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예기치 못한 기회가 찾아온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그런 기회들을 '감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얼떨결에 두 곳에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브런치스토리에 올렸던 단 네 개의 글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나는 동물적 감각으로 그 기회를 꼭 부여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행운은 준비와 기회가 만날 때 찾아온다."
- 세네카
이 말의 의미는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니 꾸준히 갈고닦으며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준비가 되어있는가? 솔직히 확신할 수 없었다.
나에게 기화가 왔는가? 기회가 왔다!
행운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해보면 알겠지.
태어나서 한 번도 책을 낼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왠지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연락 온 출판사 두 곳의 미팅 제안을 받아들였고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 곳은 나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형 출판사였고, 한 곳은 비교적 작은 출판사였다. 일단 여기서부터 나는 굉장한 호기심이 들었다. 두 곳의 규모와 인지도, 스타일이 극명할 것이기에 그 또한 나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종로의 한 스타벅스 카페. 그날은 보슬보슬 비가 왔다. 내가 처음 만난 '편집자'는 단발머리에 굽실거리는 웨이브 그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젊은 남성이었다. 인상이 참 좋았다.
난 사실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 그리고 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뭔가 예술가적인 느낌이 한껏 풍기는 이미지를 상상했달까? 그의 이미지는 어느 정도는 들어맞았고 미팅 내내 나는 긴장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내 작품과 관련하여 앞으로의 전개 방향과 더불어 본인이 생각하는 분위기, 그리고 레퍼런스 자료들을 A4 2-3장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왔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나였기에, 그와의 대화에서 출판사에서 생각하는 내 글의 방향성은 물론 그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의 출간 프로세스와 일처리 방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대형 출판사였기에 아무래도 약간의 내부 절차가 있는 것 같았고, 장르별로 세컨드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맘에 들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주력 분야가 나와 다르다는 점이었다. 내가 쓰고자 하는 장르는 '에세이'였고 연락을 준 출판사는 에세이보다는 경제/경영이 주력인 곳이었다.
보통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기업은 주력상품을 가지고 있다. 애플의 주력상품은 아이폰이고 삼성의 주력상품은 갤럭시인 것처럼 말이다. 해당 기업의 주요 자원과 마케팅 비용은 플래그십 모델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출판사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어차피 모든 기업의 생리는 비슷하니까)
경제 경영이 주류이고 에세이/문학이 비주류인 대형 출판사에서 과연 무명의 신인 작가의 에세이에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아부을 것인가? 하는 점이 유일한 단점으로 다가왔다.
며칠 뒤 연이어 두 번째 출판사와 미팅을 가졌다. 이미 한 번의 미팅을 한 직후였던지라 그날의 떨림은 조금 덜 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어떤 분이 나올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며 만남 장소로 나갔다.
두 번째 만남은 우리 동네에서 내가 가장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익숙한 장소에서 미팅을 가져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이 날의 만남은 한층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색해하는 날 위해 능숙하게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고 업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진솔하게 자신이 출판사를 하게 된 계기와 히스토리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나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오랜 경력과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나의 필명 '진담'처럼 진솔하고 담담한 것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그런 인간적인 면모에서 이미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르겠다.(이런 부분까지 알고 공략을 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ㅎㅎ) 또한, 출간 제안을 주실 때부터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기획안을 메일로 상세하게 첨부해 주신 터라 전문성에 대한 부분도 신뢰가 갔다.
출판사에서 주로 어떤 책들을 다루었는지 궁금하여 검색을 해 보니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익숙한 작가님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정지아 작가님이셨다.) 감성적이고 따스한 느낌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와 결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신생 출판사이다 보니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출판 업계가 워낙 어렵다는 말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충분한 자본과 여력이 있을지, 마케팅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하는 것들이었다.
한두 시간이 흐른 뒤, 미팅 말미에 그는 힘주어 말했다. '좋은 책을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대화 내내 보여주었던 부드러운 이미지와 달리 그의 말투에는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고, 어쩐지 그 한마디가 나를 안도하게 했다.
10여 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뛰는 놈, 나는 놈, 이상한 놈 별별 인간들을 겪어보았다. 무조건 예산이 많고, 능력이 좋고, 재주가 많은 사람(팀)과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날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오히려 프로젝트 성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 서로 말이 잘 통하는가, 서로 결이 맞는가, 서로 협업이 잘되는가.
눈치챘겠지만 그리하여 나는 두 번째 출판사와 연을 맺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출판 업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아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모든 면에서 충분히 믿고 의지할만한 노련한 파트너를 만나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런 면에서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초보 작가를 세상 밖으로 발굴하여 <고시원, 삽니다>라는 멋진 책을 만들어주고 널리 알려주고 있는 마이디어북스 출판사 관계자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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