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Dec 12. 2020

다시, 여기, 캠퍼스 (2)

상해 교통대학 어학당 등록 및 주숙 등기 준비

1편의 서두에서 말했듯, 중국으로 들어가기 전 필요한 사전 준비를 모두 끝낸 후, 19년 3월 22일 드디어 처음으로 상해 교통대학의 교문을 들어섰다. 이 글에서는 어학당 등록 당일에 했던 일들을 주로 적어보려고 한다.



입학등록을 하던 당일은 날씨가 참 꾸리꾸리 했다. 돌이켜보면 3월 상해는 맑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매일이 흐리거나 비가 흩뿌리거나 해서 춥고 습했다. 분명 온도는 한국보다 훨씬 높다. 다만 습도가 높아 스며드는 추위가 심하다. 중국어로는 습냉(湿冷)이라고 표현하는 이 추위는 중국 남방지역과 대만에 자주 가는 분이 계시다면 공감할 것이다.


날씨가 좀 아쉽긴 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캠퍼스를 눈으로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행히도 심사숙고해 고른 학교는 꽤 마음에 들었다. 고풍스러운 교문부터 학교 곳곳에 있는 역사가 깃든 건물들, 오랜만에 만나는 중국인 학생들, 학생식당 밥까지. 상해 생활 초반을 장식한 기분 좋은 추억들이 여기 많이 묻어 있다. 본격적으로 수속 관련 이야기를 하기 전, 교문을 지나 입학 수속이 진행된 인문학원(人文学院)으로 가는 길에 찍은 첫날 풍경을 여기 잠시 담아본다.


화산로(华山路)에 위치한 교통대 동문. 어학당에서 더 가까운 교문이 있었지만 이 문이 왠지 더 좋아 나는 늘 이리로 통학했다.


착한 사람 눈에는 보이는 교통대 고양이. 교통대 캠퍼스는 고양이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아침운동을 책임지는 공원 역할도 했다.


구 도서관(老图书馆) 건물과 그 앞을 수놓은 봄꽃. 하늘이 맑지 않아 꽃 색이 어둡게 찍힌 것이 아쉽다.


인문학원(人文学院) 가는 길에 보인 백주년기념비와 그 광장. 졸업 시즌이 되면 여기서 졸업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정문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서 들어가자 어학당 수업이 진행되는 인문학원(第一教学楼 人文学院) 건물에 도착했다. 학부생이나 석사생은 이곳에서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일부 강의실은 중장년층이 수업을 듣는 평생교육원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를 어학당 수업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오늘 입학등록을 진행하기로 한 나를 포함한 학생들이 모두 한 강의실에 모였다.


[입학 등록 당일]


1. 학교 관련 자료 배부


우선 학기 일정표, 각종 규칙 및 안내사항이 적힌 학교 생활수첩을 나눠줬다. 또 학교 기념품점에서 팔 것 같은 학교 굿즈도 몇 가지 나눠 주었다. 학교 백팩과 에코백 같은 물건이었는데 어학당 학생들이 학부생보다 큰 비용을 지불하고 강의를 듣기 때문에 무료로 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래 사진 맨 왼쪽에 있는 회색 물건이 학교 백팩인데, 생각보다 쓸만해서 상반기 나의 지역 연구를 몇 차례 함께 했던 고마운 친구다. 내가 너무 짐을 많이 넣었는지 안타깝게도 몇 개월 후 어깨끈이 끊어졌는데, 그마저도 여행 중반이 아니라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끊어졌다. 생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신통방통하고 고마운 백팩이었다.


배부받은 학교지도와 백팩, 에코백 등. 그는 좋은 백팩이었습니다.


2. 필요 서류 제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학교 입학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했다. 아마 출국 전 준비를 철저하게 잘해서 들어왔다면 학교 교문을 들어서기 전 이미 '입학허가서 원본, JW202표, 여권용 사진, 여권 원본, 학비, 교재비, 보험료 등 비용'은 수중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추가로 필요한 것이 '주숙등기표'다. 


주숙 등기(住宿登记)는 중국에 입국한 외국인이 지정된 장소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관할 경찰서(공안국, 公安局)에 증명하는 절차다. 비자와는 별도로 필요한 수속인데, 상해의 경우 입국 후 24시간 내 진행해야 하고, 시간을 넘길 경우 꽤 큰 액수(아마 도시마다 다르지 싶은데 하루에 500위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의 벌금을 낸다.


주숙 등기는 입국신고의 개념이므로 원칙적으로는 중국 국경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을 때 하면 된다. 여기서 국경 밖은 대만이나 홍콩, 마카오 지역(港澳台地区)도 포함이다. 다만 이미 입국한지는 좀 됐지만 거주지가 바뀔 경우(ex. 호텔 숙박 → 자택 숙박, 호텔 숙박 → 에어비앤비 및 가정집 숙박, 처음부터 가정집 숙박)나 비자 및 여권 갱신으로 정보가 바뀔 경우에도 꼭 챙겨서 진행해주어야 한다. 많지는 않지만 종종 파출소에서 점검을 나왔는데 정보가 달라 벌금을 내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호텔이나 숙박업소에 묵게 될 경우 처음 체크인할 때 여권을 복사하는데, 이 여권 사본으로 대신 주숙 등기를 진행해준다. 호텔에 묵다가 가정집으로 이사하게 되거나 아니면 숙소가 가정집일 경우(에어비앤비 포함)에는 무조건 시간을 잘 계산해서 관할 파출소에서 직접 주숙 등기를 진행해야 한다. 파출소에서 직접 주숙 등기를 할 경우 상해 기준, "여권 앞면 원본/사본, 여권 비자면 원본/사본, 여권 출입국 도장 찍힌 면 원본/사본, 집 계약서 원본/사본, 집주인 신분증 사본, 집문서(房产证) 사본, 부동산 증명서(중개인 측에서 준비 필요), 이전 숙소 주숙 등기 증명(호텔에서 발급)" 이렇게 많은 자료가 필요하다. 파출소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파출소 직원분들이 결코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꼭 미리미리 자료를 잘 챙겨서 방문해야 한다.


학교 등록을 하던 시점에 나는 아직 호텔에 숙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오기 전 우선 호텔에서 주숙등기표를 받아와서 입학등록을 진행했고, 학교 요청으로 입학등록이 끝난 후 계약된 집 주소를 근거로 '유학생 교외 거주증'을 발급받았다. (학교 학생이면 일단 학교 기숙사에 거주하는 것이 제1원칙이기 때문에 교외에 거주할 경우 등록이 필요함) 그리고 주말에 파출소를 방문해 주숙 등기를 했다.


※ 참고로 상해는 2019년 하반기부터 온라인으로도 주숙 등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어 파출소에 가는 수고를 덜었다. (온라인 주숙 등기 웹사이트: https://crjzndg.gaj.sh.gov.cn/24hr/web/zcbd/ ) 하라는 대로 정보를 잘 입력해 넣고 신청하면 파출소에서 처리하고 결과를 웹사이트를 통해 통보해준다.


교외거주증 발급받으러 갔을 때 사무실에서 만난 고양이


3. 분반 고사


서류 제출이 끝나니 갑자기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세네 분 정도 들어오신 후 한 테이블씩 자리를 잡으셨다. 분반 고사의 시간이 된 것이다. 분반 고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한국에서 따로 준비를 하지는 않았는데 내심 듣기·읽기·쓰기 등과 같이 분야별로 나눠서 시험을 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시험이 시작되자 예상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다른 유학생들보다 약간 늦게 도착해 등록한 케이스라 일반적인 방식과 조금 다르게 진행된 것 같다. 시험 방식은 이랬다.


1.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선생님 옆에 가서 앉는다.
2. 선생님께서 갖고 오신 교재(북경어언대 출판 교재)를 랜덤으로 펼친 후 한 문단을 짚는다.
3. 선생님께서 짚은 그 문단을 소리 내어 읽는다.
4. 다 읽으면 선생님께서 방금 읽은 내용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5. 문단 중에 등장한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6. 선생님께서 입학서류표 공란에 분반 고사 결과를 적어주신다.


시험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도 않았고 떼거지로 한 교실에서 시험을 본 터라 참 정신 사나운 시험 시간이었다. 그다지 전문적으로 분반을 진행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나는 고급 3반(高三)에 배정받았다.


4. 교재 구입


이제 한 학기 동안 어느 반에서 수업을 들을지가 결정되었으니 수업 교재를 구입해야 했다. 교재는 1층에 위치한 교재 구입처에서 사게 되어 있었다. 교재 구입처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까지만 여는 곳이라 이 시간을 놓치면 교재를 살 수가 없는데, 다행히 이 날은 등록이 진행되는 날이라 그런지 그 시간이 아닌데도 열려 있었다. 들어가서 반 이름을 말하면 아저씨가 알아서 교재를 고르면서 어딘가를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을 따라 가면 'QR코드'가 있다.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으면 바로 금액과 지불 컨펌 화면이 나오고, 결제 내역을 보여주면 아저씨가 물건(여기서는 책)을 건넨다. 이때부터 나와 QR코드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이 시작되는데, 현금이라는 건 가지고 다니면 짐만 된다는 걸 이후 1년간의 중국 생활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교재구입처 주인 아저씨의 단호한 안내문


5. 사진 찍기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사진 찍는 게 남았으니 몇 호 사무실로 가라고 한다. 쭈뼛쭈뼛 들어가니 교직원께서 얼른 와서 여기 앉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디를 보란 말씀도 안 하시고 언제 찍는다는 신호도 없이 다 끝났단다. 찍은 사진도 안 보여줬다. 이후 나는 그때 찍은 내 사진을 온라인 캠퍼스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사진 속에는 습한 날씨에 머리는 산발이고 표정은 맹하고 턱을 치켜든 이상한 여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학생증에는 이 사진이 아닌 여권 사진을 사용했기에 지역 연구로 다른 지역 여행 시 학생 할인을 받을 때 민망할 일은 없었다.


6. 시간표 조정


앞선 과정들이 입학 등록을 위한 필수 코스라고 한다면 이 부분은 선택 코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한 학기의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위해 꼭 한 번은 거쳐야 하는 단계였다.


교통대의 어학당은 초급 4개 반, 중급 3개 반, 고급 3개 반, 이렇게 총 10개 반으로 나뉘는데, 다른 학교보다 시간표 운영에 있어 좀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래서 학기 시작 후 일주일 동안 본인의 사정에 맞게 시간표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금요일에 수업이 듣고 싶지 않다면, 월~목 중 남는 시간에 수업 하나를 끼워 넣고 금요일 강의를 수강 취소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 제한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본인의 레벨에 맞는 수업으로만 변경이 가능했다. 초급이 중급 강의로 바꾸거나 고급이 중급 강의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배정된 고급 3반의 원래 시간표는 월화수목금까지 꽉꽉 차있는 즐거운(?) 시간표였다. 게다가 금요일에 있는 강의는 오후 수업. 오전-오후 수업이 모두 있다는 점이 오히려 독이 되는 시간표였다. 이래서야 한 주의 일과가 끝나고 주말을 이용해 지역 연구를 다니고자 했던 나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상황. 망설이다가 학과 사무실로 찾아갔다. 목적은 단 하나! 금요일 수업을 없애자!


고급반 강의 안에서만 변경이 가능한 상황이라 우선 다른 고급반의 시간표를 받았다. 대충 분위기 파악하신 학과 사무소 선생님께서는 보통 유학생들이 어려워한다는 '신중국문학(新中国文学)'이나 '당시감상(唐诗赏析)' 수업을 빼는 것을 제안하셨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중문과 나온 학생인데 자존심이 있지. 현지에서 문학수업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그 수업들은 빼지 않고, 조금 덜 재미있어 보였던(...) '중국소수민족' 강의를 취소했다. 대신 월~목 사이에 고급 2반의 다른 강의들을 넣어 아름다운 시간표를 완성했다.


나의 한 학기를 주사파로 만들어준 아름다운 시간표 되시겠다. 교통대 만세!



입학등록과 각종 수속, 시간표 조정까지 끝내고 나니 비로소 초기 정착을 위한 미션이 모두 완료되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중국어 공부와 학생비자 취득을 위해 등록한 학교였지만, 학교 수업을 듣던 3개월이 1년 간의 상해 생활 중 가장 설레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어떻고 수업이 어떻고를 떠나 그저 회사가 아니라 캠퍼스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다시, 여기, 캠퍼스. 31살의 내가 한국도 아닌 중국에서 다시 교정을 밟게 될 줄이야!



※ 나처럼 한 학기 과정을 신청해 150~180일 학생비자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1년 치 과정을 신청해 1년 학생 비자를 발급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위의 과정에 더해서 신체검사도 진행해야 한다. 한국에서 해간 검사는 의미가 없고, 중국에 도착해서 학교 지정 장소에서 검사를 받고 해당 서류를 학교에 제출해야 등록이 가능하다. 나는 안 해봤지만 듣기로는 검사 방식이 굉장히 험하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여기, 캠퍼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