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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l 03. 2021

캠퍼스 투어의 끝은 연착?!

톈진(天津) 지역연구 마지막날

저우언라이(周恩来)의 사랑이 담긴 난카이대학(南开大学)


마지막날 일정은 캠퍼스 투어로 정했다. 톈진의 유명한 난카이 대학(南开大学)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전날 너무 무리한 감이 있어 좀 쉬엄쉬엄 다니려는 생각이었다. 마침 난카이 대학 맞은편에 있는 톈진 대학(天津大学)에 우리가 목표로 하던 거우부리빠오즈(狗不理包子) 체인점도 있고 해서 캠퍼스 구경도 하고 톈진의 명물도 먹고 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지막 날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단 아침부터 너무 습하고 더웠다.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습도에 기온도 무척 높아서 밖에서 조금만 걸어 다녀도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였다. 좀 쾌적하게 이동해보려고 호텔에서 택시를 잡아 도착한 난카이 대학 정문에서 우린 또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과 마주하게 된다. 그건 바로 펑츠(碰瓷, 자세한 설명은 이 글 참고). 상황은 북경에서 겪었던 그것과 비슷했다. 내리려고 하는데 문에 와서 부딪히고 쓰러져서 못 일어나는 시늉을 하는 모습. 택시기사 아저씨가 중간에서 수습해주는 것까지 거의 비슷했다. 이쯤 되면 정말 펑츠는 북방의 전유물인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쉽지 않게 들어온 난카이 대학 캠퍼스. 난카이 대학은 중국에서 손에 꼽는 명문대 중 한 곳으로, 1919년 개교했으니 100년이 넘은 대학이다. 본래 톈진에 개교했다가 일본의 침략으로 창샤, 쿤밍 등으로 돌아다니다가 다시 톈진에 정착한 것이 1946년이다. 이 대학은 중국인들이 정말 다 좋아하는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의 모교라는 이유로도 유명하다.



여기가 사실 난카이 대학에 오면 꼭 보아야 하는 건물, 난카이 대학의 주러우(主楼)다. 난카이 대학의 존재감을 확 드러내 주는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 저우언라이 선생의 동상이 그 앞을 장식하고 있다. 이곳 학생은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공유 자전거를 타고 이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얼핏 예전에 수업을 들을 때 저우언라이는 마치 '엄마' 같은 느낌으로 중국인에게 사랑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저우언라이의 동상 밑에 흘림체로 6글자의 한자가 적혀있었는데 아무래도 유명한 말인 것 같아 찾아보려고 하니 앞 두 글자밖에 모르겠다. 일단 검색엔진 바이두를 켜고 '周恩来 我是'라고 앞 두 글자만 넣어 찾아본다. 바로 나오는 "워스아이난카이더(我是爱南开的)"라는 말. 그런데 이상하다. 모교를 사랑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했다기엔 이 문장에 들어있는 '是~的'가 주는 느낌이 좀 묘하다. 모교를 사랑한다는 담백한 의미는 "워아이난카이(我爱南开)"라는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할 텐데, 문장의 효율을 지극히 중시하는 중국인 저우언라이가 어째서 굳이 두 글자를 더 붙였을까? 저 두 글자를 붙이는 순간 이 문장은 "난 난카이를 (싫어하지 않고) 좋아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바이두 검색 결과를 좀 더 뒤져보다 보니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저우언라이가 했다는 저 말은 1919년 5월 그가 일본에 유학 중인 난카이 대학 학생들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었다. 당시 그는 난카이 대학이 매국 행위를 한 사람을 학교의 이사장으로 뽑은 것에 대해 반대하는 마음으로 학교의 해당 결정을 비판하고 일본에 있는 동학들이 그와 뜻을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편지를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저 유명한 6글자, "워스아이난카이더(我是爱南开的)" 앞에는 학교의 현황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학교를 사랑한다, 그러나..."라는 느낌을 주는 '是~的' 용법이 쓰인 것이다. 저우언라이가 모교와 민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담겨있는 말이기 때문에 그의 동상 밑에 새겨진 모양이다.



학교가 참 커서 돌아다닐 곳이 참 많았지만 앞서 설명한 이유로 정말 걸어 다니기가 어려웠다. 몇 개의 유명한 건물을 보고 매점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집었다. 먹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날씨였다. 주말, 그것도 일요일의 학생식당은 정말 한가했다. 덕분에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학생식당의 빈자리에 앉아 몇 없는 학생들을 구경하고 TV를 보며 시원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 물론 에어컨은 없었다. 그저 대형 선풍기와 아이스크림이 우리를 구원해주었을 뿐.


난카이대학 캠퍼스의 초여름 연꽃과 노천 택배 보관소(?)


드디어 만나는 거우부리 빠오즈(狗不理包子)


다음 목적지로 우리가 택한 곳은 바로 맞은편에 있는 톈진대학 캠퍼스. 사실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는 줄은 몰랐는데, 난카이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니다가 지도에서 이상하게 다른 캠퍼스 하나가 보이는 걸 보고 가게 되었다. 아래 지도를 보면 난카이 대학의 북쪽과 톈진대학의 남쪽이 완전히 맞닿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오른쪽 사진처럼 두 캠퍼스는 마치 한 캠퍼스인 양 붙어있다. 게다가 마침 이 톈진대학 캠퍼스 안에 톈진의 명물인 거우부리 빠오즈 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겸사겸사 들어가 보게 되었다.



톈진대학은 사실 난카이 대학보다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 1895년 청 광서제 때 만들어진 북양대학(北洋大学)이 그 전신인데, 중국이 만든 첫 번째 현대적인 대학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다만 난카이 대학이 좀 더 이름나게 된 이유는 난카이 대학이 만들어진 시기가 외세의 압박이 심할 때였다는 점 때문인 듯하다.


톈진대학에 있다는 거우부리 빠오즈는 학생식당 2층에 위치해 있었다. 학생식당에 이렇게 유명한 빠오즈 체인이 있다니! 좀 놀랐는데, 얼핏 그 인테리어나 분위기를 보니 손님들이 왔을 때 대접할 용도로 지은 식당으로 보였다. 학생들이 그냥 와서 먹기에는 값이 좀 나가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톈진을 떠나기 전에 유명하다는 그 빠오즈를 맛볼 생각으로 빠오즈 하나와 톈진의 유명한 밤을 시켰다. 간단한 과자가 서비스로 나왔다.


이 식당은 참 이름이 독특하다. "개가 상대도 안 해준다"는 뜻의 거우부리(狗不理)는 어찌 보아도 빠오즈 가게 이름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그 이름이 붙여지게 된 계기를 찾아보니 사실은 그런 뜻으로 지어진 이름은 아니었다. 이 빠오즈 체인의 창립자인 까오구이요우(高贵友)는 아명이 바로 거우즈(狗子, 강아지)였는데, 그가 차린 가게의 빠오즈가 너무 맛이 있어서 장사가 잘 되는 바람에 혼자서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일종의 셀프 주문/계산 방식을 택했고, 그러다 보니 손님들이 "狗子卖包子,不理人(거우즈가 빠오즈를 파는데, 사람을 상대를 안 한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는 더쥐하오(德聚号)라는 이름의 식당이 이런 이유로 거우부리빠오즈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명하다는 빠오즈 가게인데 명성 때문인지 좀 비싼 편이었다. 마침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아서 많이 시키진 않았지만 아마 배가 고픈 채로 왔다면 돈이 꽤나 나갔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2020년 비슷한 이슈로 베이징에 있던 거우부리 빠오즈 가게가 대부분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젠 백 년 넘게 장사한 가게도 그 역사만 가지고 손님이 오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겠지.



빠오즈 가게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후드득후드득 소란스러운 비 듣는 소리가 들렸다. 하루 종일 꾸물꾸물 습하고 더운 날씨가 이어지더니 점심 나절부터 하늘이 참지 못하고 큰 비를 쏟기 시작한 것이다. 우산이 없었던 우리는 빠오즈를 다 먹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비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래 참아준 하늘에는 고마웠지만, 이러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상하이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단 비도 오는데 어딜 더 돌아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고 조금 이르지만 먼저 공항으로 가보기로 했다. 잠시 비가 잦아든 틈을 타 택시를 부르고 식당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문 앞에 이런저런 광고가 붙어 있었다. 하나는 아르바이트/부업 광고. 대부분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가정교사 등의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아마도 저기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소개소 형식으로 수요자와 연결해주는 형식인 것 같았다. 그 뒤에 붙어있는 전단지는 대학원 진학에 도움이 될 자료를 판매하는 광고, 또 정장을 파는 광고였다.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대학생들의 진로 고민은 똑같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중국이 대학원에 대한 수요는 훨씬 더 강한 편이다. 학부만 졸업하고서는 괜찮은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어렵사리 택시에 타니 그나마 한 몇 분 참아주었던 하늘에서 다시 굵은 빗줄기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여행 중 비를 만나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닌 데다 개인적으로도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긴 하지만, 이날의 비에는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톈진이 처음인 우리를 위해 마지막 날 오전 내내 꾹꾹 참아주다가 볼 것을 거의 다 봤다고 생각될 때쯤에야 내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록 이 비로 인해 톈진의 마지막 기억은 빗방울진 기억들이 되었지만 비 듣는 창 너머로 보이는 톈진대학의 교문도 그 나름대로 운치 있었고 말이다.



비 오는 톈진을 뒤로하며


택시를 타고 한 시간쯤 갔을까? 상하이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톈진빈해공항에 도착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 앉아있는데 장대 같은 비가 계속 온다. 설상가상으로 상하이도 큰 비가 내리고 있다. 페이챵쥰(非常准) 어플을 통해 언뜻 보니 출발지와 도착지에 모두 큰 비가 내리고 있어 비행기 연착이 예상된다고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를 탑승한 뒤에도 한참을 기다리다 출발하게 되어 약 한 시간 반 정도가 연착되었다. 아무래도 톈진이 우리가 떠나는 걸 원치 않나 보다.


'북방의 투박함' 같은 말로 묘사할 때도 있었지만 사실 이번 지역연구는 톈진이라는 도시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회사의 공장이 있는 도시, 뿌연 안개 같은 도시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막상 조계지로서 톈진의 모습을 보게 되니 머릿속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조계지의 역사가 없었다면 이 도시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역사에 그런 가정은 사실 의미가 없으니 지금 모습만 가지고 본다면, 톈진은 분명 북방의 여러 도시들 중 볼거리가 많은 도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비슷한 역사를 가진 상하이와 그 모습이 유사하면서도 한적하고, 쭉쭉 뻗은 북방 도시의 느낌도 가지고 있어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비 오는 톈진을 뒤로하며, 다시 비 오는 상하이로 돌아간다.




[톈진 3일차 일정]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톈진 여행, 끝! 우따다오(五大道), 시카이교당(西开教堂), 빈쟝다오(滨江道), 츠팡즈(瓷房子), 톈허우궁(天后宫), 이탈리아 풍경구(意风区), 하이허(海河)의 야경, 난카이대학. 충실했던 2박 3일! 누군가는 톈진에 볼 게 없다고 하지만, 내가 직접 가서 보니 볼 게 많았다. 톈진은 북방의 상하이 같다. 게다가 상하이보다 훨씬 조용하다. 하늘이 오래 참아준 덕분에, 3일차 오후나 되어서야 비가 내린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그저 오늘의 연착이 오래가지 않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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