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겨울 초입, 자연은 자연스럽게

시골살이-21

by 윤에이치제이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초입 툇마루도 계절을 닮아간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꽃은 지고 잎은 떨어지고 그 마저도 멋들어진 가지만 앙상해도 오히려 튀지 않게 풍경의 한 자락이 되었다 자연을 보고 있으니 자연 따라 흘러가는 느낌이다



밥을 먹다가 혀를 깨문 날이 있었다 그런 일은 종종 있고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이날은 피가 좀 많이 났고 2시간 반 정도 지혈이 잘 되지 않았다 조금 겁이 났다 만약 응급실을 가야 한다면 도시보다 원활하지 않을 시골에서의 응급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인터넷을 검색해 지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두 가지 정도 시도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불안도 흘러갔다 다행히 더 이상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상처는 깊었지만

자기 전까지 수시로 입안을 확인했고 혀의 상처 부위는 다음 날 아침에는 심각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정말 괜찮아졌다 멍이 들고 부은 자리가 눈에 띄었고 내 이빨 자국이 내 혀에 선명한 요상한 상황만 남았다

이틀 만에 다친 상처가 식생활에 지장 없을 정도로 편해졌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자극적이거나 뜨거운 음식을 피하고 씹기 쉽고 무리가 가지 않는 것들로 식사를 했다 그다음 날에는 그조차도 신경 쓰지 않고 일상적으로 지냈다 물론 상처 부위를 보면 여전히 도드라지게 불거져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혀를 깨물어 상처가 나거나 뜨거운 것에 입천장을 데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혀나 입 안쪽이 다쳤을 때 그때마다 약 없이도 결국 괜찮아지는 것을 보며 경이롭다고 느껴왔다 무리하는 것을 다 받아내는 우리의 내장 기관도 결국은 회복하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조금은 더딘 피부 상처가 결국은 낫는 것도 놀랍지만 나는 항상 입안 상처가 저절로 빠른 시간에 회복되는 게 늘 신기했다


이럴 땐 잊고 있던 사실이 상기된다 인간의 몸이 하나의 신비한 우주라는 것 사람도 경이로운 자연과 다를 바 없는 초자연적인 회복과 치유의 능력을 가진 자연 그 자체라는 것


그렇다면 자연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받아들이고 기다리고 믿고 살아가면 되려나 노력이 필요치 않은 건 아니겠지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주니까 자연스럽게


이건 이렇고 그건 그렇더라도 시골살이하는 인간은 자연보다 미약한 존재인 걸 인정하는 부분도 있어 시골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확인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 정통한 마을 어른의 말씀에 따르면 시골 마을 의료시스템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체계화되고 향상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도시만큼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대응이 빠르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마을마다 보건지소가 있고 읍내의 보건지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119 비상 시스템과도 연계되어 있어 응급 상황에 잘 대처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119를 부르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마을까지 들어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하나 아쉬운 건 무엇보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건지소에는 선생님 한 분이 마을 어르신들과 가구를 모두 담당하고 퇴근 후에는 돌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물론 출퇴근 시스템은 도시와 다를 바 없지만 야간에 생기는 응급 상황에 대해서는 대응이 아주 원활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도시보다 좋은 점은 부족한 그 하나의 인력이 지닌 투철한 사명감과 남다른 애정과 봉사하는 마음으로 마을 어르신들 개개인을 소중히 인지하고 의료 상태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이 다른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어떤 사람의 마음에서 불거진 인간적인 희망의 내음을 맡았다 그건 도시가 풍기는 뒤죽박죽 섞이고 뒤엉킨 복합적인 냄새에 옅어지거나 묻혀버린 빛나는 빛깔을 가진 향기였다


햇살이 통과한 유리잔 속 루이보스 바닐라티를 지나 갑작스레 나타난 무지개가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믿어보련다 일상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으련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자연은 어떠한 계절에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준다 자연스럽게 이 계절 내내 얻은 소소한 자연의 산물도 시골살이의 희망이고 감사다 심지어 나는 일구지 못한 선물들이 가을 내내 무지개를 건너 나에게로 왔다


(+)

가을에 도착한 감사한 것들


사과대추와 옥광

둥근 호박과 미니 당근

브로콜리와 상추

심지도 않은 텃밭에서 저 혼자 자란 부추와 텃밭에서 잘라낸 대파

진짜 호박맛만(?) 났던 호박고구마

늦가을에 풍성하게 수확한 단감과 대봉시

각각 한 그루의 나무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감이 열리는 것은 경이, 보다 경악, 의 수준이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다

지난주 막 수확한 텃밭의 자색알감자는 귀엽고 무 어른당근 양배추는 상자째 선물로 나눔 받았다


나는 무슨 복을 떠안은 걸까요

나는 어떤 희망을 보고 있는지요

어쩌면 사람에게 많이 실망하고 회의적으로 돌아선 나에게 같이 살아간다는 것의 참모습을 보여주시려는 나도 모르는 보살핌의 손길이 내게 닿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혹시 자연일까요 자연을 닮은 사람일까요 그 모두를 아우르는 어떤 힘으로부터 온 것일까요


다 모르겠고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보겠습니다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차차 두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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