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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Sep 04. 2023

눈물없인 못봐주는 00년생의 서울 고시원 생존기

고시원엔 남자가 많이 살까 여자가 많이 살까?


물론 여성 전용 고시원도 존재하지만 대체로 여성보다는 남성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고시원의 환경이 조금 열악한 면이 있다 보니 여성들은 되도록이면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얻는 게 아닐까 싶고, 남성의 경우 돈을 아낄 수 있다면 약간의 불편함과 찌질함을 감수할지언정 가성비 끝판왕인 갓성비 고시원을 택하는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고시원만 하더라도 90% 이상이 남성 입실자들이다. 특별히 여성 고객을 회피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리만큼 남성 입실자의 비율이 높았다. 사실 초반에 고시원을 인수하고 나서는 시커먼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고시원 분위기가 영 칙칙한 것 같아 여성 입실자 고객을 유치하려고 꽤 많은 공을 들였었다.


여성 고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남성 보다 여성이 방을 깨끗하게 쓸 거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곱상하게 생긴 MZ세대 청년이 6개월 동안 살면서 멀쩡한 방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놓고 나갔을 때 받았던 충격도 한몫했다. 실제로 직접 계약으로 잘 연결되진 않았지만 여성 고객들의 문의 자체가 아예 없는 편은 아니었기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전용 고시원으로 오해를 받을 만큼 남성비가 압도적으로 항상 높았기에 우리는 이 문제를 타개하고자 몇 가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 첫 번째 조치가 바로 네이버 썸네일 변경이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업장의 썸네일은 고객과의 첫 번째 접점이자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실인 방을 최대한 갬성 넘치게 꾸민 후, 클릭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사진으로 그럴싸하게 보정하여 네이버 대표사진으로 내걸어 보았다.


효과는 생각보다 즉각적이고 폭발적이었다. 10년 전 인테리어 한 듯한 구닥다리 사진에서 오늘의 집 어플에 나올 법한 예쁜 사진으로 대표사진을 바꾸자 여성 고객들의 문의가 쭉쭉 늘어났다. 열에 한 두 명 정도가 여성 고객의 문의였다면 사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열에 다섯 정도로 비율이 증가하였다.


그렇게 여성 고객들의 관심을 늘려, 몇 번의 추가 계약을 하고 나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여성고객분들이 많아지니 방이 깨끗해서 관리도 수월하고, 고시원 분위기도 살아났어요! "라는 후기를 기대했지만, 남성보다 여성이 더 깨끗하게 방을 쓸 것이며 관리도 쉬울 거란 생각은 완전한 오류였다.


아니, 오류 정도가 아니라 절망 그 자체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하나 같이 외모도 잘 꾸미고, 패션감각도 뛰어나며, 활기차고 밝았던 아름다운 여성 입실자들은 너도 나도 방을 너저분하게 쓰고 나갔으며(쓰레기방까지는 아니었지만) 특별히 유별나게 깔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퇴실을 하고 난 후, 생각지 못한 골칫거리가 옵션처럼 하나씩 늘어났다. 방 곳곳은 물론 특히 화장실 하수구를 꽉 틀어막고 있는 그녀들의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날 미치게 했다. 까마귀처럼 시커먼 머리카락 뭉치들은 소름 끼치게 진절머리가 났고 그 뒤처리를 하느라 힘이 두 세배는 더 들었다.


한 가지 더 푸념을 더 하자면 여학생들은 남학생의 비해 민원도 훨씬 많았고 신경도 많이 쓰였다. 2년 동안 살았던 남학생이 단 한 번도 아무런 불만 없이 만족하며 살았던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들어온 여학생은 음식냄새가 올라온다, 날파리가 잘 생긴다, 살아보니 생각보다 방이 너무 좁다(?) 등등 각종 불만사항을 알려올 때가 많았다.


지금껏 우리가 상대해 온 남성 입실자들에 비해 각 종 요구사항이 많았고, 깐깐하게 굴었다.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직접 상대하고 응대를 해야 하는 원장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아.. 털털한 남학생이 최고야.'라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특히 남편은 여성 입실자가 들어오면 남자만 득실거리는 고시원에서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어쩌나 늘 노심초사하며 불안에 떨었는데, 이것이 사실상 가장 큰 문제였다.(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이지만 워낙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부정적인 경험이 여러 번 학습되자, 남편은 여성 고객의 문의가 오면 손사래를 치기에 이르렀다. 여성 고객에게 전화문의라도 오는 날에는 폰포비아 증상을 보였다. '여보, 자기가 전화 좀 받아봐..' 하면서 전화기를 넘기고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여성 고객에게 카톡 문의가 오면, 최대한 계약을 하지 않게 하려고 온갖 단점을 읊어 가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회유를 시도하는 매우 웃픈 상황이 반복되었다.



- 여성 입실자가 싫은 남편의 전화 응대-


"안녕하세요? 혹시 방 있나요?"

"언제 입실 원하시나요? 기간은요?"

"아 다음 주 바로 입실하고 싶구요, 일단 한 달 살아보고 결정할 거긴 한데... 6개월 정도요."


"아.. 네, 여성분이신 거 같은데 저희 고시원은 엘리베이터가 없고요 여성 남성층이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괜찮으실까요?(이 정도면 불편하니까 알아서 안 오겠지.. 절레절레)

"아 그렇군요 괜찮아요! 방 바로 예약 가능할까요?"

"음.. 죄송한데 지금 만실이라 바로는 어렵구요 2주 정도 대기하셔하는데 날짜는 미정입니다.(이 정도면 알아들어야지! 절레절레)


"정말요? 진짜 계약하고 싶은데.. 그럼 언제까지 기다리면 될까요?"

"아... 먼저 대기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긴 한데, 방 나오면 순서대로 연락드리고요 먼저 입금하시는 분 순이라서 확실히 말씀드리기가 좀...(오지 말라구 오지말라구!!! 다른데 알아봐도 괜찮아 진심이야)

"헉... 제가 지방에 있어서요. 저 그냥 바로 계약금 입금하고 계약할 테니 계좌번호 부탁드립니다."

"아... 네. 지금 계약금 넣으시면 마음 바뀌셔도 기간상 환불은 절대 불가합니다만, 방도 안 보시고 바로 계약하시려고요..?"



뭐 이런 식의 요상한 패턴으로 대화가 오갔다. 남편은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사장으로서의 영업 의무를 망각한 채 미꾸라지처럼 손님을 피해 다니다가 결국 계약을 억지로 당하고 마는 식이었다.




지방에서 갓 상경한 00년대생 여학생이 입실했다.


얼마 전 들어온 이 여성 입실자도 남편과의 실랑이 끝에 어렵사리(?) 우리 고시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방에 있어서 방을 보러 올 시간이 없다며 사진만 보고 계약한 케이스였다. 원래 계약금은 20만 원을 받고 입실 후 나머지 잔금을 받는 식인데, 남편은 언제라도 원하면 가벼이 환불을 해줄 거라며 계약금도 5만 원만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방을 계약하기로 하고 계좌번호를 알려줬는데 급하다던 그 여학생은 어쩐 일인지 입금이 지연되고 있었다.



- 계약을 물리고 싶은 원장의 카톡 응대-


"안녕하세요, 계약금이 입금되지 않아서요. 다른 대기 고객님께 방을 안내드려도 될까요?"

"앗 제가 지금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내일 알바비가 들어오는 날이라..: 내일 꼭 5만 원 입금드릴게요."

"아, 네 그런데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그날 입실하실 수 있는 방은 채광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이 부분 괜찮으실까요? (이제라도 그만 포기해..!)

"네네, 괜찮습니다. 내일 꼭 입금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제가 꼭 입실하게요! "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연락 주세요."



단 두 번의 대화를 통해 그 여학생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많았다. 단 돈 5만 원을 바로 입금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중대 사실과 같은 것들이다. 학생은 내일 들어올 알바비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생각보다 경제적인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학생의 경우 대부분 부모님이 입실료를 내주는 경우가 많은데, 보아하니 이 여학생은 알바 생활을 하며 자력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열심히 사는 친구구나...' 하는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행여나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입실료를 밀리진 않을까 노파심이 들었다. '아, 잘못 걸린 건가?' (또 또... 선의를 가진 착한 원장과 자본주의로 똘똘 뭉친 원장이 서로 잘났다고 조용히 힘겨루기를 한다.)


어쨌든 남편의 바람과 달리 여학생은 다음날 결국 돈을 보내왔고, 약속된 날짜에 소리 소문 없이 고시원으로 짐을 들였다. 남편은 여성 입실자를 맞이하며 온갖 걱정과 함께 방 곳곳을 세심히 신경 써서 청소하고, 꼼꼼히 정비해 두었다. 그리고는 며칠간 CCTV를 들여다보며 여학생의 동선을 파악했다. 혹여나 안전상의 문제가 생기면 대응해야 하니 주로 움직이는 시간대를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켜본 결과 우리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분명 직업란에는 '학생'이라고 쓰여있었는데 여학생은 아침 7시가 되면 고시원을 나섰다. 대학생치고는 매우 이른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늘 검은색 트레이닝복 바지에 나이키 티셔츠를 입고 아침에 감은 머리는 채 말리지도 못한 축축한 상태였다. 그렇게 이른 아침 서둘러 나가서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했다.


보통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학원 수업 시간에 맞춰 8시는 되야 나가는 편인데 7시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였다. 또 지금껏 우리 고시원을 거쳐간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화장도 예쁘게 하고, 고시원에 살지언정 패션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 친구는 매일 똑같은 옷차림에 러닝화만을 신고 다니는것도 특별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침 운동을 나간다고 하기에는, 허겁지겁 나가는 것이 그다지 여유 있어 보이지 않았으며, 밤 10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것을 볼 때 밤낮없이 알바를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오자마자 좁디좁은 고시원에 자리를 잡고 밤낮으로 알바를 하는 00년대생 여학생. 우리는 그 여학생을 '열심히 사는 여학생'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3주가 흘러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그 여학생은 여전히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귀가 중이다. 가끔 쉬는 날에는 방에서 통 나오지를 않는다. 나라도 그럴 거 같은 게 하루종일 그렇게 알바를 하면 너무나도 피곤할 거 같다.


고시원에서는 진짜 '잠'만 자기 때문에 큰 불만도 없었고 방을 더럽힐 새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공용 주방에는 거의 출입한 적이 없다. 신발장도 사용하지 않는다. 매일 신는 운동화 한 개는 방 안으로 들여가고 공용 슬리퍼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복도를 누비며, 가끔 정수기 물을 뜨러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고시원을 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랬던 점 중 한 가지는 20대~30대 초중반대의 많은 성인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고시원을 보러 온다는 것이었고, 대부분의 월입실료는 부모의 지갑에서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입실한 학생들 가운데 대부분은 열심히 공부하며 부모님의 뒷바라지에 보답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방만 얻어놓고 여자친구네 집에서 자는지 어쩌는지 시험 전날까지 코빼기도 안뵈는 경우도 있다.


엄마가 못 오면 누나랑, 누나가 없으면 형이랑. 혹은 남자친구 여자친구의 손을 꼭 잡고 방구경을 오는 2030들. 그만큼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고시원이라는 곳을 방문할 때의 어색함과 두려움, 매달 부과되는 입실료를 혼자서 감당하기가 버거운 모양이다. 


20살 때부터 혼자 서울살이를 하며 열 번가량의 이사를 다니는 동안 그 어떤 도움을 받아본 적도, 부모님을 대동한 적도 없었던 나로서는 이러한 풍경이 진귀하게 느껴졌다. 아니, 이해가 안 간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어 씁쓸해지곤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00년생 지방러, 열심히 사는 여학생'은 어쩐지 괜히 마음이 쓰이고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물론 고시원 원장으로서 가장 선호하는 '잠만 자고 불만 없는 고객'이라서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다.) 이왕이면 좀 더 채광도 좋고, 조용히 생활하기 편한 방을 내어주고 싶은데 안탑깝게도 대체로 만실로 운영되기에 그것마저도 쉽지는 않다. 허나 우리 부부는 언제든 좋은 방이 나오면 제일 먼저 이 친구 짐을 옮겨줄 계획을 남몰래 세우고 있다.


이 따뜻하고 선의 넘치는 원장의 마음을 알리가 없겠지만서도, 혹여나 그녀와 마주칠 기회가 생긴다면 뜨끈 달달한 별다방 커피라도 한잔 사주고 싶다. 어쩌면 이 커피는 과거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와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비좁은 원룸을 전전했던, 마라맛 청춘이라고 불렀던 나의 20대. 딱히 의지할 곳도 기댈 곳도 없었던 그 시절. 생존을 위해 꿈을 접고 앞만 보고 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막 고꾸라지기 직전. 어디선가 나타난 낯선 타인이 주는 용기와 위로는 의외로 대단히 큰 힘이 되곤 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새벽 6시까지 출근하여 밤 9시가 다 되어 퇴근 후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었던 날. 그날따라 일도 잘 안 풀리고, 다리도 아프고, 밥도 잘 못먹은 통에 기운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당연히 앉을자리는 없었고 맨 끝자리 봉 하나에 간신히 몸을 기댄 채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다. 솔직히 주저앉고 싶었던 것 같다. 미생이라면 누구나 그냥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그때 한 중년 여성이 갑자기 날 힐끔 쳐다보더니, 뜬금없이 자리를 양보했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여기 앉으세요. 난 금방 내려요.”


일면식도 없는 아주머니의 그 한마디에 주책맞게도 눈물샘 버튼이 눌러져 버렸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 앉아, 집에 오는 내내 연신 흐느꼈던 기억이 난다.


낯선 이의 위로는 생각보다 큰 위력이 있다.


힘내요 학생.
내생각엔 지금 누구보다
잘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다-잘될거에요. 파이팅!


힘내요 학생 잘하고 있어요. 화이팅!




안녕하세요 진담작가입니다.


현생이 바쁘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글을 올린것 같아요.사실 지난주에는 고시원 창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고시원 창업> 관련 나눔 강의를 진행했어요.비대면으로 진행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더라구요. (무려 140명이 넘는 분들이

들아주셨네요!)


조금 힘은 들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크고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고 보람이 되었습니다. :)


강의든 글이든지간에 제가 가진 경험을 글과 말로써 나누고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매우 값진일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네요!


이 마음 간직하며, 더 많은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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