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선비 Mar 25. 2021

10. 뱃길 이천 리

   

날씨 탓이었는지 멀리서는 우중충하게 보이던 섬의 모습은 오히려 초가을 비에 씻겨서 운무에 휘감긴 채로 맑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초가을이라 해도 아직은 대부분 울창한 푸른 숲으로 섬 전체가 뒤덮여 있는데, 일부는 울긋불긋 고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산꼭대기 부분은 온통 크고 작은 하얀 바위로 뒤덮여 있었다. 

과연 동명이 백암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음력 8월의 바다는 바람이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이미 사라지고, 불어오는 바람은 오히려 찬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시원했다. 

파도도 잔잔하여 이를 데 없이 좋았다.

하지만 바다 풍경이 좋다고 항해하는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봉래를 떠난 서불의 선단이 나아가야 할 바닷길은 그 시작부터 오히려 고난의 연속이었다.

동명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서불의 원정대가 출발하는 시기를 선택하는 것부터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세워두었다.

동명이 택한 시기는 원정대가 육로를 통해 봉래까지 도착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도록 계획된 것이기도 했지만, 봉래에서 삼신산에 이르는 뱃길의 안전성을 더 고려하여 결정된 것이었다.

이 시기는 남동풍이 부는 계절이다. 

산둥반도에서 한반도의 남쪽을 향해 직선으로 항해한다는 것은, 맞바람을 받으면서 돛을 달고 항해를 해야 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에, 어렵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조금만 놓치면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만날 확률이 무척 높아지기 때문에 출항을 더 늦출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미리 자신의 상단에 통보하여, 이 시기 동쪽 바다의 험한 뱃길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배를 만들어두라고 지시해 놓았던 것이다. 

항해에 관한 일은 동명에게 완전히 일임한 서불이, 거금을 주고 그 뱃삯을 지불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배가 아무리 크게 만들어졌다 해도 태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명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항로라 해도 태풍보다는 낫기 때문에 서불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기로 이때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도 태풍을 만날 확률이 낮다는 것일 뿐, 완벽하게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동명의 계획에는 자신도 모르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다.

그는 금인을 실은 두 척의 배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명 자신조차 아직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 배는 일반적인 배와 그 형태가 완전히 달랐다. 무거운 쇳덩어리를 실은 채 바닷물에 거의 잠긴 커다란 직육면체의 나무토막을 여섯 척의 배가 끌고 가는 형태의 항해는 상상외로 그 속도가 느렸다.

앞부분을 유선형으로 만들어서 저항을 줄였다고는 하지만, 금인 자체가 가진 무게 때문에 대부분의 선체가 물에 가라앉은 채로 항해를 해야 하는 그 배는 다른 배들에 비해 확연히 속도가 느렸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가 느리다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인해 만날 확률이 수십 배로 높아지는 태풍을 어떻게 피하느냐에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동쪽 신령스러운 땅의 웅장한 모습이 어슴푸레한 새벽 여명 속에서 멀리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큰 변고 없이 비교적 순조로운 항해가 이루어졌다. 다만 바닷길을 처음 경험하는 동남동녀들인지라, 거의 한 달 가까이 항해가 계속되자, 뱃멀미는 물론 거친 파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은 이미 기진맥진해서 거의 초주검에 이르렀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선두에 나서서 항해하는 대장선의 선실에서는, 아직 이른 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박한 그들의 상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느라 서불과 동명이 더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선실의 앞면 벽에는 대형 죽간으로 만들어진 복잡한 모양의 지도가, 벽 한쪽을 절반이나 덮을 정도의 크기로 걸려 있었고 동명은 손가락을 짚어가며 서불에게 앞으로의 행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내륙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이 봉래산입니다. 

풍광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많아서 우리가 찾는 불로초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하지만 이곳 봉래산은 우리가 준비한 물자를 옮기기에는 상륙 이후의 육로가 너무 멀고 험합니다. 

물론 반도를 크게 우회해서 북쪽으로 올라간 다음 상륙하는 항로를 택하면 육로로 이동하는 거리를 크게 줄일 수 있지만, 그 방법을 택할 경우에는 항로가 거의 두 배나 길어집니다. 

게다가 반도를 우회하고 나면 그 해역의 파도는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거칩니다. 

그래서 이번 원정에서는 이곳을 제외시켰습니다. 

훗날 우리 대열이 안정되고, 그곳의 지리와 풍토에 익숙해지면 따로 대오를 편성해서 원정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사실 제가 이번 항해에서 교두보로 선정한 장소는 두 곳입니다. 

하나는 여기 백암도(白巖島: 지금의 남해 금산. 멀리 바다에서 보면 정상 부근의 하얀 바위들이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또 하나는 벽옥도(碧玉島: 지금의 거제 해금강. 맑고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아름다운 보석 같은 섬이라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라고 적힌 이곳입니다.”

동명은 두 팔을 뻗어서 두 지점을 동시에 짚은 다음 돌아서서 서불을 보며 말했다. 

“이 두 곳의 거리는 서로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곳 모두 육지와 가까이 붙어 있는 섬이기 때문에 우리 물건을 숨겨두기 쉬울 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공격에도 대비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방장산과 영주산의 거의 중간 지점이기 때문에 이곳을 거점으로 삼으면 어느 쪽으로도 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적합한 임시상륙지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동명은 다시 돌아서서 지도를 짚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선 이곳 백암도에 상륙하여, 애초에 계획했던 그대로 금인 하나를 포함한 모든 짐을 내립니다. 그런 다음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두고 나머지 인원은 항해를 계속하여 이곳 벽옥도까지 가서 나머지 하나의 금인을 배에서 내려 옮겨두어야 합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금인을 분산시켜 두는 효과도 있고, 또 어느 곳이든 불로초가 발견되면 금인을 옮기기에 가장 유리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두 곳 모두 공통적으로, 우리가 상륙할 장소 앞에 조그만 섬이 있습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금인은 일단 그 섬에 내려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금인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니 더욱 그렇게 하실 필요가 있지요.”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던 배의 요동은 어느덧 상당히 가볍고 안정적인 움직임으로 변해 있었다. 

동명이 웃으며 서불을 향해 말했다.

“배가 흔들리는 모양이 많이 안정된 것으로 보아, 목적지 해역에 가까이 온 듯합니다. 

이곳의 바다는 아주 잔잔한 편이거든요. 

위로 올라가 주위 풍광을 한번 둘러보시지요. 아마 무척 마음에 드실 겁니다.”

서불이 갑판으로 올라와 보니, 선단은 마침 멀리 앞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섬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본 지도에서 유혈도(有穴島: 지금의 세존도)라고 적혀 있던 조그만 섬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섬이라고 하기보다는 커다란 바위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했다. 뾰족한 칼처럼 생긴 바위가 바닷속에서 금방 힘차게 솟아오른 것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강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바위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싶더니 곧 배는 그 바위섬을 오른쪽에 두고 계속 나아갔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휘황찬란한 해를 등지고 있는 그 바위섬은, 작기는 했지만 붉게 타오르는 햇살 속에 우뚝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앞에서 보았던 바위섬의 모습은 마치 칼날 같았는데, 지금 보는 옆모습은 기도를 하기 위해 공손히 모은 두 손 같은 형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두 손바닥에 힘을 주어서 양손을 딱 달라붙게 한 모습이 아니라, 두 손을 약간 둥글게 모아 손가락 끝만 겨우 붙어 있는 모습처럼 섬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동명이 보여준 지도에 그 이름이 유혈도라고 되어 있는 것이 금방 이해가 갔다. 

서불은 그 바위가 마치 이번 원정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는 듯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 섬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서불은 배가 그 섬을 완전히 지나칠 때까지 그 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선단의 선두가 그 섬을 완전히 통과했다 싶을 즈음에, 서불이 타고 있던 대장선이 왼편으로 급히 방향을 꺾었다. 이 섬이 백암도를 가리키는 팻말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동명의 설명을 들으면서, 동명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어슴푸레한 아침 해무 속에 멀리 희미한 육지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은 이틀 정도의 뱃길을 가야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런데 금인선 때문에 더욱 느려진 항해 속도를 감안하면 그것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서불은 다시 선실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하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다듬었다. 곧 있을 상륙에 대비하여 전체 선단의 대원들에게 제각기 해야 할 일을 한 번 더 점검하게 한 후 자신은 지도를 보면서 백암도 주변의 지형을 완전히 머릿속에 넣어두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서불은 백암도 주변의 지형 정도는 눈을 감고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완벽하게 머리에 담아둔 상태였다. 다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그의 성격이 그를 그렇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이틀 후, 활동하기 좋은 여장으로 갈아입은 서불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갑판으로 나왔을 때는 날씨가 아주 좋지 않았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각인데도 해는 아예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고,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날씨에 가끔 비마저 흩뿌리고 있었다.

백암도는 곧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반쯤은 낮은 구름에 덮여 있었기 때문에 섬의 윤곽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겨우 파도가 부딪치는 해안가만 그럭저럭 분간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서불의 눈에 보이는 백암도 일대는 이미 서불에게 처음 보는 생소한 지역이 아니었다. 마치 수십 번이나 와본 곳처럼 바위 하나 계곡 한 줄기조차 어제 보았던 것처럼 익숙하게 다가왔다. 서불은 대장선의 뱃머리에 서서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드디어 서불의 선단이 백암도에 바짝 접근했다.

서불은 대장선을 좌측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백암도를 오른편에 두고 항해를 한 것이다. 


동명이 붙인 백암도란 이름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그럴싸했다. 

날씨 탓이었는지 멀리서는 우중충하게 보이던 섬의 모습은 오히려 초가을 비에 씻겨서 운무에 휘감긴 채로 맑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초가을이라 해도 아직은 대부분 울창한 푸른 숲으로 선 전체가 뒤덮여 있는데, 일부는 울긋불긋 고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산꼭대기 부분은 온통 크고 작은 하얀 바위로 뒤덮여 있었다. 과연 동명이 백암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서불은 여기가 방장산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웠다. 아니 굳이 방장산을 찾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시황이 꿈에 그리던 세계가 실제로 이렇게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전방에 크고 작은 섬들이 보였고 그 뒤쪽으로는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지형(지금의 미조 지역이다)이 있었다. 배를 정박시키기에는 적당하였으나 서불은 그쪽을 지나쳐서 왼쪽으로 더 돌아나갔다. 그곳은 정박과 하역작업을 진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너무 돌출된 지형이라 혹시 남의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단점이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백암산과 너무 멀다는 점이 서불의 마음에 걸렸다.

왼쪽으로 우회해서 곧장 나아가던 서불의 시야에 곧 섬(지금의 노도) 하나가 들어왔다. 그 섬에 무겁게 가라앉은 날씨 때문에 거의 반쯤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고, 백암도와의 거리도 마치 조그만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깝게 붙어 있다시피 했다. 하지만 사실 섬과 백암도의 거리가 아무리 가깝게 보인다고는 해도 100여 척이나 되는 서불의 선단이 통과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서불의 선단을 이끌고 섬과 육지 사이로 들어갔다. 선단이 섬에 거의 가까이 다가갔을 즈음, 오른편에 갑자기 육지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조그만 만(灣)이 하나 나타났다. 서불은 손으로 그곳을 가리키면서 동명에게 말했다.

“저곳을 잘 봐 둬라. 우리가 하역작업을 해야 할 곳이다. 

사실 처음에는 저곳에서 정박할 계획을 세웠지만 반신반의했다. 지도가 얼마나 정확하게 그려졌는지 알 수가 없어서 결정을 못했는데, 역시 생각했던 대로구나.

저곳이 여러모로 보아 좋긴 하지만, 단점이 있다면 너무 좁아서 우리 선단이 모두 정박할 수가 없다는 거지.”

동명은 물론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동명 자신은 이미 이곳 지형을 세밀하게 살펴서 지도까지 그렸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지만, 서불로서는 아직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인데 그 정도로 세밀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대장선이 그곳을 지나쳐서 그다음 모퉁이를 돌 무렵, 서불은 동명에게 명을 내렸다. 

“이제 곧 상륙하게 된다. 너는 뒤에 따라오는 배로 옮겨 타서, 상륙이 완료될 때까지 선단을 지휘하도록 해라. 나는 여기서 다시 뒤로 돌아가 금인선을 처리하고 가겠다.”

동명은 역시 뱃길에 능숙한 사람답게 배를 옮겨 타는 일도 쉽게 해냈다.

동명이 뱃전에서 수신호를 보내자, 뒤에 따라오던 배가 대장선 우측으로 가까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배가 가까이 오자 동명은 돛대와 뱃전을 연결하는 밧줄을 잡고 뱃전에 올라서더니 흔들리는 배의 리듬을 두어 번 잰 다음, 위로 솟는 배의 흔들림을 이용해서 가볍게 발을 한 번 구르더니 훌쩍 건너편 배로 몸을 날렸다.

조금의 비틀거림도 없이 마치 땅 위에 있는 조그만 도랑을 건너듯 배를 옮겨 탄 동명은, 돌아서서 서불에게 가볍게 읍을 한 다음 곧바로 선원들에게 뭔가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서불도 자신의 곁에 있던 어린 조장에게 낮은 목소리로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이제 우리는 다시 왼편으로 섬을 한 바퀴 돌아 선단의 후미로 붙는다. 

금인선 한 척만 여기에 남기고 나머지 선단은 모두 이곳을 통과하여 동명의 지휘를 받도록 한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그대로 전달해라. 큰 목소리로, 알겠느냐?”

서불 곁에 있던 조장은 잠시 서불의 말을 듣더니, 곧바로 뱃머리로 나가 나머지 선단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금인선 한 척은 왼편에 있는 섬 뒤 넓은 바다 쪽에 닻을 내릴 것이다. 나머지 선단은 계속 전진하여 앞에 보이는 만(灣)으로 들어가 해안에 정박한다. 

앞에 보이는 이곳은 넓어서 파도도 없고 안정적이라, 우리가 내려야 할 곳과 거리가 조금 멀어지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조류가 급하니 유의하라.”

과연 그랬다. 조금 전 지나올 때 오른쪽에 보였던 조그만 만은 깊숙해서 안정감도 있어 보였고 백암산으로 오르는 지세도 훨씬 완만하고 좋았다. 하지만 서불이 거느리는 대규모 선단이 정박하기에는 조금 좁았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향해 가는 그곳은, 서불의 선단이 머물기에는 아주 넓고 여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파도도 잔잔하여 마치 호수처럼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서불의 머리에는 또 다른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륙 지점은 조금 전에 지나쳐 온 좁은 만으로 정했지만 실제로 이곳에 전체 선단을 정박시키지 않은 진짜 이유는, 좁다는 사실 외에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정박해 있는 선단에서 전혀 알 수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서불은 그 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금인선이 도착한 것은 서불이 섬 모퉁이에 배를 정박시키고 난 뒤에도 거의 한 식경이나 지나서였다. 

서불은 우선 금인선의 대조장에게 금인선 한 척을 선단에서 분리하여 섬 가까이에 안전하게 고정시키라고 명령했다.

서불이 섬을 한 바퀴 돌면서 살펴본 결과, 섬의 북쪽은 비교적 완만하고 배를 정박시키기에도 쉬웠지만 남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다 조류도 급했다. 하지만 서불은 금인선을 남쪽 해안에 정박시키기로 결정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현지인의 이목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서불의 결정적인 실수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동명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금인선을 안전하게 정박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섬 가까이로 너무 접근해서 고정시키면 파도에 밀린 배가 절벽에 부딪혀 파선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두는 것도 배를 고정시키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금인을 실은 배는 섬의 남쪽 넓은 바다에 고정시킨 다음 섬에 있는 나무를 베어 덮어서 위장하기로 했다. 하역작업이 이루어지는 며칠 동안은 물론, 금인을 영구적으로 설치할 확실한 장소가 정해질 때까지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흔들림 없이 버틸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예인선단에서 분리된 금인선에는 수십 가닥의 동아줄이 묶어졌다. 금인선 주위로 빙 둘러 박인 쇠말뚝이 길이 방향으로 24개, 폭 방향을 20개씩인데, 길이 방향 한쪽 면만 빼고 모두 동아줄을 걸었으니 모두 64가닥의 동아줄이 촘촘하게 금인선과 연결된 것이다. 금인선은 섬에서 멀어져서도 안 되지만 너무 가까이 접근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대조장은 금인선을 섬에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 금인선을 빙 둘러 묶은 동아줄로 섬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둥치를 몇 겹이나 감아서 단단히 묶었다.

닻은 네 방향으로 모두 내려져서 바다 및 깊숙한 곳에 걸렸다. 금인선은 이제 완전히 고정된 셈이었다.

서쪽으로 내린 닻줄이 팽팽해지는 것으로 보아, 조류가 생각보다 급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정도면 견디고도 남을 만했다. 

나머지 하나의 금인을 묶은 선단은 그대로 만 깊숙이 들어가 닻만 내린 채 대기하도록 하고 거기에 실린 물자도 그대로 두도록 했다. 이 선단은 또다시 금인선을 끌고 벽옥도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그 선단에 속한 인원은 하역작업에서조차 제외시키고 쉬도록 하였다.

이전 09화 9. 수수께끼의 인물 동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