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9번의 크리스마스 - 23 할슈타트
꼭 23번의 잠, 여섯 번째 도시에서의 스물세 번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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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깼을 때 혼자면 무섭다 어디서나 그렇다
청각이 예민한 새벽에 누군가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다녀서
망상에 빠져 혼자 떨었다 할머니와 나만 있는 게 아니었나
한참 후에 소리는 잦아들었고 완전히 고요해져서야 안심하고 다시 잠들었다
(아주 나중 일정이지만 이래서 결국 피렌체 독채 한 달을 포기하고
로마 가정집 싱글룸 한 달로 일정을 완전 수정했다는, 스포)
가끔 잠에서 깨면 여기가 어디였더라 한다
현실을 인지하기까지 단지 몇 초의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지만
그 찰나에 이게 꿈인가 싶고 딴에 하나도 아닌 낯선 공간마다 용케 잘 지내는구나 싶다
아침 식사에 추가로 나온 사과 한 알이 행복지수를 높여준다
할머니는 식사하는 동안 자주 들여다보셔서 나의 느린 식사 속도가 조금 신경 쓰인다
나중에야 알아본 후기인데 할머니가 이것저것 더 챙겨주시려고 그러신단다
집을 나섰는데 어제 워낙 추워서인지 오늘 해가 쨍해서인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공기에 좀 더 멀리까지 가봐야겠다 생각한다
반대편 가보지 않은 길의 끝까지
지나는 길의 호수는 언제나 필수 코스인데
날이 정말 따뜻한 게 맞는지 호수에 놀러 나온 예쁜 아이들이 곧잘 눈에 띈다
몇 번째 봐도 아름다운 컷을 또 여러 번 찍어 남기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할슈타트의 사사로운 것들이 건네는 취향에 마음을 빼앗긴다
내 마음 갖는 건 이렇게 쉽다 나는 소소한 예쁨에 취약하다
내려오는 길목에서 이틀 전 탔던 보트를 만났다면 시간이 딱 그 오후 즈음인가
또 한 가득 실려 오는 들뜬 설렘들이 더없이 맑은 하늘과 호수처럼 빛나고 있다
그들도 나의 이런 여정에 곧 동참하게 되려나
중간 휴식을 취하러 돌아온 집에서 청소 중이시던 할머니가 잔기침을 하신다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다가 할머니께도 1포 건네드린다
지나오다 성탄절 교회 예배 시간표를 가져왔는데
확인차 보여드렸더니 24일 pm5시가 맞다며 내일 30분 전에 같이 출발하자고 하신다
하...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조금 당황했지만 모르겠다 내일 생각하자, 한다
오늘 오후는 마을 중심부로 가지 않고
눈이 다 녹은 중심가와 달리 여전히 흰 눈 속에 파묻힌 집 근처와
그 길 끝 숲으로 가보자고 생각하며 나왔다
아무도 없는 숲길은 누군가 나타나는 순간이 가슴 철렁한 순간이어서 주위를 살피지만
적막한 공기 속 눈 밟는 내 발자국이 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게 사라진 눈의 숲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관하여는
표현하려는 글이 하도 누추하여 방법이 없다
해지면 총총 돌아오느라 바빠서 아직 실컷 보지 못한 마을의 반짝반짝한 밤 풍경을 보기 위해
오늘은 해가 지고도 어둠이 깊어져 불빛이 또렷해지는 순간까지
거리를 쏘다녔다
몇 번 다니다 보니 적응이 되어 혼자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지 않았고
이렇게 더디지만 혼자서도 용감해지는 순간이 온다
도시의 화려함과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재량껏 뽐내는 은은한 빛들, 지금의 이 빛과 적당한 소음이
더 평화롭게 느껴지는, 할슈타트에서의 세 번째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