진을 포기하고 젖은 낙엽처럼 꿋꿋이 회사에 남아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며 월급 루팡을 하고 계시는 어느 선배님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중개사는 잠깐 차 한잔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했다. '아까 그 미니룸에서 하루 종일 있느니.. 커피숍 가서 24시간 죽치고 있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바로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스타벅스는 아침부터 활기가 넘쳤다. 테이크아웃을 하는 직장인들, 업무 상 미팅하는 사람들, 공부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데 아까와 너무 대조되는 분위기에 현기증이 느껴졌다.
아까 본 그 미니룸은 한 달에 40만 원이라고 했다. 보증금도 없고 추가 공과금도 없단다. 김치도 주고 쌀도 주고 라면도 준다고 한다.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지만 한두 개 공실을 제외하고 성황리에 영업 중인 곳이라고 했다. 권리금과 임대 보증금 합쳐서 1.6억인데 이것저것 다 제하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돈은 400~500 정도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40만 원짜리 미니룸에 살면서 고시원에서 무료 제공하는 싸구려 믹스커피를 먹고 있던 입실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자본주의란 정말 냉혹하구나.
근데 이걸로 누군가는
매 달 꼬박 500만 원을 벌고 있다.
"요즘 유튜브 때문에 난리예요. 물건이 없어서 못 팔아요. 젊은 사람들이 문의가 엄청 오고 있거든요. 예전에는 알흠알흠 아는 사람들끼리 해 먹는 구조였는데 말이죠. 어제도 두 건이나 계약하고 왔다니까요? 근데 다 20-30대 원장님들이에요. 물건 있을 때 빨리빨리 잡으세요. 요즘 고시원 시장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중개사 말은 실제로 사실이었다. 내가 임장을 시작할 때쯤 고시원 키워드 검색량이 폭발했었고, 각 종 유튜브에서 고시원 성공사례를 홍보하고 있었다. 나 또한 유튜브를 보고 뛰어들었으니 말이다.
이어서 두 번째로 보여준 매물은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학가 근처의 혼합룸이었다. (*혼합룸은 미니룸+ 화장실 겸 욕실이 구비된 원룸형이 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인테리어 공사가 거의 다 되어 있고 우리처럼 젊고 센스 있는 주인을 만나면 때깔이 확 달라질 물건이라며 연신 칭찬을 했다.
직전 물건을 브리핑할 때와는 중개사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어쨌든 두 번째 물건은 중개사의 말처럼 상태가 조금 나아 보였다. 대학가 근처라서 그런지 첫 번에 본 고시원 보다 좀 더 활기찬 느낌의 상권이었다. 보다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공사를 하다만 흔적이 군데군데 있었다. 직전에 본 고시원처럼 미니룸이 대부분이었고 화장실 겸 샤워실이 딸린 원룸형 방도 2~3개 정도 있었다. 대부분의 방은 텅텅 비어있었고 20대로 보이는 외국인 여성들 2~3명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를 거의 다 한걸 보면 운영할 마음으로 누군가가 인수를 해서 손을 봤다는 건데...? 제대로 운영을 해보기도 전에 다시 매물로 나온 것이 영 석연치가 않았다.
"이 물건, 근데 왜 공사까지 해놓고 운영을 안 하시는 거예요? 무슨 사연이라도…?"
"아... 유튜브 보고 혹해서 지방에 계신 주부님이 덜컥 인수를 하셨는데 도저히 못하시겠다네요. 동업자랑도 문제가 있고 남편 몰래 한 거라... 스트레스가 심해서 공황장애 직전이시래요."
"아... 네 그렇군요, 처음 본 물건보다는 훨씬 좋아 보이긴 하는데 공실이 너무 많네요. 공실 생각하면 가격도 좀 비싼 거 같고요."(괜스레 비싼 거 같다고 으름장을 놓아 보았다.)
대화를 하면서 나도 유튜브 보고 혹해서 온 아줌마인데,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뜨끔했다. 일단은 집에 가서 좀 더 조사해 보고 매물 보는 눈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개사가 제시한 금액이 합리적인 금액인지 아닌지 조차도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첫 임장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중개사는 카톡을 보내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두 번째 소개한 매물을 계약시키고 싶어서 엉망진창인 첫 번째 매물을 미끼로 보여준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 물건 생각해 보셨어요? 매도자분이 지방에 계시고 공사비만 날려서 상황이 좀 급하시니… 사모님이 하신다고 하면 네고 잘해드릴게요. 얼마까지 해드리면 계약하실 거예요?"
"얼마까지 네고 가능하신데요?"
"음... 원래 2억인데 현 원장님이 1억 8천 이하는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네, 좀 비싸네요. 텅텅 비어있는 물건인데..."
"그럼 1억 5천까지 만들어볼게요. 그 대신 중개료 천만 원 챙겨주시죠. 콜??"
어제는 2억이었던 물건이 하루아침에 5천만 원 할인가가 되었다. 그리고 500만 원이던 수수료는 X2배가 되어 1천만 원이 되었다. 아! 이 바닥이 이런 곳이구나. 나는 속으로 나지막이 외쳤다.
‘XX새끼, 누굴 호구로 아나.'
첫 고시원 임장은 나에게 다소 충격 그 잡채였다. 다행히 나는 그 후로 정말 좋은 중개사분을 만나서 천천히 시장을 공부하고 기다리면서 무려 3개월 동안 임장을 다녔고, 우리는 지금은 무사히(?) 원장이 되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고시원 사업에 관심이 있어 임장을 하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주제 넘지만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드리고 싶다.
오늘은 오늘의 기회가 있고,
내일은 내일의 기회가 있습니다.
절대 조급해하지 마시길.
추가로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나의 첫 고시원 임장은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모든 고시원이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요즘은 센스 있고 의욕 넘치는(나 같은?) 젊은 원장님들이 뛰어들어 정말 사람 살만하게 가꾸어 놓고 프리미엄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시원들이 많다는 점 오해 없길 바란다.(당장 초록창에 홍대 신촌 강남 등 주요 지역 고시원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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