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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선비 Mar 24. 2021

9. 수수께끼의 인물 동명


말을 멈춘 동명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서불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나이는 서른 후반이나 되었을까? 

동명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눈매가 서늘한 사내였다. 

상단의 행수라면 적어도 나이가 쉰은 되어야 하는 게 보통이지만 동명은 아직 새파란 나이였다. 

서불은 동명이 비록 나이는 젊으나 눈빛으로는 도저히 그 속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내공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챘다. 

대규모 상단에서 잔뼈가 굵은, 나이에 비해 무척 노련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는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간다.

진시황이 구두 밀지를 받은 서불이 자신의 고향 낭야로 돌아온 뒤, 잠을 설치면서 고민에 빠진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황제의 밀명을 수행해야 한단 말인가. 황제의 계획이 그처럼 치밀하게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음을 알고, 서불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황제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영생불사의 불로초’에 그렇게 깊은 계략이 숨어 있을 줄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어느 정도 꿰고 있다고 자부하던 자신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그 무렵, 그동안 끊임없이 얻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만 거듭했던 불로초를 찾으러 황제의 최측근이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온 천하에 알려져 사방에서 진시황의 헛된 꿈을 비웃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낭야에 칩거하고 있던 서불을 찾아온 인물이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 ‘불가능이 없는 상단’이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는 영파 상단(寧波商團)의 대행수(大行首)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조용히 자리를 마련하여 뵙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사람이 바로 지금 뱃길을 안내하고 있는 동명(董冥)이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인사가 끝나자 동명은 곧 서불의 고민거리를 정확히 짚어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인! 대인께서 근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벌써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속이거나 시험하실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지금 대인께서는 동쪽 바다의 뱃길을 잘 아는 사람을 찾고 계시지요?”

순간, 서불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누구에게도 말을 꺼낸 적이 없었는데, 자신의 고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이 인물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놀라실 것 없습니다. 대인께서는 이미 그 사실을 온 천하에 떠벌리고 계신 거나 다름이 없으니 말입니다.”

서불은 애써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대체?”

동명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눈은 방바닥을 향한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대인께서는 지금 불로초를 찾으러 동쪽으로 가겠다고 하시면서, 하나같이 잘생기고 머리가 좋은 아이들을 뽑고 계십니다.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 말입니다. 더구나 배를 타고 가실 것이라 들었습니다. 

이게 앞뒤가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불로초란 것은 아직 천하에 모습을 드러낸 적조차 없는 희귀한 약초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인께 필요한 사람은 잘생기고 머리 좋은 동남동녀가 아니라 경험 많은 약초꾼이 아닐까요? 

뿐만 아니라, 동쪽 바다 건너에 있다는 삼신산으로 가려면 편안한 육로를 통해 동쪽 반도로 들어가, 봉래산으로부터 시작해서 방장산을 거친 다음 뱃길로 영주산을 찾아가면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지금 대인께서 동쪽으로 떠나실 것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 목적이 불로초를 찾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은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말을 멈춘 동명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서불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나이는 서른 후반이나 되었을까? 동명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눈매가 서늘한 사내였다. 상단의 행수라면 적어도 나이가 쉰은 되어야 하는 게 보통이지만 동명은 아직 새파란 나이였다. 서불은 동명이 비록 나이는 젊으나 눈빛으로는 도저히 그 속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내공을 지니 인물이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챘다. 대규모 상단에서 잔뼈가 굵은,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노련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서불이 또 한 번 찻잔을 기울여 천천히 마시는 동안을 말없이 기다리다가, 동명은 다시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그 여유로운 모습이 더욱 서불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저희 영파 상단을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희 상단의 최고 행수와 대행수 다섯 명은 이 모든 내막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자, 대인! 어떻습니까? 동쪽 바다의 물길과 바람을 아는 자로는 저희 상단 안에서도 저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인을 찾아온 것입니다.

제 고향이 영파입니다.

‘영파(寧波)’는 ‘파도를 안정시킨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상단은 어느 상단보다 뱃길에 익숙합니다. 

이제 제가 동쪽 바다의 파도를 안정시켜서 대인의 항로를 보장해 드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인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모든 물자의 안전한 이동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믿어보시겠습니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대인께서 옮기시려는 물건은 오천 명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많은 양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육로로 옮길 수도 없고, 배로 옮긴다고 해도 연안 항로를 따라 항해해서는 안 되는 물건입니다.”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은 채, 손에 쥐고 있는 빈 찻잔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고 있던 서불이 이윽고 무겁고 낮게 입을 열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제야 동명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희미하게 웃음 띤 얼굴로 답했다.

“간단합니다. 저희야 장사꾼 아닙니까? 이문만 생기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들이지요.”

서불은 사람을 불러 눈짓으로 뭔가를 지시했다. 

잠시 후 그 사람은 허술한 보자기로 싼 상자 하나를 끙끙대며 가져왔다. 상자의 크기에 비해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서불을 그것을 동명 앞에 놓게 했다. 동명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마치 제 물건인 양 보자기를 풀고 상자를 열었다.

동명은 상자 가득 든 금괴를 확인하고 천천히 다시 원래대로 보자기를 묶어서 자기 오른쪽 옆으로 밀어둔 다음, 다시 깊이 머리를 조아리며 서불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저는 대인께서 부리는 사람입니다. 저는 사흘 후에 다시 올 터이니, 대인께서 가져가시고 싶은 물건의 목록과 계획을 가능한 한 그때까지 빠짐없이 알려주십시오. 

계획이 수립되면 제가 먼저 가서 삼신산 부근 지형을 비롯한 제반 실정을 파악하고, 그다음 구체적인 이동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늦어도 2년 후에는 대인께서 출발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동명은 곧바로 일어나 문을 밀고 나서다가 뒤를 돌아보더니 한 번 더 서불을 향해 다짐하듯이 말했다.

“제가 다녀올 동안 대인께서는 출발 준비나 차질 없이 진행하십시오.”     

그렇게 떠났던 동명은 과연 어김없이 그 기간을 지켰고, 구체적인 상륙지점과 물자 배치 계획까지 자세히 적어와서 서불에게 보고했다. 

서불은 그런 동명에게 신뢰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서불의 흔들리는 눈빛을 얼핏 스쳐가는 미세한 움직임이었을 뿐, 누구도 알아차리기 힘든 찰나의 스침이었다. 외견상으로 볼 때 서불과 동명은 충성과 신뢰로 맺어진 완벽한 주종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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