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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Apr 30. 2021

산행을 떠나는 순간

산행에서 대중교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

이 글은 타인에게 강요하기 위해 쓰는 것은 아니며, 설득을 목적으로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내가 추구하는 산행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쓰는 것이다. 나만의 산행에 대한 형식과 방법과 마음가짐 등을 문자로 남기고 푼 작은 욕망의 발현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이 글은 타인을 의식하고 쓰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둔다.      


산행은 산으로 가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산과 여행이 결합된 뜻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것을 등식으로 만들자면 [산 + 여행 = 산행]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산의 개념은 산이란 대자연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등산과 트레킹과 그 둘을 겸비한 백베킹 등 아웃도어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여행은 산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산에서 격렬하게 봉우리에 오르는 마운티어링과 고갯길이나 임도를 걷는 행위와 그 외에 산에서 이루어지는 트레킹의 포퍼먼스도 산행의 일종이며, 그리고 그 산에 들어가는 과정 또한 산행의 일부이다. 물론 계곡으로 피서를 가는 행위는 산행이라고 할 수 없다.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산행은 시작되고, 산행 후 다시 집으로 가는 여정도 산행이라는 것이다. 가령 제주도로 여행을 갈 때, 집에서 나오는 순간의 들뜬 기분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할 때의 진한 여운도 여행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그러니까 산행 후 뒤풀이로 막걸리 한잔 하면서 그날 산행을 복기하는 것도 산행에서 간과할 수 없는 행위이다. 물론 단독일 때도 이동하는 시골 버스 안에서 조용히 하루를 반추해 보는 것도 산행의 중요한 일부이다.


위 등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가용을 배제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당위성을 수용해야 하며, 그 등식에서 대중교통은 상수로서 일종의 공리적 성격으로 규정해야 한다. 일반적인 아웃도어와는 달리 산행에서는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며 따라서 대중교통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여행을 대중교통으로 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지만, 산이라는 대자연과 함께한다는 의미로 볼 때 적당한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고, 그것은 변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가용이나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안락한 여행은 산행이라는 옷에 맞지 않으며 반쪽자리 산행에 불과하다. 골프복을 입고 등산하는 꼴이라는 거다. MTB는 MTB 대로, 등반은 등반 대로, 백팩킹은 백팩킹 대로 지켜야 할 기본적인 형식과 루틴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가 있듯이 산행에도 당연히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그 가치를 행동화하는 것 중에 하나가 대중교통이며 산행의 스킬을 향상시키는 재료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행은 순례적 성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육체적 노고와 절제된 욕망과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때론 형식이 내용을 규정할 때도 있다. 대중교통을 빼놓고 산행을 논할 수 없으며, 값을 얻을 수 없다.       

마운티어링이 주목적이라면, 물리적 에너지 소비가 많기 때문에 여행의 정취를 느낄 여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이동 수단에 대한 개념을 바라는 것 또한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과거 나의 등반 경험에 비추어보더라도, 어떠한 교통을 이용할 경우 그 안에서 무조건 잠을 잤던 기억밖에 없다. 어느 도시나 시골 풍경이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을 시정하려고 노력했으나 천근만근인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마운티어링은 상대적으로 여행의 중요성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방 산행을 할 때 대중교통은 이용하지만 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시간에 대한 관념은 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산행처럼 대중교통의 이동 시간을 고정시키지 않고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등반이 오후 일찍 끝나더라도 버스를 타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물론 현재의 정보통신에 비하면 당시는 석기시대 수준이긴 했다. 아무튼 당연히 집에 도착하면 항상 자정이 넘었다. 당일 등반이든, 무박 2일이든, 1박 3일이든, 그날 집에 들어간 적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잠깐 택시에 대해서 얘기하고 가겠다. 예전과 달리 대한민국의 도로망이 세계적 수준이어서 첩첩산중에도 차도가 발달되어 있고, 국가적 차원에서 택시도 공공성을 확보하여 어디에서든 콜을 하면 들어간다. 좀 비싸지만 경제 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편리함을 거부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택시를 피한다. 택시를 타면 몸도 편하고 이동 시간도 단축되어 보다 안락한 산행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런 귀족 산행은 내가 추구하는 산행 정신과는 동떨어지는 행위이다. 편함을 위해 택시를 원한다면 그것은 산행이 아니라 관광이 되고 만다. 현재 나는 귀족 산행이나 관광을 하지는 게 아니다. 또한 택시 안에서 보이는 세상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협소하고, 관점의 간격 폭도 크고, 단순하고, 하차하면 무언가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일동의 화대임도나 도마치 고개처럼 아예 버스가 닿지 않거나, 야시대리나 월명리처럼 읍내 버스가 하루에 2~3번 들어가거나,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에만 택시를 이용한다. 택시는 마지막 이동 수단이 될 때 비로써 대중교통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조금만 노력하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 되는 데도 굳이 택시를 이용한다면 그것은 산행의 정결성을 오염시키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산행에서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이다.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지방 산행을 갈 경우, 집을 나가는 순간부터 짜여진 시간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대중교통 차량을 몇 번씩 갈아 탈 경우는 치밀하게 설계를 해야 한다. 요즘은 정보통신망이 잘 되어 있어서 대중교통 시간과 트레킹 이동 시간 등의 정보를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으며, GPS를 적절히 활용하면 보다 흥미진진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중교통 시간을 상수로 놓을 것인지, 트레킹을 상수로 놓을 것인지 아니면 그 둘의 시간을 적절히 변수로 놓을 것인지 등을 잘 짜깁기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나의 훌륭한 시나리오를 탈고하면 산행의 반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로드맵이 산행 현장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 어려운 퍼즐을 맞추듯 묘한 희열을 느낀다. 힘든 등반을 마치고 커피 한잔을 할 때처럼 확실한 각성 효과가 나타난다. 고민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있기 마련이다. 시간만 잘 맞으면 대중교통처럼 편리하고 저렴한 교통수단은 없다.     


물론 모든 산행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치밀하게 로드맵을 짜는 것은 아니다. 대중교통 시간을 고민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트레킹 코스는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가령 경춘선이나 중앙선(용문) 전철역에 내려 바로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있다. 그리고 중앙선(열차) 역 중에 양동역이나 삼산역 부근에도 임도가 발달되어 있어서 연계 교통 없이도 손쉽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물론 버스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트레킹 장소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말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다 보면 녹녹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최소한 한두 번은 갈아타야 하고 많게는 서너 번을 갈아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 과정에서 기다림이 연속된다. 그렇게 많이 갈아타다 보면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메인 게임을 하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느림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 나와 함께 다닌 지인들은 이런 이동에 적응을 못하고 긴 한숨을 내쉬곤 했었다. 흔히 말하는 진이 빠진다고 한다. 사실 집에서 나와 세 시간 이상 대중교통으로 갈아타며 이동하는 것은, 특히 당일 산행에서는 결코 달갑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느려 터진 여정도 산행의 중요한 일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산행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순례적 성격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그 느림의 고통을 마음으로 받아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그만큼 돌발 변수가 발행할 확률도 높아진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생각지도 않은 상황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지난겨울 새덕산 임도 트레킹을 갈 때, 갑자기 내린 아침 눈으로 인해 당초 일정의 앞뒤가 바뀌어 힘든 산행을 해야만 했었는데, 얼마 전 갯골령 산행에서도 홍천 버스터미널에서 인제 읍내로 가는 읍내 버스 운행 시간을 잘못 계산하여 혼쭐이 났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초행길일 때 종종 일어난다. 몇 달 전에도 버스를 놓쳐 난감한 적이 있었다. 연천 쪽 고대산 임도에 가는 일정이었는데, 들머리인 문목동까지 가는 대중교통 시간을 퍼즐 맞추듯이 정확하게 맞추어야 당도할 수 있었다. 그날은 처음부터 치명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잠실에서 오전 7시 50분경에 도착하는 전곡행 광역버스를 타야 했는데, 잠실이라는 곳에 버스정류장이 얼마나 많이 분포되어 있는지를 간과한 결과, 내가 타고 온 정류장과 갈아타야 할 정류장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잘못 계산하여 그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 버스는 2시간 후에나 온다. 하여 도봉산역광역버스터미널에서 전곡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 산행 도반에게 긴급하게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일정을 변경하기로 합의를 본 나는 택시를 타고 도봉산역으로 갔다. 그리고 도봉산역에서 합류한 우리는 가장 먼저 오는 소요산행 전철을 타고 동두천역으로 갔다. 도봉산역에서 출발하는 광역버스가 있었지만, 그 버스는 운행 시간이 길어 전곡에서 내산리 가는 9시 40분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두천역에서 전곡 가는 버스가 10여분 마다 있었지만, 그 버스를 타고 전곡에 가더라도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9시 40분은 절댓값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두천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집어타고 전곡역으로 갔고, 드디어 내산리행 버스를 겨우 탈 수 있었다. 정말 지난한 이동이었다. 결국은 9시 40분 내산리행 버스를 타기 위해 이 난리를 피워야만 했던 것이다. 택시비만 얼마인가. 만약 내산리행 버스도 놓쳤다면 또 택시를 타고 문목동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꼭 그렇게 까지 해서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을 해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행위에 대한 마지막 경계선은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는 시간적 상황이 된다면 타협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위의 상황은 자신의 실수였지만 타의에 의해서 산행 일정 전체가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 날이 그랬다. 정말 황당한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날은 춘천 오월리 삿갓봉 산행이었다. 춘천역에서 내린 우리는 소양로 춘천농협 앞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서 오월리행 버스를 기다렸다. 모든 게 평화로웠고 순조로웠다. 그런데, 8시 50분경에 올 버스가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요즘은 외진 곳이라고 해도 운행 시간이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더구나 기점이 바로 두 정거장 뒤였다. 하지만 오월리행 버스는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하여 같은 회사에서 운행하는 봄봄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했을 때, 그 운전기사한테 오월리행 버스에 대해 물었으나 모른다는 대답만 얻었다. 시간은 10여분이 더 지나고 30분이 넘었다. 버스회사에 전화를 수없이 했으나 토요일이어서 인지 계속 받지 않았다. 점점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40분이 지나고 50분이 지났다. 답답했다. 머릿속에는 차선의 코스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역시 같은 회사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했다. 우리는 그 운전기사한테 짜증스러운 투로 오월리행 버스의 종적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그 기사분 왈, “아 그 버스가 오늘 오전에 정기검사예요. 오후에 운행될 거 같은데... 마을 이장한테는 연착한다구 연락했을 거예요...” 아 정말 말문이 막혔다. 우리는 원치 않았지만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짰다. 그리하여 서상리 종점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바로 앞 시간에 있다는 것을 검색한 후 일정을 대폭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오월리행을 못하게 된 데에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서상리 임도도 오래전부터 산행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불만은 최소화되었다. 오히려 산행 후 서상리에서 나올 때 우리는 오늘 산행의 품평회에서 별 4개 정도는 주어도 무방하다는 데 합의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봉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 주변 산행 정보를 어느 정도 습득해 놓으면 차선을 강구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코스가 바뀌고 상황이 꼬이더라도 그에 대처하여 실행에 옮기다 보면 그것 또한 훌륭한 산행이 되고 산행 장부에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산행을 강행하다 보면 몸과 마음에 타격을 받을 수 있으니 욕망을 자제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심신이 피폐해지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최소한의 즐길 수 있는 체력을 남겨놓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고행은 고행일뿐 정신적 고양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산행의 궁극적인 최종지는 자신만의 도솔천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에 관한 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설파하곤 했다. 산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대중교통은 천연 조미료이다. 음식의 맛을 향상시키는 조미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 과정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풍경은 여행의 풍미를 향상시킨다. 한적한 산골을 달리는 텅 빈 읍내버스 안에서 보이는 풍경과 그리고 소리와 냄새, 그 모든 낯선 감각들을 거부하지 않는 때 어떤 중독성이 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 그 맛에 중독되는 것 또한 나는 거부하지 않는다.


또한, 등산복 차림이니  낯선 풍경 속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눈에 잘 띠지만 나는 가능하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그 세계에서 투명인간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객으로, 그 풍경 속에서 흔적도 없이 지나간 존재로 말이다. 그 풍경 속의 수많은 사람들에겐 나란 존재는 전혀 기억에 없는 그저 바람에 불과하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오늘도 항상 몸을 낮추고 낯선 그 풍경 속을 지나가는 나를 상상한다. 그리고 겸손하게 한발 한발 걸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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