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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Sep 09. 2020

길을 걷는 순례자

화악산 집달리 임도

지구 상에는 수많은 성지가 있다. 흔히 3대 종교라고 일컫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의 성지가 지구 곳곳에 있으며 그곳으로 수많은 신자들이 순례를 한다. 대표적인 성지순례를 보면 기독교의 예루살렘과 로마 교황청, 이슬람의 메카와 메디나, 불교의 룸비니와 쿠시나가 등이 있다. 물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성지가 많이 있으며, 대한민국에도 천주교 16개 교구에서 공인한 성지를 모으면 400개가 넘는다.           


그런 성지순례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곳이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중세 때 정치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그 순례길은 이제 종교적인 목적보다 비종교인의 개인적 성찰을 위한 목적으로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에서 시작해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장장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걷는 것이 순례의 퍼포만스이다. 물론 한 번에 한 달 동안 숙박을 하며 계속 걷는 코스도 있고, 며칠 만 걷는 단기 코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완주하는 것을 꿈꾼다.           


가톨릭 신자들이야 야고보의 발자취를 따라 그 먼 길을 걷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세속인은 무엇 때문에 그 고단한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아웃도어나 레저스포츠로서 목적이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형태의 어떤 자기만의 성취욕을 위해 걷는 경우도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게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 각성이나 성찰, 즉 나를 찾아 걷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페인 특유의 뜨거운 태양과 함께 끝없이 이어진 구릉진 길을 걷는 고된 행위에서 그들은  바로 자신만의 내적 세계가 강고해지기를 원한다. 결코 편할 수 없는 그 행위는 철학적 사유를 배제한, 자아가 만든 어떤 종교적 제의 행위인지 모른다. 어떤 화두를 찾기 위해 그들은 걷고 또 걷는다.         


설악산에 가면 봉정암이라는 곳이 있다. 아마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나 시간으로 볼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 절집이다. 해발 450미터 백담사에서 시작해 계곡을 따라 12킬로미터 가까이 걸어가면 해발 1200미터에 있는 봉정암에 다다를 수 있다. 때론 언덕배기를 넘어야 하고 너덜과 바위 길을 꼬불꼬불 돌아야 하고 표고 차 850미터를 극복해야 하는, 그냥 편안한 흙길을 걷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는 평지보다 곱은 많이 소비된다. 그 험난한 길을 걸어 봉정암에 이르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먼 길을 불심 하나로 가는 사람들이 상상 외로 많다. 심지어 등산이라곤 평생 동안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은 노인들도 그 험한 산길을 걸어서 해발 1200미터의 봉정암에 오른다.          


그 노역은 고행을 동반한 순례의 일종은 아닐까. 부처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몸을 적당한 고행에 맡겨야 하며 그럼으로써 세속에 찌든 심신이 환기되고 번뇌 또한 중화시킬 수 있다. 그런 일련의 선 수행을 거쳐 부처를 만나면 불심은 더욱 충만할지 모른다.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종의 준비 단계라는 뜻이다. 절집이 그래서 산속에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것 때문은 아닐까.          


아무튼, 집달리 임도에 가기 위해서는 춘천에서 하루에 일곱번 들어가는 농촌형 버스를 타야 한다. 가평과 춘천에 있는 산의 특징은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버스의 배차 간격이 크지만 시간만 잘 맞추면 매우 손쉽게 들머리까지 갈 수 있다.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도 그렇고 용화산 삼악산 봉화산도 그렇고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집달리 임도의 들머리와 날머리도 그러하다. 사실 산행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포장도로를 따라 버스정류장까지 나가는 것은 고역 중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여름에는 정말 사막을 걷는 것처럼 고행하는 심정으로 걸어야 한다.     

2020년 7월 12일 / 집달리 임도

우리는 버스종점에서 내려 곧바로 계곡을 사이에 두고 이상원 미술관과 접해 있는 임도로 접어들었다. 이 종점에서 왔던 길로 고갯마루까지 걸어서 30분 더 가면, 얼마 전에 쓴 ‘멀고 먼 기억을 찾아서’의 들머리이고, 그 고개를 넘어가면 가축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던 홍적리 버스 종점이 나온다. 평일이면 자동차가 몇 대 다닐지 모를 이 한적한 산골 계곡에 이런 대형 미술관을 지은 것을 보면 새삼 인간의 욕망은 참 다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역과 자연의 영역을 구분할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인간의 욕망은 자연의 욕망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파괴는 파괴를 자처한다는 것을 현재 지구는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집달리 임도는 화악산의 촉대봉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등성이 기슭을 따라 말발굽 편자처럼 둥글게 돌아서 나오는 코스다. 다른 임도와 달리 산등성이를 따라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없이 깔끔하게 끝나지만 해발 900미터까지 올라야 하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기회는 없다. 경기도에 있는 임도 중에 이 보다 높은 임도는 없을 것이다.            


처음엔 계곡도 있고, 그 물소리도 들을 수 있고, 태양도 피할 수 있지만, 한 시간 정도 오르면 계곡도 사라지고 물소리도 사라지고 그늘도 종적을 감춘다. 경사 각도는 다소 낮아졌지만 그 평균치는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임도 정상에 도착하려면 1시간 이상 이 각도를 따라 갈 지자로 굽이진 길을 등속도로 더 가야 한다.      


길이 산허리를 돌면서 조망이 되기 시작한다. 하늘은 코발트 색이었고, 뜨거운 태양이 집요하게 나를 쫒고 있었다. 그 태양을 피할 곳이 없었다. 돋보기로 빛을 모아 먹종이를 태우듯 태양은 나를 타깃으로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었다. 아마도 이 단백질 덩어리는 초콜릿처럼 녹아 뜨거운 길바닥으로 질질 흘러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2020년 7월 12일

그렇게 태양과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문득 기억의 저편에서 또 하나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오래전이었다. 그날도 8월 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오대산 진고개 산장에서 출발할 때는 이미 내 몸은 더위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진고개에서 노인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전반적으로 경사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키 작은 잡목들로 인해 그늘이 형성되지 않아 태양을 피할 곳이 없었다. 그 많던 바람도 불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고스란히 머리에 이고 1시간 30분 이상 올라야 했다.           


흙길은 메말라 한걸음 옮길 때마다 흙먼지를 푹푹 일으켰고, 풀과 나뭇잎도 말라비틀어져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무엇보다 뜨거운 열기가 그것들과 함께 지친 내 몸을 오븐처럼 달구고 있었다. 얼굴에서 비 오듯이 쏟아지던 그 많던 땀도 말라 이젠 몸 어디에서도 흐르지 않았다. 지친 숨소리가 뜨거운 열기 속으로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내려다보이는 등산화는 체념한 듯 한발 한발 메마른 땅을 무심하게, 본능적으로 내딛고 있었다. 사실 이 공간을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걷는 것이었다. 단순했다.      


등산처럼 주변 상황들이 수시로 변하면서 심신의 피로도도 각성되고, 그럼으로써 없던 힘도 발산되기 마련이지만 이 길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한 무한 반복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과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과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걸음은 사막의 수도승들이 광야를 걷듯 어떤 고행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사실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이 지루한 행위를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정신적 고양이라도 없다면 이런 행위는 정말 무의미한 노동에 불과할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오르다 보면 해발 800미터 정상 안부에 당도한다. 촉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수직으로 접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똑같은 오르막길을 똑같은 걸음으로 30분 정도 더 가다 보면 그제야 그 지겨운 오르막과 작별한다. 해발 900미터, 임도의 마루금이다. 여기서 등산로를 따라 해발 250미터의 급경사를 타고 오르면 촉대봉 정상이 나온다. 몇 년 전 이 능선을 거쳐 집달리 휴양림으로 하산하던 내 모습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당시 이곳에서 쉬며 저 임도로 내려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궁금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올라온 길을 보면서 말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그 기억의 여운을 가지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낮의 태양은 식을 줄 모르고 마치 태양풍이 대기를 뚫고 쏟아지듯 뜨거운 열기를 계속 뿜어대고 있었다.     


길은 완만하게 능선부 골을 따라 굽이쳐 이어진다. 그 굴곡이 크게 한번 휘감아 돌면 파란 하늘 위로 먹구름 같은 화악산 응봉의 선명한 실루엣이 나타난다. 위대한 응봉은 하늘을 가득 메우고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위용 앞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경배를 한다. 이 산의 주인이신 화악이시여 당신의 품에 안기는 저를 굽어 살피시어 저의 길을 인도하소서...

2020년 7월 12일 / 화악산 응봉

하지만 응봉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지루한 숲길이 이어진다. 이 거대한 산에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나는 개미처럼 어디론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회전목마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시야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무거워지는 두 다리는 어떤 의미를 상실한 채 진자운동을 하고 그리고 의식은 저 태양에 의해 부서지는 공기처럼 그저 이 산 어디론가 흩날린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숲은 아름답지도 않고 평온하지도 않다. 코끝을 잠시 스치던 풀냄새도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아마도 나는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이 화악산 능선과 골 어디에서 맴도는, 그저 떡갈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이 된 것을 아닐까. 그래, 연인산 능선에서 바람이 된 나의 입자들이 이 산 골 어디에선가 작은 미풍을 일으키고 있을지 모른다.      


집달리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을 뒤로하고 나는 풀숲이 우거진 북쪽 길로 발길을 돌린다. 태양의 기세는 줄었지만 여전히 열기는 식지 않았다. 숲길은 고도를 낮추기 위해 대회전을 한다. 길은 산허리를 따라 어디론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마도 나는 이 미로에서 빠져나가지 못할지 모른다. 출구가 없는 것도 모르고 미련하게 이 미로에서 생쥐처럼 본능적으로 기어 다니고 있을 뿐이다. 미로는 두 다리의 끝임없는 움직임을 원하고, 지쳐가는 나의 숨소리를 탐닉한다. 출구는 가도 가도 보이지 않았다.     

2020년 7월 12일

하지만 나는 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나는 산 아래 버스정류장에 있을 것이란 것을...      


지암리 버스정류장에서 근처 계곡에 피서 온 학생 무리를 비집고 버스를 탄 나는 기사 좌석 바로 뒤에 앉았다. 잠시 후 미니 버스 안에는 열 명 남짓한 남자 고등학생들로 만원이 되었다. 아침 녘 춘천에서 올 때 같이 탔던 녀석들이 설마 했는데 오후에도 같이 합승을 한 것이다. 버스 바닥에 주저 않아 알코올 냄새 풍겨대는 녀석들의 걸쭉한 입담을 애써 외면하며 나는 차창 밖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하루 종일 나를 쫓아다녔던 태양이 청명한 하늘에서 화려하게 부서지며 차창을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오늘도 욕봤다.      


“자신을 속이는 그대의 손을 거두게! 성전의 길은 몇몇 선택된 자들의 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길이네! 그대가 지니고 있다고 믿는 힘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야.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지! 그대는 검을 물리쳐야 했네, 그렇다면 검은 그대에게 전해졌을 것이야. 그대의 순결한 마음에 말일세. 하지만 내가 염려했던 대로, 지고의 순간에 그대는 미끄러져 추락하고 말았네. 탐욕으로 인해, 그대는 또다시 자신의 검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할 것이야. 오만으로 인해, 그대는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검을 찾아야 하네. 비범한 것에 대한 미혹으로 인해, 그대에게 이미 풍성히 주어졌던 것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투쟁해야 할 것이야.”

- 파울로 코엘로 저 ‘순례자’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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