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는 아마 지금도 연구실에서 서불과차도를 놓고 골치를 썩이고 있으리라.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친구 성격상 벌써 뭔가를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단지 좀 더 명확한 근거를 찾아내기 위해 자료를 검토하는 단계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강호병은 다시 아래쪽 노도를 내려다보았다.
노도 뒤편 먼 곳으로 커다란 군함 한 척이 떠 있고, 그보다 훨씬 작은 배들도 몇 척 오가는 것이 보였다.
오가는 것은 아마도 작은 군함이거나 해경 경비정일 것이다.
노도 바로 건너편에 바짝 붙어서 몇 개의 기둥 꼭대기만 보이는 것이 아마 어저께 뉴스에 나왔던 바로 그 해상크레인에 틀림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인양작업을 지켜보고 싶지만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다.
금인을 찾을 때는 오라고 하더니 막상 찾아서 건져 올릴 때는 못 오게 하는 게 대체 무슨 경우냐고 김경태 소장에게 따졌으나, 워낙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작업인지라 어쩔 수 없다면서 사정을 하는 통에 더 이상 조를 수도 없었다.
노도 남쪽 해상에서 해경 초계함 1XX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은 것은 사흘 전의 일이었다.
남해 해역에서 불법어로행위를 단속하던 해경 초계함이 노도 쪽을 순찰하던 중, 우리 초계함을 발견하고 도주하는 중국 어선을 추격하다가 노도 가까이 접근하면서 썰물에 드러난 암초에 실수로 부딪혔다는 내용이었다.
강호병으로서는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이미 한 달 전에 김경태 장군을 만나 대략 들었던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금인을 발견하긴 했는데 어떻게 비밀리에 인양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사고를 위장해서 인근 해역에 해상크레인을 보내 인양한다는 작전이었다.
사실 뉴스에 나온 초계함 1XX호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배였다.
하지만, 1,000톤 정도 되는 크레인을 동원하려면 경비정 정도가 침몰해서는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초계함이 침몰한 것으로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함(艦)과 정(艇)은 총 배수량 100톤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금인의 무게와 비슷한 크기의 배를 선정했던 것이다.
금인을 찾아냈던 문무대왕함은 그 작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청해부대와 함께 아덴만으로 떠났으니 벌써 그 일을 겪은 지도 서너 달이 지난 셈이다.
사고 해역에는 육상과 해상은 물론 하늘에 비행기조차 지나다닐 수 없게 조치를 취해 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인은 아마도 천막에 가려진 채로 인양될 것이다.
사고 선박을 외부에 노출시킬 수 없다는 핑계는 아마도 적당히 만들어져서 발표될 것이다.
강호병은 김상오를 떠올렸다.
그 친구는 아마 지금도 연구실에서 서불과차도를 놓고 골치를 썩이고 있으리라.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친구 성격상 벌써 뭔가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단지 좀 더 명확한 근거를 찾아내기 위해 자료를 검토하는 단계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강호병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다시 서쪽 앵강만부터 동쪽 미조 방향을 멀리 둘러보고 부소대를 나섰다.
밑으로 내려가는 절벽을 향해 몇 걸음도 채 옮기지 않았는데 발아래 굴이 보인다. 로프도 한 가닥 설치되어 있다.
이 굴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서불을 상상하며, 강호병은 조심스레 로프를 타고 굴을 빠져 내려왔다.
올 때마다 지나는 코스지만 단 한 번도 기이한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없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멋진 나무계단을 지나 호젓한 숲길을 내려오니 어느덧 눈앞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그 바위 왼편으로 납작하게 엎드린 바위에 바로 서불과차도가 새겨져 있다.
등산객이 다니는 길은 그 두 바위 사이로 나 있다.
누군가가 탁본을 해갔는지 서불과차도에는 시커먼 먹물로 얼룩이 져 있었다.
강호병은 오른쪽 큰 바위로 올라갔다.
바로 발아래 저만치 서불과차도가 펼쳐져 있고, 이 바위 위에 서면 온 사방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그림이 바로 서불이 그린 보물지도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뭔가 보이는 듯도 하지만 더 이상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문득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깜짝 놀라 받아보니 김경태의 전화였다.
평상시 그대로 유쾌한 목소리였다.
“야! 호빙아! 지금 어디냐?”
“왜? 나 지금 보물을 찾고 있는 중인데, 인양작업 구경시켜 줄라고?”
“허허, 참! 안 되는 일이라는 데도 자꾸 조를 거냐?
니가 가서 보지 않아도 내가 다 중계방송해준다고 했잖아!
지금 작전 해역 반경 삼 킬로미터 이내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할 수 없어.
노도 남쪽 언덕에는 유디티 대원들이 육상에서 물샐틈없이 경계를 펴고 있기 때문에 그 섬에 사는 주민들도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야.
그리고 이미 해저 현장 촬영은 다 끝났는데, 화면으로 보기에 금인은 아주 온전한 상태였어.
지금은 아마도 해군 해난구조대(SSU) 요원들이 물밑에서 위장막을 덮어 씌우고 있을 거다.
혹시나 해서 해상크레인도 천 톤이 넘는 걸로 보냈으니, 아마 늦어도 사나흘 후면 진해항에 들어오지 싶다.
그때는 내가 너를 특별히 초청해서 따로 보여주마! 됐냐?”
강호병으로서도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으면서 알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강호병이 전화를 막 끊으려고 하는데 김경태가 톤을 높여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야! 니 볼 일 끝났다고 전화 끊을 거냐? 내가 전화를 했으니 내가 할 말이 있었을 거 아니냐?”
강호병은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허, 참! 그게 그렇게 됐냐? 이거 나이를 먹으니 어쩔 수가 없네. 난 또 내가 전화를 한 줄 알았지! 그래, 왜 전화했냐?”
“야! 쓸데없이 보물 찾겠다고 그런 데서 어정거리지 말고 빨리 이리로 와!”
“왜? 뭔 일이냐, 또?”
“야, 인마! 너 또 해외출장 갈 일 생겼다.”
“뭔데?”
“남해에 있는 거 찾았으니, 이번엔 해금강을 뒤져야지, 안 그러냐?”
“그래? 조오치! 근데 이번에도 또 중간에 그만두라 어쩌라 하면 바로 배를 폭파해 버릴 거다. 알겠냐, 이 군바리 짜식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지 마는지, 먹물을 잔뜩 뒤집어쓴 서불과차도를 등에 지고 있는 거북바위는 아무 말 없이 엎드려 있었다.
서불과차도 뒤쪽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남해 금산의 웅장한 바위들이,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치 그 바위들이 품고 있는 보물들이 녹아내려서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