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월 14일

꼭 29번의 잠 - 17 로마 화창한수도교+바티칸의바깥+성베드로성당의바깥

by 윤에이치제이

꼭 16번의 잠, 로마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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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의 정체가 뭐니? 점점 더 모르겠다


아침 식사 후 의무적으로 와이파이를 켰는데 나처럼 정리된 줄 알았던

너의 마음이 아직 끝을 맺지 못하고 또 쏟아진다

잠을 자지 못했어 역시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 제발 전화 좀 받아줘

그리고 정말로 전화가 울린다 내가 온라인 상태가 되는 것을 기다린 걸까

잠깐이라도 만나 줘 내가 보낸 긴 메시지를 읽지 않았어? 내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어? 그래도 나는 만났으면 해

내 생각을 알았으면 그만해 줘 올 때까지 기다릴게

가지 않을 거니까 기다리지 마 기다릴 거야

진짜 미안 난 이제 나갈 거고 기다려도 소용없을 거야

끊을게 진짜 Ciao 전화도 와이파이 연결도 모두 끊어버렸다

이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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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다짐대로 다시 수도교로 돌아왔다

비 온 뒤 파란 하늘 아래의 수도교는 더할 나위 없다

비바람에 휑했던 광활한 잔디는 어느새 사람들에게 공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수도교 공원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넓고 긴 수로의 길을 따라 어제 닿지 못한 길의 끝까지 걷는데

쨍한 햇빛과 푸른 하늘에 속아 부는 바람이 겨울을 머금고 있음을 잊고 만다

음악을 들으며 봄날의 기분을 만끽하는데 코를 점점 훌쩍거린다

가는 곳 어디마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풍경에 같이 묻는다

뛰어다니는 개들조차 신이 난 네 발로 나는 것 같다

저들의 기분도 나와 같겠지 맑은 하늘과 공기는 언제나 그래

어제는 행방불명됐던 그림자들도 오늘은 기럭지를 뽐내며 쭉쭉 기지개를 켜고

앙상한 것들조차 기개가 넘쳐 가지를 쭉 뻗어 하늘과 맞닿으려는 것 같다

그 하늘을 부유하듯 흐르는 구름처럼 나도 부유하듯 흐른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원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늘 원하는 건 날 것 그대로는 아닌 잘 다듬어진 자연이

사람의 손을 지나치게 타지 않은 채로 지켜지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곳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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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바깥


다음 목적지는 로마 도심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즉흥적으로 정했다

하루 온종일을 투자해 목에 담이 걸릴 정도로 올려다봤던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품은 바티칸으로 간다

그렇지만 저물어가는 시간에 입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바티칸 언저리를

두리번거리러 간다 짧은 시간엔 건물에 집중하지만 시간이 많을 땐

그 건물이 내는 주위의 모든 길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역시 바티칸은 자투리가 아닌 하루의 시간이 필요하다


길을 걸으면서 느꼈다 벌써 로마에 머문 지 보름이 지나가고 있고

미리 경험했던 로마의 주요한 건축물이 머릿속에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내가 걸은 길들이 그려지고 더해지면서

나만의 로마 지도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가본 길들과 익숙해진 길들은 이제 진짜 종이 지도 없이도

이미지가 저절로 목적지로 안내한다 그 길들을 따라 상상하고 움직인다


바티칸의 외곽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익숙한 공간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렇게 나만의 약도가 나의 걸음으로 새로이 새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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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성당의 바깥


바티칸의 길을 따라 걷다가 이렇게 성 베드로 성당 앞에 도착했다

밤에 들렀던 조명 아래 성 베드로 성당이 낮의 하늘 아래에서

꾸미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성 베드로 성당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만큼 언제나 방문객으로 넘쳐

이 겨울에도 입장을 위한 줄이 엄청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렇다면

난 다음 어느 날 이른 시간에 다시 오겠다고 결심한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에 내심 뿌듯해하면서


성당의 주변과 광장을 둘러보다 보니

성당의 어느 쪽 하늘의 구름이 노을빛에 물들고 있다

비 온 뒤의 맑은 저녁 하늘은 굉장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스친다

오늘의 해가 근사한 빛으로 스러지는 모습을 볼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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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성당의 곧고 긴 길을 걸어 나오니

떼베레 강 다리 위 하늘의 구름이 더 짙은 색을 입었다

내가 할 일은 이제

천사의 성까지 연결된 길을 걸으며

떼베레 강 위로 노을 지는 매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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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빛이 지고 도시의 빛이 밝았다

이제 빛들을 뚫고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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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로텐부르크 조식에 등장했던 치즈볼이 이곳에도 있어

한 묶음 사서 돌아왔다

이탈리아에서 잠시 독일을 그리워한다


돌아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라며 다른 날과 달리

조심스럽게 와이파이를 켠다

떠나기 전에 인사는 해줘

더 이상의 메시지는 없다 한 줄로 수긍이 될 것 같은

글 너머의 표정과 마음.. 차라리 이 편이 좋다

너무 많은 얘기들은 중요한 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놓치게 한다

그저 하나의 단어나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지만 진짜가 상대에게 닿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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