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는 역시 불화살이 밤을 수놓은 것으로 시작되었다.
서로 교차하는 불화살은 수만 개의 유성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하면서 어두운 밤바다를 밝혔다.
휘황한 불꽃으로 만들어진 세 개의 동심원이 너울거리며 거리를 좁혀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불화살을 뿜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운데 작은 불덩어리와 바깥쪽 원을 만들고 있는 불덩어리에서 중간 부분의 원을 이루고 있는 불덩어리들을 향해 불화살을 날렸고, 마치 그 불화살은 자신들이 날아온 그 허공을 되짚어 돌아가듯이 반대쪽을 향해 날아가는 형국이었다.
황제의 배로 옮겨 탄 서불은 응급치료를 받은 다음 황제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다행스럽게도 서불의 상처가 깊지 않아 일상적인 움직임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배는 어느덧 방장산이 있다는 반도 해역으로 접근하고 있었고, 이제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서불이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백암산도 어렴풋이나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저물고 있었다.
진시황은 선수에서 천천히 고물 쪽으로 걸어가면서 자신이 지나온 바다를 돌아보았다. 저기 해가 떨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자신이 영욕의 삶을 살았던 곳이다.
열세 살 때 진나라 왕으로 등극한 진시황.
자신의 아버지 장양왕이 인질로 조나라에 가 있을 때, 여불위의 첩을 아내로 맞이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이 진시황이다.
자기 어머니가 여불위의 첩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여불위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면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진시황은 끊임없이 품고 있었던 것이다.
열세 살 때 왕위에 오른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기까지 단 하루도 전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전쟁과 반란 진압에 일생을 바쳤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자신의 어머니와 사통 하여 아이를 낳기까지 했다는 노애의 난을 평정하면서, 더 이상 세상사에 매달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이상향과 불로초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하를 통일하는 일, 아니 자신의 이상향을 찾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기까지는 어떠한 준비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왕위에 오른 지 20년이 되던 해까지도, 그는 연나라에서 보낸 자객 형가(荊軻)의 암살을 극적으로 모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그래서 통일 천하의 시황제(始皇帝)라는 칭호를 얻자마자 바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금인을 만들고 수많은 금은보화를 감추어두었던 것이다.
이제 그 보물들은 자신의 새로운 왕국을 만드는 데 쓰일 것이고, 그 정도면 천하를 사고도 남을 것이었다.
자신이 통일 천하의 시황제였다는 것은 미리 보내 둔 두 개의 금인이 영원히 증명할 것이다.
진시황은 감개무량했다.
어느덧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진시황은 서불에게 명했다.
“내가 탄 배를 빙 둘러 커다란 횃불을 밝혀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 부소가 이끄는 선단이 곧 도착할 것이다.
그가 나를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모든 횃불을 있는 대로 밝혀두어라.
부소를 만나면 선상에서 큰 잔치를 열리라!”
황제 일행의 배 네 척은 금방 사방을 대낮처럼 밝혔다.
한 식경이나 지났을까, 과연 후방에 조그만 횃불을 밝힌 선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시황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자, 보아라! 드디어 내 사랑하는 아들 부소가 도착했다. 모두 잔치 준비를 하라!”
이윽고 그 선단은 후미에 따라오던 서불의 배 가까이까지 바짝 접근했다.
그런데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다가오는 배는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고, 불도 훤히 밝히지 않은 채 조용히 접근해 왔던 것이다.
그들이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을 땐, 이미 어둠을 뚫고 날아드는 화살에 군사들이 쓰러져가고 있었다.
도착한 건 부소의 선단이 아니라, 동명이 말했던 바로 그 영파 상단이 보낸 선단이었던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보며 화살을 쏘는 건 쉬운 일이다.
표적이 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보고 반격을 하는 건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장님이 허공에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서불이 타고 왔던 배는 순식간에 탈취당하고 말았다.
선수에 묶여 있던 동명의 부하들이 풀려나서, 상단을 통솔하는 대행수에게 그 배에 보물이 실린 사실을 보고했다.
대행수는 서불의 배를 맨 뒤로 물러나게 하고, 다시 황제의 배를 향해 공격을 준비했다.
진시황이 탄 배도 이미 화살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진시황의 배에서도 이미 불화살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영파 상단의 선단도 이제 대낮처럼 불을 밝혔다. 아니 그들이 일부러 불을 밝혔다기보다 그들이 장전한 불화살이 그들의 배 전체를 환히 밝히고 있었다.
캄캄했던 바다가 순식간에 휘황찬란한 불꽃놀이를 펼치는 듯한 형국으로 바뀐 것이다.
열두 척의 배가 황제 일행이 탄 배 세척을 에워싸고 빙빙 돌면서 온통 불을 밝힌 채 접근하는 모습을 누군가 멀리서 봤다면, 캄캄한 밤하늘에 빛나는 유성의 잔치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모두가 숨을 삼키며 결전을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
맨 뒤로 처져 있던, 서불이 타고 왔다가 영파 상단에 뺏긴 바로 그 배에서 돌연 화광이 솟았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접근하던 또 다른 선단이 있었던 것이다.
부소였다.
멀리서부터 지금까지의 광경을 살피면서 조용히 접근해 오던 부소의 선단을, 싸움에 정신을 빼앗기느라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소는 맨 뒤에 쳐져 있는 배 위로 기름 먹인 솜뭉치에 불을 붙여 던지는 것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황제가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부소다! 부소가 왔다! 내 아들 부소가 왔단 말이다. 여봐라,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군사들도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태자님께서 오셨다! 힘을 내라!”
전투는 역시 불화살이 밤하늘을 수놓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서로 교차하는 불화살은 수만 개의 유성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하면서 어두운 밤바다를 밝혔다.
휘황한 불꽃으로 만들어진 세 개의 동심원이 너울거리며 거리를 좁혀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불화살을 뿜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운데 작은 불덩어리와 바깥쪽 원을 만들고 있는 불덩어리에서, 중간 부분의 원을 향해 불화살을 날렸고, 마치 그 불화살은 자신들이 날아온 그 허공을 되짚어 돌아가듯이 반대쪽을 향해 날아가는 형국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커다란 불꽃을 피워 올리며 안팎을 가릴 것도 없이 선단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런가 했더니 어느새 그 불꽃들은 한 덩어리로 어지러이 뒤섞이고 있었다.
이제는 대열도 흐트러지고 진영도 구분되지 않았다.
그 속에서 불붙은 몸으로 상대방의 칼날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가면서 칼을 휘두르는 인간들은 마치 불덩이 속으로 날아든 불나방처럼 쓰러져갔다.
하늘까지 치솟으려는 듯 타오르는 불길에 진황도의 북쪽 절벽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윽고 날이 밝았을 무렵.
진황도 앞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은 시커멓게 불타다 남은 판자 조각 몇 개에 불과했다. 사람도 배도 흔적이 없었다.
그곳에서 한 식경이나 떨어진 거리, 백암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바다 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부소의 배가 시커멓게 그을린 채 떠가고 있었다.
다른 배들은 서로 뒤엉켜서 피할 길이 없었지만, 다행히 부소가 탔던 배는 가장 외곽에 자리를 잡고 지휘했던 탓에 그나마 배에 붙은 불을 끄고 수습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소도 온전하지 못했다.
불타는 진시황의 배를 본 부소가 울부짖으며 진시황의 배를 향해 바다로 뛰어들려고 하는 것을, 말리다 못한 부하가 뒷머리를 쳐서 잠시 기절을 시켜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부소도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부소의 배에 남은 인원은 채 스무 명도 되지 않았다.
진시황이 탔던 배는 흔적도 없었다.
자기에게 물려주겠다던 이상향은 저기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진시황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명이 말했던 대로, 모두들 영파로 흘러가버렸는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일어설 힘조차 없어 보이는 부소가, 자신의 품속에서 양가죽에 그려진 지도 한 장을 꺼내 펼쳤다. 진시황이 밀서를 보낼 때 함께 보낸 지도였다.
서불이 그린 지도를 그대로 보고 그렸다는 그 지도에는 백암산 그림과 함께 뭔가 알 수 없는 의미를 표시한 듯한 여러 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부소는 서불이 지도에 표시한 경로를 따라 백암산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이틀 후 백암산 바로 아래, 지도에 표시된 그 섬을 지나가면서도 부소는 그곳이 금인이 빠진 곳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탈진한 상태로 백암도에 상륙한 부소 일행은, 그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뒷날 아침에 바로 백암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해안가에는 지도에 그려진 것처럼 번개 모양의 암호가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그 표시를 따라 산꼭대기에 펼쳐진 하얗고 아름다운 바위들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산 중턱에 이르자, 드디어 서불이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바위가 숲 속에 누워 있었다.
순간 부소는 다시 한번 절망하고 말았다.
지도에 그려진 표시는 단지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부소의 지도에는 그 그림이 있는 위치만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바위에 그려진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모양을 그린 그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글자도 아니었다.
서불이 무슨 의미를 담아서 장소를 표시한 암호가 분명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 그림을 풀이해서 보물을 찾아야 할 서불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부소는 일단 그 바위가 있는 자리에 깃대를 하나 높이 세워서 표시를 해두고 백암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지도에 그려진 좁다란 동굴을 지나 조금 전에 꽂아둔 그 깃발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부소는 사방을 둘러보며 온갖 방법을 다해 생각을 맞추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고,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부소는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배에 실린 식량만으로는 그들도 얼마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부소 일행은 우선 살아갈 궁리를 하지 않을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며칠이 지난 후, 부소 일행은 자신이 꽂아둔 깃발이 잘 보이는 그 산꼭대기 바위 밑에 조그만 움막을 한 채 지었다.
부소는 다른 일행을 모두 내려 보내고 자신만 그 집을 벗어나지 않은 채, 지도를 보다가 밖으로 나가서 주위를 살피곤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처음에는 희망을 가졌던 부하들도 차츰 기력을 잃어갔다.
그들이 기력을 잃는다는 것은 부소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매일 한 번씩은 부소를 찾아 올라와 상황을 보고하던 부하들은, 언제부턴가 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발걸음을 끊어버렸다.
그들은 부소를 찾지 않은 채, 백암산 밑에서만 기거하면서 부소가 살던 곳을 가리켜 부소대(扶蘇臺)라 부르기 시작했다.
몇 달 후 부소의 부하 한 명이 땔감을 구하려고 백암산에 올랐다가, 혹시나 하고 부소대에 들렀는데 부소대에는 이미 인적이 끊어지고 없었다.
예전의 부하들이 부소를 찾으려고 일주일이 넘게 산을 헤맸지만 종적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