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화려한 벚나무 옆 눈에 띄지 않는 나무 같았다.

Episode 16. 거참. 내 취향, 대쪽 같네.

by Jin

출근하는 토요일.

그는 내가 도착하자. 작업할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며 자리로 안내했다.


“여기 앉으시면 돼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입구를 바라볼 수 있는 책상 근처의 자리. ‘입.. 입구랑 너무 가까운데? ’라고 그땐,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자리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미어캣처럼 누가 드나드는지 다 확인이 가능한 자리. 그의 말투는 친절하지도, 무뚝뚝하지도 않았다. 따뜻하다고 하기엔 다소 거리감이 있었고, 사무적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드러웠다. 그 애매한 온도 속에서, 나는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너를 회사에서 처음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작업은 저희 프로그램 구성에 맞춘 기본 틀을 드릴꺼에요. 기본 포맷 구성만 맞춰주시면 어떤 방식으로 작업 하셔도 무관합니다."


그는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아.. 그럼 메인 컬러나,

서브 컬러가 정해진게 없나요?"


"그렇습니다. 컬러도, 텍스트도

전부 디자이너님께서 정하시면 됩니다."


회사에서 맡게 될 작업과 구체적인 일정들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고, 그 회사에는 정식 디자이너가 없었기에 그는 나를 디자이너님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디... 디자이너요?

그냥 편하게 불러주시면 안되나요!!”


디자이너님이라는 호칭에 멈칫하며 나는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나에게도 진지한 얼굴로 ‘님’자를 꼬박꼬박 붙여 불렀고 함께 일하게 된 팀 사람들에게도 처음엔 그렇게 소개했다. 이후 팀 모두와 편해지면서 점점 디자이너님이라는 호칭은 사라지고, 이서동생 등으로 바뀌었지만, 그는 우리가 연인이 되기 전까지 나를 디자이너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왜 굳이 ‘님’까지 붙여가며 날 불렀을까.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이서동생이라고 불러도 되었을텐데.


그러고 보니, 나는 그에게는 ‘씨’라고 불렀다. 프로젝트 팀 내에서 나와 직접적으로 일적으로 얽힌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 몇몇에게는 ‘오라버님, 이 정도 작업이면 되겠습니까?’ 혹은 ‘팀장님, 시간 좀 더 주세요’ 같은 호칭을 붙였는데, 유독 그에게는 처음부터 ‘도윤 씨’라고 불렀다. ‘도윤 씨, 이건 안 되는 거예요.’ , '도윤씨, 이거 맞아요?' 하고. 담당자님이라고 했어도 되었을 텐데.


무의식 중에, 네가 불러주던 나의 이름. ‘이서 씨’를 그에게 덧씌운 채, 나도 모르게 그를 ‘도윤 씨’라 부르고 있었다. ‘씨’는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며, 그는 지금도 그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좀 더 가깝고 따뜻한 말로 불러달라고. 그는 모르겠지만, 내게 ‘도윤 씨’는 거리감이 아니라, 그때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친밀감이었다. 네가 내게 다정하게, 조용하게 불러주던 호칭. 그래서 내가 마음을 주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면, 그렇게 불러주고 싶었던, 애정 어린 단어.를 나도 모르게 쓰고 있었다.


Photo by Jin



옆에서 지켜본 그는 나무 같았다. 벚꽃처럼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 옆에 조용히 뿌리내리고 선, 평범한 나무.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고, 가을이 와도 단풍이 붉게 물들지 않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그런 나무.


그래서였을까. 일주일에 한 번, 마주하는 그가 이상하게 신경 쓰였고, 자꾸 눈길이 갔다. 나에게 주로 회사 일을 전하는 건 그였고, 함께 의논하며 진행해야 하는 일도 그와의 몫이었다. 낮은 저음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그래, 목소리는 조금 내 취향. 인정. 하지만, 얼굴은 아닌데. 나는 그에게서 어떤 것을 발견 했던 것일까.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가 너 외에 이렇게 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다가와도, 내 안의 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궁금해서 먼저 문을 빼꼼히 열고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굳이 문을 열지 않더라도 담벼락 밑 장독대를 밟고 올라서 눈만 내어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예의주시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회사를 나가는 내가 그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일주일동안 밀린 일 처리하기도 바빴다. 하지만 인간이란게 또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광기가 있지. 하하하. 틈틈히 몰래 훔쳐 본 그는 너와 닮지 않았고, 또 닮았었다.


너는 책, 음악, 그림을 좋아했고 확고한 너의 취향이 있었만, 그는 책을 읽어도 일이 잘 안 풀릴 때 읽는 전공 서적뿐이었고, 그마저도 썩 좋아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자기 책상에 쌓여 있는 책 못 봤냐며, 나의 기억을 수정해 주었다. 썩. 책을 좋아하진 않았던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니 믿어주기로. 그는 너처럼 그림에 조예도 없었고, 음악도, 사람도, 옷도 뚜렷한 취향이 없었다. 그러니 파란 스머프 같은 옷을 입고 다니지. 담배를 피웠고, 술도 좋아했다. 말할 때는 눈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았다. 너와 가장 달랐던 건, 그는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많고 많은 다른 점들 사이에서, 이상하게도 그는 내가 가장 닮고 싶어 했던 너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 불필요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태도. 나를 대하는 그의 방식은 조용했고, 그 안엔 눈에 띄지 않는 배려가 담겨 있었다. 감정의 파도처럼 몰아치는 사람보다, 그 중심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에게 나는 더 쉽게 마음이 끌린다는 걸. 너와 그를 나란히 떠올려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왜일까. 나는 왜 이런 부류에게 마음이 기울어지는 걸까.


거참. 내 취향, 대쪽 같네.


그래서 이런 나 자신에게 짜증이 조금 났던 것도 같았다. ‘이런 사람한테 마음이 간다고? 하... 그냥 죽어라, 강이서.’ 그땐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속절없이 빠지지 않았다. 내 마음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버려서. 나 스스로가 버거웠다.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받을 만한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줄 수 없다면, 상대방에게도 원하면 안되는 게 맞다. 굳이 연인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가 가장 좋았다.


비율로 치자면, 딱 50:50. 49:51이어도 싫었다. 사소한 마음의 기울기라 해도, 관계에서는 그 차이가 너무 컸다. 단 1g이라도 더 무거운 쪽이 약자가 된다. 나는 한쪽으로 쏠리는 그런 관계가 지긋지긋했다. 내가 더 쏠리는 관계도 싫었고, 나에게 쏠리는 관계도 싫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give and take, 딱 절반씩 나눌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건, 그의 일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고, 언제나 적당한 선을 지켰다.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거리, 불필요한 감정 소비 없이 일의 처리가 매끄러웠다.


그에게 마음이 자꾸 기운다. 나무를 있는 힘껏 흔든다고 흔들리겠냐만은, 퐁당퐁당 바다에 돌 몇개 던진다고 티라도 날까 싶냐만. 그의 얼굴에서 나로 하여금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단단하게 자리잡은 차분함을 흔들고 싶었다. 나는 너를 한번도 흔들고 싶지 않았는데. 그는 자꾸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도통 화내는 법이 없었고,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받아내는 모습에 나를 더 심술나게 만들었다. 몇 번이고 수위를 높여 보았지만 그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호함에 괜한 오기가 생겼다. 나를 받아주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주는 건지. 그도 나에게 마음이 기울고 있는지 궁금했다.




Every good relationship is

about give and take


좋은 관계는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