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때 사람이 왜 제주도에 가서 석상을 만들었을까?
그저 돌이 많아서?
그래, 그럼 그건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왜 거기에다 하필 진시황의 신하 ‘완옹중’의 이름을 붙였을까?
완옹중은 흉노족을 막았던 장수였을 뿐 제주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말이야.
그건 김몽규가 이미 그런 이름을 가진 석상을 보고 그걸 재현해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김상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이근형이 김상오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이근형은 이쑤시개를 질근질근 씹으면서 약간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웃음기를 띤 채 물었다.
“아니, 그런 만화 같은 얘기를 지금 우리 보고 진짜로 믿으라는 거냐?
그렇다면 아까 네가 하던 이야기에 나오던 영주산, 그래 지금의 제주도 한라산이라고 했던가, 거기 살았다던 동남동녀들은 모두 어떻게 됐단 말이냐?
지금 제주도 사람들이 모두 그 동남동녀의 후손이란 말이냐?”
김상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겸연쩍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지, 그건 지금으로선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워.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들의 후손이 제주도에 남아 있을 확률은 거의 없을 것 같아.”
김상오의 말을 이근형이 다시 잘랐다.
“그래?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떻게 됐단 말이냐?”
김상오는 뭔가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오른손으로 목 뒤를 만지다가 말했다.
“일본 후쿠오카 지방에 서불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는 것으로 보아 일부는 그곳으로 갔을 수도 있어.
왜냐하면 그들은 서불이 동쪽으로 갔다고 믿었을 것이기 때문이지.
서불이 진시황을 데리러 갈 때는 서귀포에서 바로 서쪽 방향을 향해 간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섬을 한 바퀴 돌아서 갔거든. 제주도에 남아 있는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서불이 다시 중국으로 간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용의주도함이었지.
그리고 남아 있었을 수도 있는 일부는……, 아니 대부분일지도 몰라. 아마도 전부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 왜냐하면 제주도는 고려 시대까지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로 지질학적으로 위험한 곳이었거든.
내가 지금까지 했던 진시황이니 서불이니 하는 이야기는 모두 기원전 이야기니까 두말할 것도 없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천 년이 넘는 동안 여러 차례 있었던 제주도의 화산 분출 기록으로 볼 때, 그 인원이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
이번엔 정태승이 다시 나섰다.
“아니,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그 동남동녀들이 제주도에 장기간 거주했다고 주장하는 거냐?
금인이 빠진 곳이 남해 노도와 거제도 해금강이라면 그 부근에서 계속 거주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냐?”
김상오는 그런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정태승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옛날에 그들이 제주도에 정착해서 살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만든 금인의 흔적이 제주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건 오랫동안 거주하지 않았다면 만들어내기 어려운 문화 현상이거든.”
김상오는 다시 좌중을 한번 둘러보며, 다들 집중해 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 제주도 돌하르방을 한번 생각해 봐라. 그게 뭐겠냐?
너희들이야 가끔 골프 치러 가기도 하니까 들어서 알 수도 있겠지만, 제주도 돌하르방은 조선 영조 때 제주 목사로 있던 김몽규(金夢煃)란 사람이 처음 만든 거야.
그런데 말이야, 그게 원래부터 지금처럼 ‘하르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건 아니거든.
김몽규는 돌하르방을 ‘옹중석(翁仲石)’이라고 불렀단 말이야.
한번 생각해 봐. 왜 하필이면 그렇게 불렀을까?
그 ‘옹중’은 진시황 때 살았던 장군 ‘완옹중’의 이름인데 말이야.
우리나라 역사상 지방 목민관이 석상 만들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냐?
조선 영조 때 사람이 왜 제주도에 가서 석상을 만들었을까?
그저 돌이 많아서?
그래, 그럼 그건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왜 거기에다 하필 진시황의 신하 ‘완옹중’의 이름을 붙였을까?
완옹중은 흉노족을 막았던 장수였을 뿐, 제주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말이야.
그건 김몽규가 이미 그런 이름을 가진 석상을 보고 그걸 재현해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시에 서불을 따라온 동남동녀가 만들었던 수많은 완옹중의 석상은, 화산 활동으로 인해 이미 대부분 지하로 매몰되거나 파괴되고 말았겠지만 그래도 뭔가 파편으로라도 남아 있던 부분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거 아니겠냐?”
이때 또 정태승이 시니컬한 표정으로 한마디 하고 나섰다.
“뭐? 아니겠냐? 그럼 너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란 말이냐?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니면 그만이고’라는 거 아니냐?”
이번에는 김상오가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그래 맞다. 내가 너무 간단히 설명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내 말이 그렇게 억지스러웠다면, 우리나라 정부에서 날 믿고 이런 조사를 시작할 수 있었겠냐?
그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에서 저런 식으로 나오겠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지금 우리나라 남해 해역으로 와서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이 대부분 영파에서 온 배들이라면 믿겠냐?
해경에 알아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실제로 중국 어선이 두미도나 사량도까지 접근해서 조업을 한다는 거야. 다시 말하자면, 진시황과 서불이 진황도라 불렀던 지금의 세존도를 지나 남해섬 바로 밑에까지 접근했다는 말이야.
그들의 목적이 정말 고기잡이에만 있었을까?
영파 상단은 아직도 중국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로 이름난 집단이야.
그들 가운데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진시황의 보물 이야기를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이 많아.
서해안에 나타나는 중국 어선들 가운데 그런 배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
최근에는 중국 정부에서 일부러 보내는 탐사선도 있다는 말이 있어.
물론 어선으로 위장해서 말이야.
그렇지만 아직은 내 말이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은 사실이야.
이번에 내가 김 장군을 설득해서 이 작전을 시작하게 한 것은 그것을 입증해 보고 싶어서였어.
다른 사람들에겐 보물이나 금인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난 내 가설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지.
모르긴 해도, 내 말이 사실로 입증되면 남해 금산 일대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밤새도록 지켜야 할걸?
사실 보물이야 못 찾아도 그만이지, 뭐.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면, 제주도와 남해에 몰려들 중국 관광객들을 생각해 봐. 그게 바로 보물 아니겠냐?”
이때 잠자코 친구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던 오태성이 입을 열었다.
낚시라면 이 세상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할 정도로 낚시광인 친구다.
물론 실력도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김상오는 그를 두고 ‘한 길 사람 속까지는 몰라도 열 길 물속은 확실히 아는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었다.
“아, 마 됐고! 그런 건 우리가 알 수 없는 거니까.
어이, 김 장군! 거 뭐냐, 수중글라이더라고 했냐?
그게 바다 밑에 들어가서 찍었다는 남해 바다 물속 구경 좀 하자!
다음에 혹시 그쪽으로 낚시 갈 기회가 생기면, 대물이 나오는 자리가 어딘지 알아야 할 거 아니냐?
우리 같이 한번 보자. 그림이 멋질 것 같은데?”
그러자 한잔 얼큰하게 올라 있던 강호병이, 한창 유행하던 개그맨 흉내를 내느라고 머리를 감싸 쥐고 돌아앉으면서 말했다.
“내는 안 볼란다!”
친구들은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강호병의 그런 행동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생겼던 감정이 모두 말끔히 풀렸다는 표시였다.
친구들의 웃음은 다시 무골호인으로 돌아온 강호병을 반기는 의미였다.
일행은 모두 김경태의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김경태는 테이블 위에서 봉투를 하나 집어 들고 말했다.
“이게 마침 어제 부쳐져 온 건데, 호병이가 찍은 마지막 영상이다.
작전도 끝났고 해서, 나도 안 보고 그대로 둔 건데……, 그래. 어디 한번 봐라. 남해 노도 밑의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대신, 대물 하나 걸어 올리면 우리 다시 한잔 더 하는 거다! 오케이?”
김경태가 테이블 위에 있던 노트북을 켜고 CD를 넣자, 노트북은 낮게 웅웅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곧 김경태의 서재에 펼쳐진 스크린에 화면이 나타났다.
수중글라이더가 찍은 영상은 생각보다 선명도가 떨어졌다.
바다 밑을 찍은 것이기 때문에 화면은 전체적으로 어두웠지만, 수중글라이더의 조명이 비치는 가운데 부분은 상대적으로 환했다.
그렇지만 피사체가 멀어지면 전체적으로 다시 어두워지곤 했다.
수중글라이더가 암벽으로 바짝 접근해서 찍은 영상은 오색찬란하게 빛나면서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지만, 뒤로 물러나면서 찍은 영상은 상대적으로 어두워지면서 사물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오태성을 비롯한 친구들 모두가 다들 애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김경태와 강호병 두 사람만 관심이 없는지 거실로 나가서 맥주를 나누면서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간혹 어깨를 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꽤나 유쾌한 모양이었다.
강호병이 서재 쪽을 보고 소리쳤다.
“야! 이 촌놈들아!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대가리들을 처박고 있냐?
빨리 끄고 나가 스크린이나 한판 붙자. 내 너희 핏덩어리 놈들에게 오늘 한 수 가르쳐줄 테니까!”
이근형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다 돼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그런데 왜 수중글라이더가 꼼짝도 안 하고 서 있냐? 바다 밑이 조금씩 움직이는 걸로 봐서 화면이 정지한 건 아닌데…….”
강호병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야! 이 촌놈아! 그건 내가 안 움직이면 꼼짝도 안 하는 물건이라는 거 모르냐?
그 말 듣고 보니 생각이 나네.
아마 내가 경태 이 새끼 전화받고 짜증이 나서 갑판으로 올라가 있을 때인 모양이다.
그럼 곧 끝나겠네! 다들 코피 터질 준비나 해라.”
그때 안에서 오태성이 갑자기 파안대소를 터뜨리면서 소리를 쳤다.
“와하하하! 저 와중에 낚시하는 놈도 있네!”
그러자 이번엔 김경태가 대답했다.
“에라, 이 미친놈아! 명색이 문무대왕함이 떠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데, 어떤 놈이 거기다 낚싯대를 던진단 말이냐?
어디 그런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러자 오태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인마! 너 짱구냐? 저기 수중 찌가 지금 내려오고 있는 게 보이는데도 그런 소릴 한단 말이냐? 야! 니들도 봤지? 저기 조금 전에 빨갛게 반짝거리면서 내려오던 거, 못 봤냐?”
그러자 정태승이 나섰다.
“야야! 쓸데없이 떠들면서 힘 빼지 말고, 이럴 때는 내기를 해라, 내기를! 자, 얼마씩 걸고 싶냐?”
정태승은 말을 하면서 노트북을 조작해서 화면을 잠시 전으로 되돌렸다.
화면이 다시 돌자 잠시 후 오태성이 나섰다.
“잠시, 화면 정지! 저기 오른쪽 위에 어두운 부분 잘 봐라. 빨간 점 같은 거 안 보이냐?”
어느새 강호병과 김경태도 서재로 들어와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순간 강호병이 정태승을 확 밀쳐내면서 마우스를 잡았다.
강호병의 얼굴에서는 이미 웃음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화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맞았다. 그건 불빛이었다.
틀렸다. 그건 찌가 아니었다.
강호병이 문무대왕함 갑판에서 던져버렸던 바로 그 GPS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모습이 수중글라이더에 잡혔던 것이다.
잠시 후, 밑으로 떨어져 내리던 그 불빛은 멈췄다.
아마도 여느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시커멓고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얹혔을 것이다.
화면은 계속 한 부분만 비추고 있었다.
GPS가 쏘아내는 불빛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깜박이고 있었다.
이윽고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사방의 형체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수중글라이더에 자신이 없던 박 중위가 올챙이를 곧바로 후진시키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강호병은 분명히 짐작하고 있는 터였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넓은 부분을 비춰가면서 어두워지고 있었고, GPS의 불빛도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비스듬히 소파에 기댄 채 말없이 화면만 응시하던 김상오가 튕기듯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잠깐! 화면 정지!”
이미 화면은 거의 뿌옇게 변해 버려서 명확하게 보이는 물체는 없었다.
김상오는 아무 말도 없이 화면을 응시하면서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정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 …… 정말로, …… 정말로……!”
다들 영문도 모르고 멀뚱 거리는 사이, 김상오가 고함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이미 뭔가를 발견한 강호병이 아무 말 없이 마우스로 커서를 움직여서 화면에 대각선 방향으로 비스듬히 커다란 타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타원형 속에는 조개껍질이며 해초 따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기는 했으나 분명한 형태의 커다란 하르방 하나가 미소를 머금은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하르방 콧잔등에서는 아직도 빨간 불빛 하나가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