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블로거가 탄생시킨 오베라는 이 '남자'에 대하여
최민우 역/다산책방/
2015.5.20./13,800원/
프레드릭 베크만
프레드릭 베크만은 스웨덴의 30대 중반 남자이다.
이 작품은 그의 첫번째 소설인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랭킹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원래 전문 작가가 아니라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였다고 한다.
블로그에 올리던 글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결과 소설로 탄생한 것이 바로 [오베라는 남자]란다.
“이 책 읽어볼래?”
직장 생활로 바쁜 누나가 오랜만에 내게 권한 책이다.
제목은 ‘오베라는 남자’.
오베라는 남자가 뭐하는 남자지?
누나가 권했으니 내가 좋아하는 스릴러나 공포 소설류는 아닐 것이다.
뭐,,, 어쨌든 한번 읽어보자.
도대체 무슨 책일까…..
<<<스포일러 포함>>>
이제부터 ‘오베라는 남자’의 간단한 내용을 서술해보겠다.
결말까지 써볼 생각이니 책 내용을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아래 내용을 읽지 않으시길 바란다.
배경은 스웨덴.
주인공은 '오베'(사람 이름)이다.
이 소설은 서사적 성격을 갖는다기보다는 옴니버스 형식과 비슷하다.
오베라는 남자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 소설의 근본이 되는 것이 블로그라더니,,,,
블로그에 한편 한편 올렸던 에피소드들이 묶여 소설로 탄생한 것 같다.
(혹시 내 브런치도????,,,,,ㅎㅎㅎ)
우선 '오베'라는 남자에 대해 알아보자.
오베…
50대 후반의 혼자 사는 남자....
그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직선적이고, 융통성이 없다.
자신이 할 줄 아는 것과 못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못하는 것은 거들떠도 안보는 인물이다.
사랑은 오직 한 명, 첫사랑이자 부인이 된 소냐 뿐이다.
오베는 모든 세상과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하지만 오직 한 명,,, 소냐에게만은 온통 긍정 뿐이다.
오베는 힘이 세고 남성적이다.
그는 낯선 사람 대부분에게 적대적이고 의심에 찬 눈초리를 보낸다.
퉁명스럽고 깐깐하고 꼰대 같고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매장에 가면 어김없이 점원과 싸우며 언성을 높인다.
매장 점원이 자신에게 과한 요금을 부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베는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마을을 순찰한다.
마을이 그의 기준에서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베는 평생 ‘사브’라는 차만 몰았다.
그리고 다른 브랜드의 차를 모는 사람을 혐오한다.
차가 주인의 인격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베는 지나가는 고양이와도 눈싸움을 한다.
(꼬장함의 극치인 듯...)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무뚝뚝함과 퉁명스러움과 과격함과 거침의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자리잡은 캐릭터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오베는 현대 사람들과는 반대의 성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현대 사람들은 겉으로는 친한 척, 친절한 척, 착한 척, 밝은 척, 남을 위하는 척,,,,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기적이고 남을 이용하려 들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고,
사회가 만든 규칙을 제멋대로 어긴다.
오베는 이런 현대 사람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훌륭한 캐릭터이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소설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소설은 오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오베가 컴퓨터를 사러 간 이야기.
오베가 아침에 산책을 하는 이야기.
오베의 옆집에 이사온 가족에 대한 이야기.
오베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오베와 소냐의 이야기.
오베의 과거 이야기.
오베의 아버지 이야기.
오베와 이웃사람들 이야기…. 등등…
후;;;;
오베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했으니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말해보자.
먼저… 소냐….
오베가 유일하게 사랑을 준 캐릭터다.
젊은 시절 만나서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소냐는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고,,,,
오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오베의 견해가 엄청 반영된 듯 소냐를 묘사할 때 만큼은 항상 긍정적인 표현 뿐이다.
소냐보다 더 중요한 캐릭터는 오베의 옆집에 이사 온 임신 말기의 파르베네이다.
파르베네는 딸 두 명이 있고, 그의 남편은 키다리로 착하지만 어벙한 캐릭터다.
그녀는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는 딱딱하고 퉁명스런 오베가 만드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오베를 세상에 끌고 나오는 핵심 캐릭터다.
푼수 같기도 하고 오지랖도 넓은 편이고 좀 염치 없기도 하지만 사랑스러운 여자 캐릭터가 바로 파르베네이다.
이 소설의 최대 장점은 위와 같은 캐릭터들을 잘 묘사해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생동감 있다.
특히 위에서 말한 파르베네 캐릭터는 오베에 이어서 매우 성공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자,,,, 그럼 이제 오베가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오베는 소냐가 죽고 나자,,,,,
거대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오베는 꽉 막힌 사람으로 그에게 세상은 오직 소냐 뿐이었다.
그래서 소냐가 죽고,,,
며칠 후 직장에서도 퇴직을 당하자 커다랗고 황량한 집에 홀로 남은 늙은이가 되어버린다.
(사실 오베는 그리 늙지도 않았다,,,기껏해야 오십대 후반???할아버지라고 불리기도 애매한 나이다.)
그때 오베의 옆집에 왈가닥, 시끄럽게 이사 온 가족이 있다.
바로 파르베네 가족이다.
아내 파르베네, 남편 패트릭, 7살 큰 딸(이름을 찾으려고 다시 책을 훑어봤는데 결국 모르겠다..;;;), 3살 작은 딸 나사닌, 그리고 임신 중인 셋째이다.
그 밖에 몇몇 캐릭터가 더 등장하는데 크게 중요하진 않다.
소설의 핵심 캐릭터는 오베, 소냐,파르베네라고 보면 된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고양이가 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집 없는 고양이,,,,,,,
오베는 그 고양이를 싫어하면서도 동정심 때문인지 외로움 때문인지 자신의 집에 데려와 키운다.
어리고 귀여울 땐 집에서 키우다가 나이 들고 병 들면 동물들을 내다버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이다.
오베, 소냐, 파르베네, 그리고 고양이….
이들이 이 소설의 핵심 캐릭터다.
이제 사건으로 들어가자…
오베는 무엇을 하려 했을까?
끔찍하게도,,,
그는 자살을 하려 한다.
소냐가 죽고나자 자신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집에서 깔끔하게 죽으려 하는데 시도때도 없이 옆집 파르베네가 찾아온다.
주차를 도와달라.
운전을 가르쳐달라.
배가 아픈데(출산 임박~!~!) 병원에 좀 데려다 달라.
사다리를 빌려달라.
등등…;;;;;;
웃기게도 오베는 그녀가 부탁할 때마다 화를 내고 퉁명스럽게 대하면서 결국은 그녀의 요청대로 움직이고 만다..;;;
결국 오베는 자신의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가 무심코 했던 일들은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어 돌아간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왔을 무렵,,,
오베는 계획대로 세상을 떠나고,,, 소설은 막을 내린다.
소설이 무섭도록 흡입력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베라는 캐릭터가 현대인의 속성을 반대로 묘사하여 그를 보는 것이 통쾌하며 재미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처음에 오베라는 캐릭터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졌었다.
너무 막돼먹은 캐릭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짜증이 나서 독서를 포기하려고도 몇 번 생각했었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그런 생각이 많이 희석됐지만 그래도 오베를 ‘긍정적’인 캐릭터로 평가하진 않는다.
오베라는 캐릭터를 비판해보도록 하자.
먼저 오베의 사랑…
앞에서 말했지만 오베는 모든 인물에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다.
하지만 오직 소냐 한 명만은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모든 인물은 부정적이고,,, 소냐 한 명만 긍정적이라는 생각..
이것은 지극히 유치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이다.”
‘사랑의 기술’을 읽기 전에도 오베의 사랑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후에 ‘사랑의 기술’에서 명확한 표현이 있어 그대로 옮겨와 봤다.
내 주변에서 일로 예를 들면,,,
지금은 6살인 남자 조카가 4살 때 했던 말이 있다.
“난 엄마만 좋아. 다른 사람은 다 싫어. 다 미워. 오직 엄마만 좋아.”
내가 봤을 땐 오베의 사랑이 4살난 조카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무관심한 태도를 분석하자면 이렇다.
오베는 자신의 거만함과 남들로부터의 고립,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자만심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과 정을 나눌 수 없다.
많은 사람과 친해질수록,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특별한 의식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혼자 살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답은 하나다.
딱 한 명에게 자신의 모든 사랑을 쏟아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만을 내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어린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발달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사랑의 형식이다.
고집 센 어린이들은 자기가 틀렸다고 인정하거나 잘못했다고 인정하기 싫어 주변 사람 모두를 적으로 돌리곤 한다.
그렇다고 홀로 될 순 없기 때문에 딱 한 명만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있다.
오베의 경우가 전형적으로 이런 케이스에 해당한다.
소설에선 오베와 소냐의 사랑을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하려 한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덜 성숙하고 외로움과 편협함에 찌든 남자의 사랑 방식일 뿐이다.
아무리 소설에서 소냐를 좋게 묘사했어도,,, 결국 소냐도 오베가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속성을 갖고 본능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그녀만 특별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그녀만큼 특별하고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은 세상 곳곳에 널려있다.
오베가 그녀에게서 사랑스러운 점을 발견했다면,,,
오베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사랑스러운 점을 찾을 수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오베의 견해는 성숙한 것이고 믿을 만한 것이다.
하지만 오베는 오직 소냐에게만 좋은 점을 발견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그 누구에게서도 그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소냐만 갖춰서 그런 것이 아니라,오베의 견해 자체가 편협하고 한쪽으로 쏠렸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오베의 행동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오베는 혼자 된 후 자살을 선택한다.
후,,,,,,, 자살이라니….
소설에선 이런 모습도 강렬한 사랑에 의한 행동으로 아름답게 묘사하지만,,
역시 내가 보기엔 잘못된 행동일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 자신 역시 사랑해야한다.
내가 미치도록 사랑한 사람이,,, 그 사람이 사랑한 사람이 나이므로 나 자신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봐도 된다.
오베와 소냐 중 오베가 먼저 죽었다면,,,, 먼저 죽은 오베는 건강하게 잘 살아남은 소냐가 자신을 따라 죽기를 바랐을까 아니면 소냐가 혼자서도 꿋꿋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랐을까….
답은 뻔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오베는 홀로 남게 되자 아무 의미있는,,, 생산적인 일을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만 생각하게 된다.
이는 어떤 식으로 생각하더라도 아름답거나 합리적인 행동이 될 수 없다.
삶으로부터의 도피 밖에 안되며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에 대한 배신일 뿐이다.
소설의 결말이 이렇게 끝나서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베의 성격을 비판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꼭 주인공이 완벽해야 소설이 좋은 것은 아니니까.
장점도 가지고,,, 부족한 점도 가진 오베야말로 진짜 소설의 주인공이며,,,
독자들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일 것이다.
소수의 캐릭터를 깊이 있게, 유머 있게, 현실감 있게, 잔잔하며 감동있게 묘사한 소설이다.
그 여운이 꽤나 오래가는 재밌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