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

시간여행자

by 이윤인경

한 정신병자가 회상한다

에세이스트의 책상에 앉아
사랑했던 기억을 눌러 문신하곤
다른 수요일의 여자를 만난다
박범신의 젊은 사슴은 죽었을 거라는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무덤 위를 사뿐사뿐 고양이가 걷는다

1994년 그녀의 집 골목길을 걷는다
눈먼 도시의 가로등은 시력을 잃고
대신 낯익은 전화벨이 울린다
끊겼다 그녀일까 수요일의 그녀일까
설렘이 없는 이 기억은 사랑일까

두리번거리다 어두운 골목 모퉁이
긁혔다 팔꿈치에서 검은 피가 떨어진다
어둠이 섞인 상처는 아픔이 없고
보이지도 않는 기억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주문을 걸어야 한다

사랑해, 고통 없이 말했다
그 시간은 흔들렸고 넘어지는 순간
위험한 생각은 책상 모서리에 갇혀 날카롭다
기억을 회상한 기억을 잊는다
내 삶에 대한 지독한 은유는 풀리지 않는

휘발되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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