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Jan 17. 2021

상해에서의 첫 자원활동

청명절 연휴 셋째날

상해에서 맞이하는 첫 연휴. 연휴에 할 수 있는 다양한 재미있는 일들을 해보자는 취지에 맞게 연휴 첫날, 둘째날을 모두 충실하게 보내고, 결국 누구나 그 날이 오지 않길 바란다는 연휴의 마지막날이 다가왔다. 마지막날을 위한 활동은 역설적이게도 연휴 기간에 할 일로 내가 가장 먼저 결정했던 일. 내가 가장 고대했지만 한편으론 가장 걱정이 되었던, 바로 중국에서의 첫 자원활동.


대학 때부터 상해로 나오기 불과 몇 달 전까지 나는 이런저런 자원활동을 해왔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주말학교라든지,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방이라든지,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라든지. 어떤 사람들은 내가 종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자원활동을 다양하게 많이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곤 했지만, 사실 나는 종교가 없다. 내가 자원활동을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하면서 내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기 때문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기적인 이유지만,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했기 때문에 활동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있었다고 본다.


상해 파견이 결정되고 나서 뛸 듯이 기쁜 와중에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고 하면, 2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던 보육원 봉사단체의 활동을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고 한 주에 한 번 다가오는 내 삶의 낙이었는데, 상해로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그래서 파견 전부터, 상해에 나가게 되면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비록 한시적이지만 활동할 수 있는 자원활동을 찾아보자고 마음 먹었다.



2019년 4월 7일 청명절 연휴 마지막날 하기로 한 이 자원활동은 또우빤(豆瓣)이라는 어플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본래 이 어플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의 평점이나 리뷰를 조회하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어플인데, 그 기능 중에 커뮤니티(同城)이라는 기능도 있다. 같은 지역(同城)에 사는 사람들끼리 유용한 정보를 교류하는 공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각종 공연, 영화 등의 예매는 물론이고 강좌, 모임, 원데이 클래스, 운동 등 활동의 공지 및 모집도 진행한다. 사실 영화나 공연 예매 같은 기능들은 따중뎬핑(大众点评)과 같은 어플로 이미 충분히 대체되긴 했지만, 그 도시에서 최근 진행되는 각종 모임 활동에 대한 공지글 중에는 흥미로운 활동도 꽤 있다.


또우빤(豆瓣)의 메인 화면 및 커뮤니티(同城) 페이지


자원봉사활동을 찾으려면 공익(公益) 카테고리에서 그 활동을 찾으면 되는데, 열심히 페이지를 서칭하던 중 익숙한 활동이 보였다. "자폐증 아이들과의 교류 활동". 한국에서 해봤던 장애아동 주말학교와도 유사하고, 클라이언트의 연령대가 어리다면 중국어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연락처에 있는 위챗으로 문의를 넣었다. 그리고 바로 "상해 자원활동가 모임(上海爱心志愿者群)"이라는 위챗 단체방에 초대되었고, 뭔가 나도 모르게 본격적으로 회원으로 가입된 듯 했다.


대화방에 초대된 후 일단 며칠간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니, 대체로 이렇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우선 대화방에 특수학교 선생님이 한 분 계시고, 그 분이 활동이 필요한 아이들에 대한 간단한 신상 정보와 알아두어야 할 사항, 활동이 가능한 시간 등을 적어서 공지에 올린다. 그리고 대화방 안에 있는 사람들 중 본인이 그 조건에 맞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있으면 '몇 번 아동과 함께 하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얼마 뒤 특수학교 선생님께서 그 지원자와 아이의 보호자와 매칭시켜주고 약속을 잡을 수 있게 지원해준다. 만나서 아이와 활동을 하고 혹시 사진을 찍게 되면, 그 사진은 특수학교 선생님이 동의를 얻은 후 단체방에 공유한다. 이렇게 서로서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교환한다.


특수학교 선생님께서 그 방에 계셨으니 전문가도 아닌 내가 할 말은 못 되지만, 만약 진짜 전문가가 본다면 좀 실망할 수준의 퀄리티. 일단 참가자의 신분에 대해서 리더가 정확하게 파악도 할 수 없고,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장애 아동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또 장애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아이들의 특성이 얼마나 복잡한데 단순히 문자로 몇 글자 적힌 설명만을 가지고 어떻게 아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첫 만남에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일단 상해에서 내가 자원봉사활동을 찾을 수 있는 루트가 이 길밖에 없었던 만큼(복지관 등 컨택을 몇 번 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일단 참여해보기로 했다. 며칠 기다리니 활동 시간이나 아이의 성별 등 기본적인 부분이 나의 조건과 맞는 대상자의 공지가 떠 신청했고, 그 날짜가 청명절 연휴의 마지막날이었다. 함께 하게 된 친구는 고등학생 여자 아이로, 의사소통은 가능하나 약간의 발달장애가 있었다. 어머님과 함께 아이의 동네에 있는 계림공원(桂林公园)에서 만나기로 했다.



상해 계림공원(桂林公园). 상해 지하철 12호선 난징시루(南京西路) 역에서 여덟 정거장 떨어진 계림공원(桂林公园) 역에서 내리면 도착한다. 강남(江南)의 조경 양식 등을 엿볼 수 있는 예술 가치가 있는 공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역사를 들여다 보면 상해의 유명한 흑사회 보스 황진롱(黄金荣, 황금영)의 사유 화원이자 별장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유로 계림공원은 '황가 화원(黄家花园, 황실의 화원이라는 皇家花园과 발음이 같다)'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일제 침략을 겪은 후 전란에 손실되었던 부분을 복구하여 1988년 재개장한 모습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공원의 모습이다. 공원 내에 계수나무(桂花树)가 많아 계림공원으로 명명되었다. 가을에 오면 계수나무 꽃 축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이와 어머님, 활동을 같이 할 또 한 명의 봉사자,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계림공원 문 앞에 모였다. 이때만 해도 공원의 입장료가 2위안이라 어머님이 직접 표를 구매해 나눠주셨는데, 찾아보니 지금은 무료 개방이라고 한다. 입구에 서서 어머님으로부터 간단히 아이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어머님이 연신 "우리 아이는 장애가 없어요. 그저 다른 아이들보다 이해력이 조금 부족할 뿐이니 천천히 말씀해주시면 다~ 알아 들어요."라고 말씀하신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말씀하시는 내용을 열심히 들어 드렸다.


아이가 평소에 하는 일들,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을 알려주신 후에는 본론으로 들어가 오늘 활동의 주제를 말씀해주셨다. 오늘 활동의 주제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잘 찍은 사진 골라내기' 작업. 평소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아이가 열심히 사진을 찍기는 하는데, 찍기만 하고 막상 지우는 작업을 못 한다고. 잘 찍은 사진을 골라낸 후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지우는 것을 가르치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마침 4월 7일의 하늘은 참 맑았고 날도 따뜻해서 공원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어머님은 잠시 쉬시게 하고 아이와 함께 공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계림공원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는 모습


입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꽃이 만발해 있는 연못이 나타났다. 많은 주민들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아이와 이런 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바로 사진을 찍어보라고 제안했다. 또 사진을 지우는 법도 함께 알려주었다. 혹시 흔들린 사진이 생기면 이렇게 지우면 된다고. 들어보니 아이는 평일엔 집 근처 상해사범대학(上海师范大学)의 학생들에게 간단한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주말엔 이렇게 자원봉사자들과 만나 나들이를 다니거나, 종이접기, 비누방울 등 좋아하는 활동들을 한다고.



강남 원림의 스타일을 재현했다는 말처럼, 공원 곳곳에서 쑤저우(苏州) 원림과 유사한 건물 양식과 조경 양식을 볼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건 주말이라 그런지 한복(汉服, 한족 전통복장)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마치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에 한복(韩服) 입고 가는 것과 유사한데, 공원 분위기가 고풍스럽고 입장료도 싸서 사진을 찍으러 나들이를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사진만 보면 입장료가 한 이십 위안은 되어야 할 것 같다. 이쯤 되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삼각대까지 들고 이 공원으로 오는지 알 것 같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한 건물들의 모습과 돌로 만들어진 가짜 산(假山), 인공 호수까지. 동네에 있는 공원의 모습이 이렇다니, 정말이지 중국에서 공원을 다닐 때마다 부럽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공원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석상(아래 왼쪽 사진)은 '팔선과해(八仙过海, 빠씨엔꿔하이)' 석상이다. 원래 있던 석상은 문화대혁명 때 훼손당하고, 지금 있는 버전은 복구된 석상이라고 한다. 다만 본래 이 황가의 정원에 왜 이 석상을 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 황진롱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능력(本事)을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아이와 함께 공원을 돌아다닌 지 한 시간 정도 되었을까. 어머님이 슬슬 정자로 와서 쉬라며 부르셨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음료수와 과자(豆沙酥)를 꺼내 주신다. 같이 과자를 먹으며 아이가 한 시간 동안 찍은 사진을 보았다.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 번 촬영 버튼을 눌러 사진은 여러 개 찍힌 경우도 있었고, 흔들려서 풍경이 잘 나오지 못한 사진들도 있었다. 아이는 스스로 사진을 보면서 필요 없는 사진을 삭제했다. 그래도 활동의 목표를 이뤘구나 싶은 생각에 뿌듯했다.


어머님께서는 궁금하셨는지 나와 다른 한 명의 봉사자의 간단한 신상 정보를 물으신 후 앞으로 가능하면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를 만나서 활동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 역시도 이 활동을 찾을 때 일회성으로 할 생각은 없었던 터라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꼭 맞춰보기로 했다. 다만 개인 사정상 1년 후에는 상해를 떠나야 함을 미리 말씀드렸고, 그 사이에 여건이 허락한다면 오늘 만난 친구와 정기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다.


서두에 이 활동에 대해서 '가장 고대했지만 한편으론 가장 걱정이 되었던' 활동이라고 소개했는데, 사실 걱정이 되었던 이유는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중국 아이들과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일로 비춰질 수도 있고, 아이가 뭔가를 '학습'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모국어 화자가 아닌 사람과 소통하게 될 경우 그 학습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활동의 막바지에 용기를 내서 나의 국적을 밝혔을 때, 다행히도 어머님께서는 전혀 몰랐다며 소통에 아무 문제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


물론 내 중국어 실력이 완전 모국어 화자에 가깝다거나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건 어머님도 당연히 느끼고 계셨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님께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맺는 데 있어 발화에 문법적인 오류가 있는지, 단어 사용이 적절한지보다, '마음'이 들어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상해 첫 번째 자원활동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순조롭게 끝이 났다. 아, 그리고 중국에서 보내는 나의 첫 연휴도 이렇게 끝이 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