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시원 사업을 선택한 네 가지 이유
아이와 병원에 있으면서 가장 뼈저리게 갈구하게 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원망도 슬픔도 아니었다. 바로 '자유'였다. 무엇에 대한 '자유'인가 하면,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를 지키기 위하여 언제든 아이 옆에 있을 수 있는 선택의 자유였다. 그 선택의 자유는 결국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만 함을 의미했다. 그리고 또한 먹고 사는게 지장이 없어야 하므로 경제적 자유를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과 나 둘 중 누군가는 퇴사를 하고 돌연 고시원을 창업하기로 한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 악착같이 회사를 더 열심히 다녀서 병원비도 마련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그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일시적인 임시 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더욱 장기적 관점에서 시간을 돈으로 맞바꾸지 않는 그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최소한의 시간만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1일 8시간 주 40시간을 근무해야 한다. 4주면 월 160시간을 근무하는 꼴이다.(일이 적으나 많으나 무조건 메여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고, 오히려 야근을 하는 경우가 더욱 허다하다.) 그리고 한 달에 50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고 해보자.
만약 유튜브에서 떠드는 것처럼 고시원에서 주 4시간만 일해도 된다고 가정하면? 고시원에서는 월 16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그리고 한 달에 500만 원 이상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다.
똑같은 500만 원을 버는데 내가 회사에서 써야 하는 시간과 고시원에서 써야 하는 시간은 160시간 VS 16시간, 즉 10배 차이라는 계산이 선다. 회사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스마트한 직장인이라는 때깔을 포기하고 다소 칙칙하고 초라해 보이는 고시원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성공한다면, 유튜브에서 떠드는 것처럼 월 144시간(160시간-16시간)을 확보 함과 동시에 동일한 수준의 현금흐름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때만 해도 제발 이것이 사실이길 바랐다. 수백만 원 혹은 수천만 원의 강의/컨설팅이나 팔아먹으려고 사기꾼들이 짜 놓은 판에 발을 들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돼서 잠도 못 잤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남편과 나 둘 중 누가 퇴사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아마도 대부분 이런 경우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남편보다는 여자 쪽이 퇴사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혹은 둘 중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퇴사를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참고로 남편과 나는 둘 다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심지어 연차도 연봉도 비슷했다. 그렇다면 더욱이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테니 엄마가 퇴사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일이 벌어지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런 고민을 한창 하고 있을 때 마침 남편의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일정 사업 부문을 정리하면서 희망퇴직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당연히 엄마인 내가 퇴사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희망퇴직이라니? 희망퇴직을 할 경우 적지 않은 액수의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은 평생 직장인으로 뼈로 묻고 싶은 아주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아이를 위해,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퇴사 결심을 했기에 그 제안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왜 하필이면 아이가 아프고, 퇴사를 고민하고, 창업을 결심한 이 순간! 희망퇴직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졌을까? 이것은 분명 인생이 우리에게 보내는 무언의 신호가 아닐까 싶었다. 이 날의 선택이 훗날 악수일지 아닐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때부터 고시원이라는 업종이 정말 괜찮은 사업인지 열심히 알아봤다. 그리고 결론 끝에 고시원을 선택하였다. 여기서 잠깐, 고시원이라는 업종에 대해 궁금해 할 수도 있는 독자들을 위해 우리가 고시원 사업을 최종적으로 선택한 이유를 간단히 적어 보려 한다.
남편과 나는 줄곧 직장 생활만 해왔기에 이렇다 할 특별한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사실 창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시원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을 거 같았다.(각종 진상들을 상대하고 시설 관리 업자 버금가는 잔기술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과거에는 주로 노후에 은퇴하신 어르신들께서 고시원을 운영했었다. 60대 어르신들도 은퇴하고 선택하는 일인데 앞날이 창창한 젊은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공간만 잘 운영하고 임대를 주면 따박 따박 월세 형태로 돈이 들어오니 안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즉, 사람이 먹고사는 것과 밀접한 업종이기에 그만큼 수요가 많고 망하기 어려운 업종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1인 가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아시다시피 일자리가 모여 있는 서울은 늘 주택이 부족하고 비싸다. 따라서 저렴한 가격에 장단기로 거주할 수 있는 고시원은 오히려 불황이 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업종이라고 생각했다.
고시원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왠지 모를 불쾌하고 음산한 이미지들은 고시원 사업의 진입 장벽을 높여주고 있다. 한창 타인의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방영할 때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그 드라마가 사람들의 이미지에 꽤 강렬하게 각인된 것 같다. 그러한 편견으로 인해 경쟁자가 걸러진다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또한, 고시원을 신설하는 것은 수억 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 수 없는 구조였다.
최소한의 시간을 투입하여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유가 가장 크다! 우리는 더 이상 기존처럼 24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쏟으면서 일개미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같은 돈을 벌더러도 보다 효율적으로 벌고 싶었고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많은 시간을 확보하고 싶었다.
이것이 연봉 1억 워킹맘이 남편을 퇴사 시키고 돌연 고시원을 창업한 이유이다.
남편의 회사 사람들은 퇴사를 결심한 남편에게 나이도 젊은데 벌써 퇴사하면 뭐 해 먹고 살거냐, 정말 괜찮겠냐,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하면서 걱정 어린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실제로 남편과 함께 입사한 친한 동기들은 단 한 명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고 모두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다.
회사에 희망퇴직서를 발송하기 직전 남편은 나에게 다시 물었다.
"여보, 나 진짜 전송한다..? 마음 변함 없지………?"
"그래, 당연하지. 이건 신의 계시야!!!!"
그렇게 나와 첫째 아이가 병실에 있는 와중에, 멀쩡한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졸지에 희망퇴직자가 되었다.
아이가 퇴원을 하면, 본격적인 고시원 임장을 다니기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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