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오싹한 이야기
찜찜한 전화가 한통 왔다.
특이한 입실 문의였다.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목소리가 정말 선하고 밝은 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큰 방 있을까요?"
"실례지만, 언제부터 얼마나 머무실 예정이세요? 지금 작은 방 밖에 없고요, 큰 방은 2~3주 뒤에 나올 것 같습니다."
"1년 정도 머물려고 하는데, 작은 방 말고 꼭 큰 방이 필요해서요. 혹시... 지인이 가끔 왔다 갔다 해도 괜찮나요?"
"지인이요? 원칙적으로는 불가한데요, 가끔 조용히 왔다 갔다 하시는 거는 괜찮아요. 소음 문제가 좀 있어서요."
"아... 저희 어머님이 요양 병원에서 일을 하시거든요. 그런데 야간 간병일을 마치시고 아침에 오셔서 잠깐 쉬고 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어머님이요? 네.. 그런데 혹시 직장 위치가 어디실까요?"
"저는 청량리 쪽에 있고요 어머님 병원까지 고려하면 거기가 중간쯤 위치라서요."
"네, 일단은 방 나오면 다시 한번 연락드릴게요."
"2주 뒤 입실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좀 급하네요. 부탁 좀 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남편이 입을 열었다. 요양 병원에서 간병 일을 하는 노부모, 중년의 딸.
그런데 안정적인 거주지가 없어서 고시원에 살아야 하는 모녀의 상황이 아무래도 좀 석연찮다는 것이었다. 어쩐지 알쏭달쏭하다. 고시원 원장의 촉이 발동한다.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의 남편은 이 입실자에게 빈방이 나오면 연락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무려 3일 동안 고민 하고 있다.
먼저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살펴본다. 누군가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몰래 염탐하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지만, 이 또한 고시원 원장의 업무이자 노하우이다. 입실 문의가 오면 습관적으로 카카오톡 친구 추가부터 해둔다. 초면에 꼬치꼬치 물어볼 수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만든 방안이다.
일단 카카오톡 프로필은 합격이다. 특별한 사진은 없지만 회사 책상에서 일하는 중에 찍은 듯한 배경사진이 올라와 있고 긍정적인 명언 문구가 적힌 사진들이 몇 장 올라와 있다. 특이사항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그 사이 더 괜찮은 새로운 손님이 나타나면 그 손님에게 방을 주기로 하고, 청량리 모녀는 2순위로 미뤄두기로 한다.
열흘쯤 지났을까?
기존 입실자의 퇴실 날짜가 정해지고, 이제 손님을 새로운 손님을 받을 차례였다. 안탑깝게도 그 사이 마땅한 임자가 나타나질 않아 남편은 어쩔 도리 없이 청량리 모녀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안녕하세요, 000 고시원입니다. 지난번 입실 문의하셨잖아요. 입실 날짜가 나와서 연락드려요. 혹시 계약 의사가 있으시면 방 한 번 보러 오시라구요."
"아! 안녕하세요, 어쩌죠. 너무 급해서 다른 방을 구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헉. 벌써 방을 구했다니. 남편과 나는 어쩐지 모르게 허탈하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당장 공실을 채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며칠간 쓸데없는 고민을 한 것 같아 살짝 짜증도 난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배가 부를 때는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 있어도 그다지 입맛이 없고, 배가 고플 때는 맨밥에 김치만 있어도 세상 맛있다. 그래. 그게 사람 마음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다른 입실자를 기다린다. 그리곤 얼마가지 않아 좋은 입실자를 만나 방을 채웠고, 청량리 모녀의 존재는 까맣게 잊혔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눈이 똥그래져서는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여보, 이것 좀 봐. 그때 그 청량리 모녀 말이야.." 하며 휴대폰 화면을 보여준다.
간병일을 하시는 늙은 엄마를, 고시원에 사는 어려운 처지임에도 모시고자 했던, 선한 목소리의 중년 여성. 긍정적이고 멋진 명언들이 가득했던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입에 담기도 어려운 온갖 욕설과 이해할 수 없는 글들로 시커멓게 도배되어 있었다.
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내가 널 죽여버릴 거야 반드시 복수할 거야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괴롭힐 거다. 지옥불에 떨어질 인간들. 딱 기다려라 지금 칼 들고 간다."
"의원님!!! 00 요양병원 XXX 씨는 쓰레기입니다 제발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저 새끼들 때문에 나는 요양병원에서도 잘렸어요. 얼마 전부터 밤마다 돌아가신 엄마가 보입니다. 불쌍한 우리 엄마 어제도 왔다 갔네요. 지옥불에나 떨어져라!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단죄할 거다"
정확한 워딩은 생각이 나질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들이었다. 누군가를 죽도록 원망하고, 증오하고, 복수심에 가득 찬 글들. 그리고 그들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있는 듯한 정황들. 마지막으로 가장 눈에 띄던 것은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언급이었다.
몇 달 전 전화가 왔을 때 분명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어머님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위의 말들을 조합해 보면 애초에 그런 어머님은 존재하지 않았고 요양병원에서 일하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마저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억울하게(정말 억울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리고 정상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였다.
그날 전화를 받았을 때 어딘가 모르게 찜찜했던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가 쭈뼛 선다. 사람의 직감이란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고시원을 운영하다 보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아픈 게 죄는 아니지만, 그로 인해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할 순 없으니 사람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을 유심히 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타인을 향한 강력한 분노는 자칫하면 사회에 대한 분노가 되고, 악에 바친 그 마음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뉴스에 나오는 칼부림이나 총기 사고들이 내 업장에서 생기지 않게 하려면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만일 그 청량리 모녀를 아무 의심 없이 덜컥 받았더라면.. 우리 고시원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다.
며칠 전, 소소한 방 보수를 위해서 들어가게 된 한 학생의 방에는 이런 메모가 붙어 있었다.
“부모님을 절대 실망시키지 말자. 최선을 다하자. 나는 할 수 있다. “
우연히 눈에 띈 그 메모에서는 비장함 그리고 간절함이 느껴졌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방 한 칸 한 칸에서 자신의 장래를 위해, 부모님을 위해, 오랜 꿈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입실생들에게 크나큰 피해가 될 뻔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막중한 손실이 생겼을 것이다.
이번에도 또 하나 배웠다. 돈에만 급급하지 말자. 비록 공실이 길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돈만 좇다가는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사업도, 삶도 마찬가지다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 돈은 그다음이다. 머무는 사람들을 항상 우선에 두고, 그들이 품고 있는 꿈을 잘 펼칠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그게 이 업의 본질이다. 한낱 고시원 원장일지라도 말이다.
(세차장 일로 부자가 된 주인공 인우)
따지고 보면 세차가 보잘것없는 일일지도 모르잖아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요. 하지만 인우씨는 그 하잘것없는 것에 수많은 시간을 쏟았고, 그 결과 남들이 몰랐던 여러 방식, 그 방식들을 대하는 꼼꼼함과 소명 의식 같은 것들이 생겼어요. 그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기 술을 보유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문제예요.
- 돈은 너로부터다 중/김종봉,제갈혈연
<따로 또 같이, 고시원 삽니다>
https://event.kyobobook.co.kr/funding/detail/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