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줌마가 된 것 같다니.
어린이집을 보내면 달라질까?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선식 하나를 타서 주고 거실에 늘어져 있던 오늘 아침, 남편이 옆이 앉더니 한마디 던진다.
"너도 이제 그냥 평범한 아줌마가 다 된 것 같네."
아침부터 기분이 나쁘다. 남편의 뉘앙스에서 평범한 아줌마의 의미가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너도 그냥 아줌마 된 것 같아서. "
문득 내 꼴을 생각해봤다.
이른 아침이고 남편을 출근시킨 후 다시 자려는 생각에 잠옷 차림 그대로, 머리는 질끈 묶고 기미가 앉아 칙칙해진 화장기 없는 얼굴로 축 늘어져 앉아있는 모습. 전형적인 아줌마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순 없을 듯하다.
"애 키우는데 별수 있어?"
구질구질하지만 100% 나의 현실인 애 핑계를 대어 본다.
"이제 애도 좀 컸는데 어린이집 보내도 되지 않아? 그리고 뭘 배우러 다니거나 하면 좋잖아. 나 같음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이렇게 보내진 않을 것 같아."
혈압이 오른다.
"아니 내가 어린이집을 보내기 싫어서 안 보내는 거 아니잖아? 왜 내 선택인 것 마냥 얘기해? 나도 진짜 어린이집 보내고 뭐든 배우러 다니고 싶어 정말!"
그렇게 아침부터 내 속을 뒤집어 놓은 채 남편은 회사로 도망을 쳐버렸다. 아우 열 받아!
어린이집에 대한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지만 그 어린이집 조차 마음대로 보낼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 아기도 8개월 즈음에 남편이 집 근처 시립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놓았었다. 대기가 200번도 훌쩍 넘어섰지만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겠지.. 하고 1년이 지난 지금, 그 대기는 45명으로 줄긴 했지만 여전히 보내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맞벌이 가정으로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인데도 말이다.
지난번 동네에서 만난 동네 친구들이 어린이집을 알아보느라 분주할 때, 우리는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었다. 다들 서너 곳의 어린이집을 돌아다녀 상담을 하고 대기번호를 받고 원하는 어린이집의 대기가 먼저 빠져 그곳에 입소할 수 있길 바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돌쟁이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서 될 일인가 고민을 잠시 했었지만, 그곳의 상황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것을 이사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올 2월 우리는 이사를 했다. 역 주변으로 새롭게 아파트들이 대거 입주한 신도시 느낌의 작은 마을이었다.
이사한 집의 아파트 단지 내에는 시립어린이집이 있었고, 이 곳에는 단지 내 거주 시 우선권이 부여된다고 했다. 당연히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어린이집에 입소 신청을 했더니 (64번/85명)이라는 엄청난 대기번호를 받았다. 아차 싶은 마음에 길 건너에 있는 민간어린이집과 걸어서 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정어린이집에 모두 대기를 걸었지만 모두 20번을 훌쩍 넘어선 대기번호를 부여받았다.
지금 보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은 자차로 5분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곳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들 뿐이었다. 오 마이 갓!
ㅡ
어린이집엘 보내기 위해서는 아이사랑이라는 어플을 통해 아동 등록을 하고 어린이집을 찾아 입소대기 신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엄마가 전업 주부인 상태의 아기는 0점인 3순위를 배정받는다. 3순위 앞으로는 언제든 1순위(다자녀 등 400점), 2순위(맞벌이 등 200점) 아기들이 끼어 들어오기 때문에 3순위 전업 주부인 엄마는 인원수 미달인 어린이집을 찾아서 보낼 수밖에 없는 게 현 시스템이다.
그마저도 어린이집이 많이 없는 이런 신도시에서는 어린이집을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아기가 이만큼 커서야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 보내는 게 전쟁이라는 선배맘들의 하소연을 허투루 들은 지난 시절이 또 원망스럽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진작에 대기를 걸었을 텐데 말이다.
한 달이 지나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대기 인원수를 보다가 답답한 마음에 아파트 단지 내 시립어린이집에 찾아가 보았다. 정원이 8명인 3세 반에 30명이 넘는 대기가 있었고, 우리는 15번이라고 했다.
"8명이 정원이면.. 아기들이 두 번이나 전부 교체되기 전까진 저흰 못 보내겠네요? 올해 그런 일이 생기진 않을 텐데..."
라는 말에 원장 선생님은 멋쩍은 듯 웃으셨다.
"제가 취업을 해도 지금 이 상태인 거죠?"
"하하하.. 둘째를 낳으시면 그래도 좀 순위가 올라갈 거예요."
"아 그럼 임신을 하면 되는 건가요?"
"아뇨. 출산까지 하셔야 해요.. 하하하 ^^"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서는 맞벌이는 필수에, 둘째까지 낳아야 하는 현실이라니. 우리 집의 가족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어린이집이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맞벌이 조건이라도 맞춰야겠다 싶어 부랴부랴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어찌어찌해서 어린이집을 보내게 된다면 일은 어디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2순위인 200점을 받아도 우리 아기의 대기번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18개월인 우리 아기는 문화센터와 키즈카페를 전전하며 가정보육을 반강제적으로 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18개월인 아들을 키우는 애 엄마인 내가 아줌마 같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참 우습게도 사람들은 아기를 안고 후줄근하게 다니는 엄마들을 보고선 '엄마가 너무 무성의하네'라고 하고, 반짝반짝 네일을 받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과 구두를 신은 엄마에겐 '애 엄마가 왜 저러고 다닌대'라고 한다.
물론 그 중간인 어느 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엄마들의 숙제인 것 같지만 그 숙제를 해 낼 여유가 실로 별로 없다. 나가자고 울며 보채는 아기를 챙겨 입히고 아기 준비물들을 챙긴 커다란 가방을 하나 메야하는데 치마나 구두가 가당키나 한 소리냔 말이다. 언제 어디서 안으라고 할지 또 내 얼굴에 머리를 들이박을지 모르는 아기를 데리고 다니며 메이크업까지 하는 것은 매우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애를 키워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렇게 아가씨 때의 모습은 점점 멀어지고, 지금은 나름대로 지금의 모습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결혼 전 나 역시도 흔히 말해오고 생각해 왔었던 아줌마의 모습에 말이다.
아기가 남긴 음식을 버리기 아깝다며 마저 먹고, 아기를 돌보기에 불편하지 않은 편한 옷만 골라 입고, 머리는 관리하기 쉬운 모습으로 유지하고, 좋지도 않은 피부를 그대로 방치한 채 살아가는 삶.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아기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딘지부터 고민해 들어가 아기를 먼저 앉히고, 아기를 먼저 먹이고, 흘린 걸 닦고 바닥을 청소하고, 그러다 보면 생기는 수북한 티슈와 물티슈의 잔여물들을 챙겨 가방에 넣는 모습.
소리 지르는 아기를 조용히 시키고, 가만있게 하려 뽀로로를 틀어주고 볼륨을 높였다 너무 시끄러운 것 같아 다시 줄이고, 아기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 대신 사과하고, 사고 치지 못하게 아기를 부여잡고 들어 안고 고군분투하는 진상의 모습.
이 모든 과정들을 겪으며 순진하고 부끄럼 많던 아가씨들이 솔직하고 투박한 아줌마가 되어간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 가고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 타인의 입을 통해 그것도 남편의 입을 통해 들으니 정말 속상한 마음이 앞선다.
함께 이 모든 과정을 겪어 온 사람이, 유일하게 내 편이어야 하는 사람이 평가하는 나의 모습이 고작 이거라니.
이래서 남편은 역시 남의 편 인가 보다.
ㅡ
남들보다 덜 바빴다곤 할 수 없는 20대, 30대 초반을 보내고 결혼을 한 뒤 이토록 180도 달라져 버린 지금의 내 현실에 적응하기가 참 오래 걸렸다. 아니 솔직히 지금도 완전히 적응하진 못한 것 같다. 여전히 육아는 어렵고 살림은 낯설다.
하루하루 아기와 함께 행복하게 보내고 있지만 마음속에선 불안함과 불편함도 공존하고 있다.
세상에서 잊힌 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고, 아기만 키우다 내 인생은 송두리째 사라질 것만 같은데. 그래서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나름 새로운 무언가를 해 보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나의 걱정과 불안을 남편은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다. 그의 눈엔 그저 팔자 편히 집에 들어앉은 아줌마로만 보이는 것 같으니 말이다.
ㅡ
멋진 엄마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해 내고 어디선가 쓸모 있는 일들을 훌륭히 해 내는 엄마들 말이다.
다들 비슷한 경험들을 했겠지. 육아라는 섬에 갇혀 아이를 키워내는 엄청난 일을 해 내면서 나 자신과 남편과 세상의 편견과 수없이 싸우고 이겨내야 했던 순간들을 지나 얻어냈을 성취들을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 틈틈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음을 남편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기에 오늘도 나를 위로해본다. 참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더 힘내자고.
내 맘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는 지금의 삶 속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오늘의 나를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