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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Jul 07. 2023

6개월간 쓰레기더미 속에 산 20대 고시원 청년

충격적인 쓰레기방을 마주한 날, 난 반성문을 썼다.

고시원 쓰레기 더미서 발견된
8살 아이 상태가...
나 홀로 쓰레기 고시원에 8살 아이
혼자서 4개월... 도대체 무슨 일이?
<2023.04.13 신문 보도기사>


혹시 이런 헤드라인의 뉴스를 본 적이 있는가? 고시원을 운영하기 전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던 기사들인데 고시원 원장이 되고 나서부터는 이런 기사를 보면 자연스럽게 눈이 돌아가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2023년 4월, 쓰레기 더미 고시원 방에서 긴급 구조된 8살 아이의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1년 전쯤 중국 국적의 아빠가 아이와 함께 서울 구로구의 한 고시원에 입실하였고 최근 넉 달간 8살 난 아이는 쓰레기 더미가 된 방에서 거의 혼자 지냈다고 한다.



신문 보도 기사 내용 중에는 아래와 같은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고시원 관계자 : 애가 혼자, 24시간 혼자 있으니까. 밖에 나가지도 않고 밥은 하루에 한 끼 앱으로 시켜주고. 내가 애를 봤는데 애가 눈동자에 초점이 없어.]



고시원 원장의 관심으로 다행히 더 큰일이 생기기 전에 그 아이는 쓰레기 더미 방에서 구출될 수 있었고, 학교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만일 고시원 원장이 입실자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마냥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모른척 했다면 지금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고시원에서 쓸쓸히 고독사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은 이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언제든 내가 운영하는 고시원에서도 생길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이처럼 고시원을 운영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있기 마련인데, 그중 흔하게 마주하는 사건이 바로 '쓰레기방'이다. 내가 고시원을 운영하면서 유독 악취에 신경이 곤두서는 이유이다. 고시원의 경우 입실자가 한번 들어가고 나면 그 공간은 온전히 개인 공간이기 때문에 고시원 원장이 들어가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입실자가 퇴실하고 나서야 방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들어갈 땐 분명 말끔한 호텔방이었는데 나올 땐 처참한 쓰레기 소굴이 되는 경우가 종종, 아니 생각보다 자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몇 원장님들은 정기 방역을 핑계 삼아(입실자 동의 하에) 주기적으로 방문을 개방하고 소독을 실시한다고 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방문을 열어야 하므로 방 상태를 중간 점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보 원장이었던 나는 고시원 원장님들이 모인 커뮤니티 방에서 쓰레기방 테러를 당하고 하소연하는 글을 많이 보았었다.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처참한 쓰레기방 사진이 잊지 않고 단톡방에 올라왔다. 그런 사진들을 볼 때면 세상에 이렇게 더럽고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음에 놀라곤 했다. 어쨌든 그 덕에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름 철저히 쓰레기방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당해도 절대 놀라지 않으리! 의연하게 대처하리!! 뭐 이런 결연한 다짐들을 했었더랬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입실자들을 받을 때 최대한 깔끔하게 방을 쓸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가려내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면 나이 많은 사람들 보다는 젊은 사람을 받으려고 했고, 번듯한 직장인이거나 방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적고 주로 잠만 잘 것 같은 사람들, 말투나 옷차림이 말끔한 사람들 등등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자체 필터링을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우리에게 잊지 못할 이별의 추억을 남겨준 그 입실자는 참 잘생긴 청년이었다.


피부는 하얗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어쩌다 마주칠 때는 늘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원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하며 부드럽게 인사하는 인사성이 밝은 친구였다. 옆으로 살짝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귀 옆으로 단정하게 꽂고, 발라드 가수를 연상시키는 굽실 굽실 웨이브 중단발 머리 스타일도 한껏 소화해 내는 멋쟁이였다. 그래서 조금 속물 같지만 나는 그 친구가 입실 문의를 했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꺼이 반가운 마음으로 두 팔 벌려 환영을 했더랬다.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직 준비를 한다던 그 청년은 6개월을 지낼 거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덧 아쉬운(?) 이별의 날이 다가왔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308호 입실자입니다. 다름이 아니구요, 이직이 잘 되어서 다음 주에 퇴실하려고 해요. 갑자기 빨리 출근하게 돼서 주말에 바로 방 빼도 될까요?"

"와~! 정말요? 이직 축하드려요, 잘 되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요, 기간이 조금 남긴 했지만 어쩔 수 없죠. 그럼 주말에 방 빼시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입실 보증금 5만원 환급해 드릴게요 계좌번호 남겨주세요!"

"아, 보증금은 괜찮습니다. 안 주셔도 돼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에이~ 아니에요, 당연히 돌려드려야죠. 계좌번호 남겨주세요."

"진짜 괜찮습니다... 행복하세요~~~."



세상에나. 보증금 환급을 안 받겠다니. 나는 그 순간 진실로 감동했다. 얼굴만큼이나 마음이 착한 친구로구나. 역시 내가 사람을 잘 골랐다며 셀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고로 고시원의 경우 일반 원룸처럼 보증금을 받지 않고, 청소보증금 정도로 5~10만원 정도를 받으며 입실료는 선불제로 운영한다. 퇴실할 때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보증금을 환급해 주는 식이다. 그런데 간혹 이렇게 퇴실할 때 그동안 감사했다며, 잘 지냈다며 보증금을 안 받겠다 하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당연히 돌려 드려야 할 돈이기에 환급을 해드린다. 어쨌든 이런 대화가 오갈 때면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곤 한다.



그 주 주말엔 육아가 바빠 고시원에 나가지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 정리하고 나갔겠지 싶어 걱정 없이 주말을 보냈다. 주말이 지나고 방 상태를 확인하려고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렇다. 반전이었다. 그 청년은 보증금을 돌려받기는커녕 돈을 물어줘야 할 정도로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침대가 붙어 있는 벽 쪽은 부분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방은 온갖 쓰레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텔레비전에서 아니, 고시원 커뮤니티에서 사진으로만 접하던 처참한 쓰레기방이었다.



더욱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찌든내였다. 남자 혼자 사는 방이고 고시원 방이라는게 2평에서 3평 사이인지라 냄새가 나기 쉬운 구조라지만, 정말이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냄새였다. 일명 홀아비 냄새라고들 하는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의 남성호르몬 채취와 남의 속도 모르고 속절없이 해맑게 핀 곰팡이 꽃이 만발한 배달 음식 썪은내가 적절하게 믹스되어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환장할 만큼 환상적인 냄새만큼, 내 마음도 실성할 지경이었다. (이쯤에서 몽클레어와 롤렉스를 걸치고 향기롭게 장기 거주해 주었던 그분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이를 바득 바득 갈다가 앞니가 상할 뻔 한 날이었다.

젠장할, 곱상하게 생겨가지고는.

배신자 배신자 배신자....악!!

전화해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을까? 당장 다시 와서 다 청소해 놓고 가라고 할까? 돈을 물어내라고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청소를 하면 할수록 참으로 분한 감정이 치솟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고시원을 한다고 해서 지금 청소 아주머니 노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급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송골송골 맺힌 땀이,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문득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번듯한 명함, 젊음, 경제력, 외모, 옷차림, 가식적인 미소에 홀려 섣불리 사람을 판단한 나의 아둔함의 댓가라는 것을 말이다. 나름의 기준으로 내가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최대한 깨끗하고 성의 있게 사용해 줄 수 있는 젠틀한 입실자들을 뽑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한물 간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심사위원 노릇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헛웃음이 났다. 애초에 그러한 기준으로 사람을 걸러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이 사회에 순응하며 외모지상주의를 칭송하고 자본 제일주의로 살아온 나란 사람은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편견으로 똘똘 뭉친 오만한 심사위원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겨준 미나타상과의 작별 인사


며칠 후 또 한 명의 퇴실자가 있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건너온 미나타상이었다. 남자만 바글거리는 우리 고시원에 몇 안 되는 여성 입실자이며 장기 거주 고객이었다. 미나타상도 오랜 시간 정이 들었는데 직장 이동 문제로 퇴실을 해야 한다고 했다. 털털한 외모처럼 까탈 부리지 않고 무탈하게 지내던 그녀였기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미 며칠 전 잘생긴 MZ세대 청년에게 크게 데인 상태였기에 마음을 비운 직후였다.방이 더럽건 깨끗하건 동요하지 않으리. 그냥 아무 이상 없이 무탈히 지내다가 조용히 떠나가면 그걸로 만족할 터였다. 그렇게 그녀와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무미건조한 작별인사를 비대면으로 나눴다. 그녀가 떠난 후, 다음 날 고시원을 찾았다.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이 살던 방인가?...... 왜 이리 깨끗해?


너무 깨끗했다. 우리가 그녀에게 방을 제공했던 첫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혹은 그 보다 더 깔끔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소 이모님께 전화를 걸어 혹시 먼저 오셔서 정리를 하고 가셨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오였다. 어떻게 이렇게 뒤끝이 없을 수가 있을까? 남편과 나는 그녀에 대한 궁금증으로 CCTV를 돌려보다가...또 한 번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캐리어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고시원을 떠나기 전, 그녀는 잠시 방 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우리는 6.7인치짜리 휴대폰 화면에 머리를 맞대고 그녀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주시했다. 그녀는 양손 가득한 짐들을 한쪽에 내려놓고는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은 채였다. 텅 빈 방 문 앞에 서서, 머리를 깊이 숙여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미나타상은 뭐라고 작별 인사를 했을까.


これまで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좁은 2평짜리 공간이지만 나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 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무탈하게 지내다가 떠납니다. 부디 다음 사람과도 좋은 인연으로 행복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을까.



소리 없는 화면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냥 말없이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왠지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반성문을 써야 할 것만 같은 날이었다. 어설픈 심사위원 노릇을 하며 사람을 함부로 판단한 죄, 잘생긴 그 청년을 과대 평가하고, 털털한 그녀를 과소 평가한 죄. 스스로의 편견과 오만함을 모르고 살아온 죄에 관한 반성문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 비록 반성문을 쓴 날이었으나, 잘생기고 미래가 창창한 MZ세대 꽃청년에게 한마디 남기고 싶은 말이 있었다.



보고 있나? 꽃청년?

출처:네이버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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