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퇴사해야 할 것 같아."(프롤로그)
갓난쟁이 둘째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고 있던 10월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집을 나섰던 4살 아들의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엄마의 직감이었을까?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소름 끼치게 불안했던 그날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님, 유민이가 오후 간식 시간에 갑자기 뒤로 넘어갔어요. 몇 초간 정신을 잃은 것 같았는데, 금방 다시 일어나긴 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서요..."
"네??? 뭐라고요? 지금은 괜찮나요..? 당장 데리러 가겠습니다."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부리나케 아이를 집으로 먼저 데리고 왔다. 그날로 4살 난 유민과 나는 갑작스레 몇 달간의 입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건강해져서 이 또한 지나간 사건이 되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둘째 딸 유진이는 친정 엄마와 남편 손에 맡기고 코로나가 창궐하던 어느 날 하늘을 원망할 기력조차 없는 긴 밤을 병실에서 보냈다. 하루에도 수차례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아이를 보면서 인생에 대해, 행복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하필 우리 유민이에게...
늘 건강하고 씩씩한 유민이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처음엔 그렇게 "왜 하필.."이라는 생각이 나의 모든 사고를 집어삼켰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문득 이런 생활이 쉽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내 인생에 엄청난 위기의식이 밀려왔다.
대기업 직장 생활 10년 차 연봉 1억 워킹맘 김 과장의 삶은 남들 눈에 크게 부러울 거 없는 꽤 괜찮은 삶이었으리라. 하지만 회사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부모님의 육아 도움을 받아야 했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과 노동력을 회사에 쏟아부어야만 하는 것이 진짜 우리의 현실이었다.
계속 병실 생활을 해야 한다면?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다면?
더 이상 출근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그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다면?
이러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날 밤. 직장생활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워킹맘의 맘 속에 이상한 오기가 샘솟았다. 남편과 나 둘 중 한 명은 퇴사를 하고 회사에 메여 있지 않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평생을 직장인으로만 살아왔던 나였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그런 신박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막막하기만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일단 무작정 블로그를 만들어서 경제/비즈니스 블로거 활동을 시작해 보려 마음을 먹었고, 돈과 관련된 다양한 유튜브를 미친 듯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알고리즘이 이끄는 데로 온라인 세상을 헤엄치다 운명처럼 고시원 관련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블로거 활동을 하던 중에 동시다발적으로 고시원과 스터디카페 사업을 인수해서 경제적 자유에 이른 직장인 블로거의 이야기도 접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시원은 나에게 두려움과 미지의 세계였다. 한창 인기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타인의 지옥을 떠올리며,고시원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루 2시간 일하고 월 1천만 원 벌기
그게 가능하다고? 다 뻥 아니야?
그래 밑져야 본전인데 알아나 보자!!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길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갑자기 퇴사와 고시원 이야기를 꺼냈다. 안 그래도 첫째 아이는 아프고, 부재중인 엄마를 대신해 갓난쟁이 둘째 육아에 정신이 없었던 남편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다소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여보, 아무래도 둘 중 한 명은 퇴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우리 유민이 이렇게 계속 아프면 어떡해. 엄마 아빠가 옆에서 지켜줘야지. 고시원을 하면 하루 2시간만 일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데. 한번 알아나 보자.."
"응? 퇴사..? 고시원..?"
몇 초간 짧은 정적이 느껴졌고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도 그 짧은 순간에 아이의 건강, 직장 생활, 먹고사는 문제, 둘째 육아, 우리의 미래, 가족의 행복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소 생경하게만 느껴졌던 '고시원'이라는 사업에 눈을 뜨게 되었고, 돌연 고시원 원장이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고시원 원장이 된다고?
평생 직장인으로만 살 줄 알았고, 대기업 명찰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며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이 충분히 행복한 삶이라 여기며 살았던 우리였는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을 꽉 움켜쥐고 연신 무섭다고 소리치며 울던 유민이를 부둥켜안고 병원에 입원하던 그날을 계기로 우리는 깊게 좌절했지만 인생을 다르게 살아볼 새로운 용기도 얻었다.
하지만 고시원 원장이 되는 길이 만만치 만은 않았다. 창업 혹은 사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혹시나 더 좋은 아이템이 있을까 싶어 필사적으로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카페, 무인아이스크림, 무인카페, 무인문방구, 에어비앤비, 파티룸 등등 수많은 아이템 중에서도 결국 최종적으로 고시원 원장이 되기로 결심하기까지 나름의 공부와 진통을 겪었다.
타인의 지옥 보다 더 냉혹했던 고시원 임장의 추억부터, 본격적인 퇴사와 고시원 운영 과정까지. 무엇 하나 그리 만만한 것은 없었다. 평생을 직장인으로만 살았던 우리 부부는 고시원을 통해 생에 처음으로 직장 밖에서 돈을 버는 방법을 배웠다.
몽클레어 외투와 로렉스 시계를 걸치고 2평 남짓 공간에 살아가는 청년들, 3살 난 딸아이와 와이프를 두고 고시원에서 기러기 생활을 하는 40대 가장,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42명의 입실자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스토리가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통해 자본주의의 냉혹함과 인생의 지혜를 깨달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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