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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Jan 19. 2024

그래서, 퇴사하고 요즘 뭐 해?

퇴사하고 모임에 나가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그래서 퇴사하고 요즘 뭐 해?


고시원을 하겠다고 어쩌다가 희망퇴직까지 해버린 남편이, 요즘 모임에 나가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고시원 하고 있어.”

“뭐? 고시원?”

“아.. 그것만 하는 건 아니고…”

눈이 똥그래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낸다. 이건 내 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던 남편이 이른 나이에 퇴사를 하고, 육아 휴직 중인 와이프와 함께 고시원을 운영한다는 흥미진진 스토리. 직장인 친구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자 연구 대상일 수밖에 없다.



투자금은 얼마인지,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노동 강도는 어떤지,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이상한 사람은 없는지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반응 1)

“아, 난 진짜 죽었다 깨나도 못할 것 같아. 대단하다."    


반응 2)            

”와…… 그렇게 해서 그 정도나 번다고... 정말?”



전자의 사람들은, 만일 본인이 퇴사를 한다고 해도 도저히 고시원 같은 건 못하겠다고 한다. 내가 들이는 노동 시간 대비 월 수익도 나쁘지 않고, 시간도 자유로운 것 같긴 한데 '고상한 일'은 아니네라고 느끼거나 내가 하기에는 '너무 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두어도 비슷한, 혹은 좀 더 낮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을 하거나, 세무사나 회계사 같은 전문직 시험을 준비할 가능성이 크다. 그 와중에 약간의 로망이 있는 사람은 동네 카페 사장을 꿈꾸거나, 망할 위험이 그나마 적다고 판단되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염두에 둔다.



후자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쳇바퀴 같은 직장생활에 회의감을 느끼는 중이며 빠르게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을 가진. 소위 말해 나처럼 돈을 꽤나 밝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 보다 더 나은 대안이 아직 없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가는 일이 있어도 섣불리 바깥세상으로 나갈 용기가 부족하다. 왜 망설여?라고 되물으면, 백이면 백 이렇게 대답한다. '망할까 봐 무서워.' 그렇지. 그렇고 말고. 공감한다. 시작하기 전까지, 아니 이미 시작한 지금도 가끔 망할까 봐 무서우니까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 딱 거기까지이다. 고시원이라는 업종에 대한 호기심은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호를 가장한 불호의 반응도, 긍정적인 관심도 그다음 행동으로 쉬이 옮겨지진 않는다. 지금껏 우리처럼 고시원 창업을 해서 현금흐름을 만들고 싶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그중(내가 직접 만난 사람 중) 정말로 창업한 사람은 아직까지 단 한 명도 보지 못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단순 호기심과 흥미만으로 '밥 줄'을 바꾸는 것은, 평생의 세계관을 통째로 바꾸는 것과 맞먹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N잡을 자처하는 사람들


딱 한 번, 고시원 계약 직전까지 간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평소 재테크와 투자에 관심이 많았던 그 친구는 우리가 들려준 고시원의 수익 구조나 운영시스템이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나 지금 자금 마련하려고 대출 알아보고 있어, 오늘 은행 4군데 돌았다. 다음 주부터 임장 갈 거야."

다음 날 걸려온 친구의 전화 목소리는 다소 흥분되 보였고, 내일 당장이라도 계약서에 이름 석자를 새길 기세였다. 결국 그 친구도 와이프의 반대에 부딪혀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긴 했지만, 유일하게 호기심을 실행력으로 바꾼 친구였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누가 강요하지도 등 떠밀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N잡러를 자처하며 고시원, 파티룸, 에어비앤비, 스터디카페까지. 정말 다양한 무인 사업에 뛰어들어 현금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창업을 넘어서, N잡을 통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또 하나의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낸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같은 온라인 세상에는 이런 식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제2의 제3의 N잡러들이 들끓는다. 너도 나도 월 천을 외치며 끊임없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대박을 꿈꾸며 기꺼이 지갑을 연다. 요즘은 월 천만 원도 너무 식상해서 월 억을 외치는 지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그런  N잡러 열풍에 몸을 실은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나를 포함한, 내가 본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늘 끊임없이 고민한다. 어떻게 지금 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덜 일하고 더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치열하다. 이렇게까지 돈을 좇는다고 해서 누구나 큰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확률은 높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가끔은 매섭게 돈 벌 궁리만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신기함을 넘어 묘한 경외심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누군가는 이런 사람들을 혐오하고 천박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2023년 발표된 국내 한 금융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에 해당하는 20대 중후반 1인 가구 10명 중 4명 이상이 N잡러라고 한다. 그런데 어디 그게 20대뿐이랴.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내 옆에 김 대리도, 그 옆에 박 과장도 어쩌면 유명 인플루언서이거나 스마트스토어 빅파워 셀러일 수 있다. 순진한 예스맨 얼굴을 하고 열심히 모니터를 두들이고  있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는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월 천 벌기 일타강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24년 우리 모두가 N잡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나도, 당신도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천박한 인생이기는 매한가지가 아닐까.



내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 줄 그 어떤 의무도 없는 회사라는 시스템에 기대서 55살쯤 되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내쳐지는 것보다는 자본주의형 N잡러를 빠르게 선택하는 것도 영리한 방법일 수 있다.



오리너구리 같은 존재


남편과 2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을 약속하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던 때였다. 교육열이라는 단어조차 생경한 어느 시골에서 자라나 그럴듯한 사교육 한번 시킨 적이 없지만 대기업 명찰을 목에 건 자랑스러운 K장녀가, 딸의 명찰만큼 창창한 기업의 명함을 가진 서울 남자를 사윗감으로 데리고 온 날. 엄마 아빠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하셨다. 유복하진 않았지만 시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큰 고생 없이 잘 자라온 K장남이 데려온 며느리감은, 이혼 가정이라는 약간의 옥에 티는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굴지의 기업에 다니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점수를 만회할 수 있었다. 이렇듯 대기업이라는 정체성은 당사자인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지만, 부모님의 역사를 장식하는 값비싼 장신구일 때 더욱 빛이 나는 듯했다.



결혼 7년 차,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아이를 들춰 업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첫째는 나와 그곳에서 몇 개월을 보냈고, 핏덩어리 같은 둘째는 남편, 그리고 두 할미가 영양가 높다는 수입 분유로 키웠다. 둘째가 100일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는데, 집에는 두 명의 어머니,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가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그날 슬쩍 퇴사 결심을 비췄다.



"저희 많이 고민해 봤는데, 이번 기회에 유민 애비, 퇴사하고 다른걸 좀 해보려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그래, 잘 생각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아."

사실상 통보에 가까웠지만, 언제나 우리의 든든한 지원군인 두 어머님은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다. 밝고 건강하던, 남의 집 손주보다 발육도 언어도 빨라, 더욱이 예쁨을 받았던 첫 손주의 병원행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허나 한편으로는 일방통행뿐이었던 우리들 인생에 새로운 길을 터주었다.



앞서(전 편에서) 말했지만 우리가 그런 결심을 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아이가 언제 또 아플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혹시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온전히 아이 옆에 있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아이가 아픈데도 전전긍긍 회사 출근 따위를 걱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경제적으로도 넉넉하면서 시간의 자유를 얻고 싶었던 그 간절한 마음이 지금껏 살아온 '안전한'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커다란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우리들만의 세상이 허허벌판이 되자, 우리는 생존을 위해 삶의 태도와 생존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그렇게 세계관을 변화시키자, 살아생전 없던 창업의 용기가 샘솟았고 마침내 고시원 원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신기하게 생각한다. 하고 많은 업종 중에 하필이면 생소한 고시원을 선택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병원에서 즐겨 읽던 오리너구리가 등장하는 동화책이 한 편 있다. 주인공인 오리너구리가 자기와 똑같은 친구(종족) 한 명을 데리고 가야 초대받은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전개이다. 오리너구리는 자기 종족을 찾으러 오리, 비둘기, 개와 고양이 등을 찾아다니지만 자신이 특이한 종족임을 깨닫고, 포기하던 찰나 맨 끝에 같은 오리너구리과인 가시두더지를 만나 파티에 가게 된다는 행복한 이야기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호인지 불호인지 헷갈리는 낯선 시선과 걱정 어린 격려를 받을 때면 오리너구리가 된 것만 같다. 이제 막 고시원 원장이 된 우리는, 알에서 태어났지만 오리는 아닌, 그렇다고 해서 너구리도 아닌 행색을 하고 있는 오리너구리처럼 애매하고도 독특한 존재였다. 아직 직장인이라는 허울을 다 벗지 못한, 그렇다고 해서 온전한 자영업자도 사업가도 아닌 이 시대의 N잡러. 이 여정의 끝에서 오리로 판명날 것인지 너구리로 판명 날 것인지 혹은 그냥 오리너구리로 남을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가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가시두더지를 만나, 또 다른 해피엔딩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당신은 오리입니까, 너구리입니까

혹은 오리너구리입니까?

넌 누구냐..



https://brunch.co.kr/@jindam/1


https://brunch.co.kr/@jinda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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