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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an 22. 2021

패왕별희 (霸王别姬)

연기에 미친 자(戏疯子)의 '인생'


■ 원어 제목: 패왕별희 (霸王别姬, 빠왕비에지)

■ 영어 제목: Farewell My Concubine

■ 장르 : 드라마 / 멜로 / 동성

■ 년도 : 1993

■ 감독 : 陈凯歌

■ 주요 배우 :  张国荣,巩俐,张丰毅,葛优 등



오늘 소개드릴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패왕별희(霸王别姬)>입니다. 배우 장국영의 대표작 중 하나이고, 그의 기일에 맞춰 한국에서 확장판이 개봉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한 달 늦은 5월 1일에 개봉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또우빤(豆瓣)의 수많은 영화 중 2위(중화권 작품 중에서는 1위)를 차지한 작품인 데다 한국에서도 너무도 사랑받은 작품이라 사실 소개드리기가 조금 민망하긴 한데, 그래도 기록의 차원에서 남겨봅니다.


워낙 유명한 영화이니 이 영화를 제가 처음 본 건 분명 훨씬 이전이었을 것 같은데, 내용에 대한 인상이 이미 흐릿해져 있어 오랜만에 다시 볼까 하는 생각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보기 전에는 '장국영'이라는 키워드 하나만 머릿속에 있었는데 보고 나니 참 다양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더군요. 어떻게 보면 <인생(活着)>과 닮아있는데, <인생(活着)>이 정말 일반적인 소시민의 삶을 그린 작품이라면 이 영화는 무대 종사자 버전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다른 글에서 리뷰했던 영화 <인생>과 이 영화는 출품 시기가 1년밖에 차이가 안 나서 그런지 닮은 점이 꽤 있습니다. 우선 둘 다 원작이 소설이죠. <인생>은 위화의 소설에서 온 작품이고, <패왕별희>는 홍콩 출신 소설가 이벽화(李碧华)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둘 다 영화화되면서 소설의 본래 결말은 각색되었죠. 또 두 영화 모두 중국의 근대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다룹니다. 그리고 '감히' 중국의 역사를 다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개봉은 중국에서 하지 못하고 홍콩에서 했죠. 그리고 두 영화 모두 배우 거요우(葛优, 갈우)가 나옵니다. 닮은 점이 많기는 한데, 보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아무래도 좀 상반되는 것 같네요. 일찍 세상을 떠난 배우 때문일까요?


영화 <인생>과 <패왕별희>에서의 거요우(葛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미련'과 '배반'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또 그에 더해 중국 역사 속 수차례 나타나는 변곡점마다 인간은 얼마나 작고 하찮은지, 후천적으로 사회화된 인간이 역사에게 뺨을 맞을 때마다 어떻게 다시 본성으로 돌아가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런 아주 전형적인 예로 영화에 나오는 인물이 '패왕'을 연기하는 뚜안샤오로우(段小楼, 배우: 张丰毅)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는 별개로 배우 장국영의 손짓과 표정, 눈짓 등 비언어적 요소에서 오는 디테일이 자꾸 눈에 들어오더군요. 영화 속 청뎨이(程蝶衣)라는 인물은 아역에서 장국영으로 바뀐 그 순간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우희(虞姬) 그 자체였습니다. 청뎨이는 우희 역할에 대한 연기를 마지막 그 순간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장국영은 청뎨이 역할에 대한 연기를 마지막 그 순간까지 놓지 않았죠. 그리고 이런 배우와 그 배역의 일치화가 관객들을 소름 돋게 만드는 포인트가 됩니다. 심지어 장국영 인생의 마지막을 알게 되어버린 관객들이라면 더 그렇죠. 이 영화가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청뎨이가 비록 우희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때까지 사부에게 혼나고, 대사 한 마디 잘못 말했다가 입에서 피가 철철 날만큼 체벌을 당하지만 결국은 어떤 '각성' 시점 이후로 완벽히 우희에게 동화된 것처럼, 홍콩 배우 장국영 역시 이 영화의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해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고, 결국은 청뎨이가 되었습니다. 일례로 촬영 전 북경에서 반년 동안 경극 수업을 들었는데, 그 결과물이 좋았는지 감독이 섭외해둔 대역 몇 명이 한 번도 카메라 앞에 서보질 못했다고 하네요. 경극에 기초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 정도까지 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촬영 기간 내내 장국영은 일상생활에서도 청뎨이의 느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중국어로 이렇게 연기에 미친 사람을 '씨펑즈(戏疯子)'라고 하는데, 청뎨이가, 장국영이, 바로 이 씨펑즈(戏疯子)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력으로도 극복해내기 힘든 부분은 있었습니다. 바로 '표준어 발음'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북경. 여기 나오는 인물이 광동 발음을 하면 좀 이상하겠죠? 다행히 장국영을 제외한 배우나 감독은 대륙 출신. 완벽주의자 장국영은 더빙을 당하지 않기 위해 촬영 전 3개월 이상 표준어(普通话)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도 나쁘지 않아 대륙 배우들과 교류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요. 다만 다 찍고 나서 보니, 다른 배우들의 목소리 사이에서 이상하게 장국영의 대사만 거슬리더랍니다. 아무래도 남방 발음을 완전히 없애버릴 순 없었겠죠. 결국 이 영화에서 장국영의 목소리는 대륙 배우 양리신(杨立新)이 사후 녹음을 했다고 하네요. 더빙 결정이 되었을 때 장국영이 얼마나 분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어쨌든 이런 배역과 일치된 완벽한 연기가 밑바탕이 되어,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합니다. 하지만 정작 장국영 본인은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했죠. 두 가지 썰이 있는데, 하나는 이미 작품이 큰 상을 탔으니 배우에게 주는 상은 다른 작품에게 주려고 했다는 썰이고, 다른 하나는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장국영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자고 투표해서 그렇다는 썰입니다. 둘 다 그럴듯하네요.


이렇게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패왕별희>. 그럼 중화권에서의 성적은 어땠을까요? 재미있는 건, 정작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 지역에서는 이렇다 할 상을 타질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적 특수성'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중국은 애초에 <패왕별희>가 상영금지 영화였죠. 대외적으로는 동성애 관련 장면이 있어서 그렇다고 했지만, 아마 진짜 이유는 문화 대혁명을 다루었기 때문일 겁니다.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요. 칸 영화제 수상 이후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상영금지 영화 출신이었기 때문에 영화제 수상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비록 개봉은 홍콩에서 했지만 그 국적은 '중국 대륙'이네요. 국적이 대륙이었기 때문에 대만, 홍콩에서도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일을 다루고 있는데 자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아쉬운 영화입니다.


보고 나면 왠지 마음이 텁텁해지지만, 중국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안 볼 순 없는 영화 <패왕별희>. 너무 우울할 때 보시진 마시고, 기분이 조금 좋을 때 보시는 게 좋습니다. 긍정적인 시야로 보면, 무엇이 진정한 '프로의식'인지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드리며, 이번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참 우울한 영화다... 역사의 풍파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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