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 원어 제목: 활착 (活着, 훠저)
■ 영어 제목: Lifetimes Living
■ 장르 : 드라마 / 역사 / 가정
■ 년도 : 1994
■ 감독 : 张艺谋
■ 주요 배우 : 葛优,巩俐,牛犇,郭涛,姜武,倪大红 등
오늘 소개드릴 영화는 <활착(活着)>입니다. 제목을 저렇게 한자 독음으로 써두니 좀 낯설죠? <인생>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좀 낯이 익으실 것 같습니다. 네, 위화(余华) 소설 원작의 영화 <인생>입니다. 1994년 6월, 홍콩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또우빤(豆瓣) 영화 Top 250 중 28위를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참고로 1위는 쇼생크 탈출, 2위는 패왕별희네요. 국적을 불문한 전 세계 영화 랭킹 중에서 28위를 차지했으니 엄청난 영화입니다.
대학 시절 이 영화의 원작인 위화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중어중문학과니 위화는 읽어야지!' 하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읽었던 것인데, 의무감으로 읽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죠. <인생>을 모르시는 분들도 아마 같은 작가의 작품 <허삼관 매혈기>는 아실 겁니다. 다만 그때 영화 버전은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2019년에야 보게 된 계기는 '랭킹 상위권에 있는 중국 영화 목록을 돌려보다가 우연히 발견해서'입니다. 계기가 너무 별 거 없죠?ㅎㅎ
이 영화는 어떤 사람의 '인생' 얘기입니다. 철없던 젊은이가 손자 딸린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미주알고주알, 그의 신변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보여줍니다. 어라, 그런데 어째 이 사람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민국 말기의 혼란, 국공내전, 대약진, 문화 대혁명 등 중국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ㅡ 의도하지 않았지만 ㅡ 모두 겪고 맙니다. 여기서 '의도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인공 푸구이(福贵)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라오바이씽(老百姓)이거든요. 이런 굵직한 사건에 영향을 줄만한 대단한 인물이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역으로 이 굵직한 사건들은 푸구이의 인생에 매번 아주 거세게 펀치를 날립니다. 국공내전에 그야말로 '휩쓸려' 영문도 모르게 국민당이 되었다 공산당이 되었다 하며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문화 대혁명 때는 딸이 출산을 해야 하는데, 병원에 있던 의사들은 몽땅 반동으로 분류되어 잡혀가버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죠. 하지만 이 영화 제목이 무엇입니까? '活着(살아있다)' 아닙니까? 인생이 그에게 아무리 강펀치를 날려도 푸구이는 끝까지 살아남죠.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미 승리입니다.
영화의 감독 장이모우(张艺谋)는 본래 위화의 다른 소설을 영화화하려고 했다가, 그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던 중 이 소설을 접했고, 바로 이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그가 매료되었던 것도 이렇듯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참아내고 이겨내는 인물들의 모습이었다고 하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장이모우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가장 쉬운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드러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정확히 먹혔죠.
다만, 영화를 보시다가 아마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중국 영화에 나와도 되나?' 왜냐하면 중국 역사에 있어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 대혁명 같은 부분이 필터링 없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좋은 점 홍보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중국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영화를 용케 냈다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다 대륙 출신인데, 영화의 개봉은 홍콩에서 되었죠. 걱정한 그 이유 때문입니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대륙에서는 상영금지 영화로 분류되었습니다. 이유는 '사회주의 법제 및 정당 집정능력을 훼손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네티즌들은 각종 경로로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요.
사실 장이모우는 대륙에서 이런 취급받을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영화의 결말을 좀 바꿨거든요. 소설 속 푸구이는 살아남긴 하지만 정말 자기만 살아남았다면, 영화에서는 그래도 주변에 함께하는 가족들이 있죠. 이런 소소한 변화가 중국 정부에 대한 화해의 악수로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통하진 않았습니다.
스토리 외에도, 영화에는 눈에 익은 배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거요우(葛优, 갈우)는 제가 <천하무적(天下无贼)>에서 펑샤오강(冯小刚)의 남자 뮤즈로 소개드렸는데, 꽤 초기작인 이 영화를 통해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완전 인정! 그리고 또 한 명의 반가운 얼굴은 <도정호(都挺好)>의 커피 좋아하시는 아빠, 니따홍(倪大红, 예대홍)입니다. 그 역시 이 영화가 그의 배우 인생에서 꽤 초기작인데,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베테랑과 같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워낙 명작이라 긴 말이 필요 없는데, 너무 소개가 길었네요. 중국의 근현대사를 좀 쉽게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시대적으로 이 영화의 뒷 이야기가 드라마 <대강대하(大江大河)>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이번 리뷰를 마칩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원작 소설의 결말은 무척 비참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화는 그런 비참한 결말을 가족끼리의 대단원으로 바꿔 관중이 조금 더 보기 편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이 영화는 푸구이(福贵)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민국 말기, 국공내전, 대약진, 문화 대혁명 등 중국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을 보여주었다. 공리(巩俐) 참 예쁘다. 거요우(葛优)는 역할에 찰떡이고! 영화로서는 무척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위화의 원작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