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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선비 Mar 24. 2021

6. 진시황, 서불을 얻다.

二十六年

齊王建與其相后勝發兵守其西界, 不通秦.

秦使將軍王賁從燕南攻齊, 得齊王建.

-司馬遷 <史記·秦始皇本紀>-     


진시황 26년

제나라 왕 전건(田建)이 승상 후승(后勝)과 함께 군대를 동원하여 제나라 서쪽 국경을 지키면서 

진나라와 왕래하지 않았다. 

진나라 왕은 장군 왕분을 시켜 연나라로부터 남쪽으로 제나라를 공격하여 제나라 왕 전건을 사로잡았다.

-사마천 <사기·진시황 본기>        


  



진시황은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진나라와 더불어 대립하던 전국칠웅(戰國七雄) 가운데 남은 나라는 이제 제나라 뿐이었다.

진시황은 천하통일을 위한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대세는 진나라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지만, 그래도 전쟁은 전쟁인지라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쌍방의 인적 물적 손실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진시황은 고민을 거듭했다.

자신이 명령만 내리면, 이토록 처절하고 오랜 전쟁을 머지않아 끝낼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천하통일을 목전에 둔 마지막 전투만큼은 가급적 피를 덜 흘리는 방법을 강구하고자 했다.

그는 마지막 전트를 야전에서 지휘하고 있는 왕분(王賁) 장군을 불렀다.     

왕분이 들어와서 엎드린 지도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지만, 진시황은 여전히 창가에 서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이윽고 진시황은 돌아서서 왕분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왕 장군! 수고가 많소. 그래, 적정(敵情)은 어떠하오?”

왕분은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폐하! 승리가 눈앞에 있습니다. 우리 군사들의 사기는 이미 하늘을 찌를 듯하고, 군량과 무기도 넉넉히 갖추고 있습니다. 

후승(后勝)이 이끄는 제나라 군대가 전열을 가다듬고 결사적으로 항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결코 우리의 예봉을 꺾지는 못할 것입니다. 

폐하! 진격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천하통일을 향한 마지막 전투를 지휘하는 것은, 저는 물론 제 가문을 영원히 빛낼 수 있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진시황은 만족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몇 번 끄덕이다가, 웃음 띤 얼굴로 왕분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듯 말했다.

“왕 장군! 투량환주(偸梁換柱)를 아는가?”

왕분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 폐하! 소장이 전장에서 평생을 보내느라, 비록 글을 읽은 것은 적다 하나, 명색이 무장으로서 어찌 손자병법조차 모르겠습니까?”

진시황은 왕분의 등을 다시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

“과인이 욕심이 생겨서 말이야……. 천하통일의 마지막 전투에서만큼은 피를 흘리고 싶지 않네! 시간과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내 상관하지 않을 테니, 잘해 보게!”

왕분은 한동안 놀란 표정으로 진시황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그 자리에 털썩 꿇어앉아 감격한 표정으로 진시황을 쳐다보며 말했다.

“폐하, 소장이 이제야 폐하의 깊은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폐하의 뜻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투량환주지계(偸梁換柱之計)라면 손자병법 제25계에 해당한다. 

‘대들보를 훔쳐낸 다음 기둥으로 바꿔 넣는’ 계책이 바로 그것이다. 

대들보는 집의 형태를 유지하는 핵심 구조물이다. 대들보가 튼튼하면 웬만한 충격이 가해져도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들보가 허약하면 집은 외부의 충격이 없어도 저절로 무너져 내리는 법이다.

진시황은 제나라 진영의 내부 분열을 조장해서 제나라 군대가 자멸하게 만들라는 명령을 왕분에게 내린 것이다.

진시황의 명령을 받은 왕분은 바로 제나라로 사람을 보내, 온갖 인맥을 동원하여 재상 후승은 물론 제나라 장군과 대신 모두에게 비밀리에 뇌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제나라가 항복하면 진나라에서는 누구도 죽일 생각이 없으며, 나아가 신변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진시황의 작전은 주효했다.

이미 대세를 절감해서였을까. 제나라 진영이 와해되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제나라 군대는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추풍낙엽처럼 소리 없이 허물어져 갔다.

하지만 제나라 진영에서는 누구도 겉으로 항복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후승이 주재하는 막료회의에서는 오히려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자는 결론만 번번이 채택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나라 장수 가운데 누구도 자신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의견에 대놓고 반대하는 장수가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장수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 결사항전을 주장하던 늙은 장수가 바로 서불이었다.

그는 나이가 이미 4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단신으로 진나라 군대에 돌격하여 장검을 휘두를 수는 없었지만, 기개 하나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 서슬에 감히 누구도 나서서 항복을 거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불의 마음만으로는 이미 허물어져 가는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진나라 장수 왕분이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 진영을 향해 진군하자, 재상 후승을 비롯한 제나라 장수들은 활 한 발 쏘지 않고 항복하고 말았다. 제나라 왕 전건도 어쩔 수 없이 사로잡히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천하통일의 마지막 장면은 이처럼 평화로우면서도 허무했다.

천하통일의 마지막 전투를 평화롭게 마무리한 진시황은, 천하 제 일인자로서의 국량을 과시하기 위해 제나라 포로들을 관대하게 대하면서 그들에게 주연을 베풀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진시황은 제나라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통일 천하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조언을 구한다고 하면서 제각기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일어나서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진시황은 왕분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항복하지 않은 장수가 한 명 있었다지? 그 장수를 이리로 끌고 오라. 내 직접 만나보리라.”

곧 초로의 장수 한 명이 결박당한 채 진시황 앞으로 끌려 나왔다.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진시황을 향해 꼿꼿하게 선 채 진시황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진시황은 병사들에게 서불의 포승을 풀어주게 했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는가? 그대의 충정은 내 모르는 것이 아니나,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알아야 되지 않는가? 그래, 어디 당신의 생각을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 도대체 왜 그렇게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건가? 나는 단 한 명도 희생시키지 않고 나의 마지막 전투를 마무리하고 싶네.” 

서불은 꼼짝도 않고 서서 진시황을 노려보며 말했다.

“예전 우리 제나라가 강성하던 시절에 사마양저(司馬穰苴)라는 장군이 있었소. 그 장군께서는 이런 말을 남겼소.

 ‘장군은 명을 받은 날부터 집안일을 잊어야 한다(將受命之日則忘其家)’, 

‘전투에 임해 약속을 하면 부모를 잊어야 한다(臨軍約束則忘其親)’, 

‘북소리가 울리고 전황이 급박해지면 자신의 몸을 잊어야 한다(鼓之急則忘其身)’. 

나는 우리 임금의 명을 받아 전투에 임한 장수요. 어찌 내 한 몸의 안위를 도모해서 항복할 수 있겠소.? 전쟁에 진 장수에게는 죽음이 있을 뿐이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죽여주시오!”

조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뜻을 말하는 서불을 진시황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진시황은 주위를 둘러보며 노기를 억누른 채 말했다.

“하찮은 일개 장수 한 명 때문에, 오늘같이 중요한 날 분위기를 흐릴 필요는 없지.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으니 일단 다시 가두어 두어라.”     


그날 밤,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가 파한 뒤 진시황은 자신의 처소로 서불을 불렀다.

진시황은 미리 명령을 내려 서불을 목욕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게 해 두었기 때문에, 비록 끌려온 몸이기는 했지만 서불은 이목이 수려한 선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진시황과 마주 앉은 서불은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진시황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나는 그대와 같이 충성스러운 신하를 둔 제나라 왕이 부럽소. 나에게 신하가 없지 않으나 그대만 한 충성심을 가진 신하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말이오. 내 오늘 그대를 보니, 예전에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 흉노족을 막아내던 장군 완옹중(阮翁仲) 생각이 더욱 간절하오.”

진시황은 몸을 반쯤 일으켜 탁자 앞으로 손을 뻗더니 서불의 손을 마주 잡았다.

서불도 진시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진시황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가 진정 나에게 항복하지 않을 작정이었다면 얼마든지 자결할 시간도 있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에게 항복할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오? 그렇지 않소?”

서불은 진시황을 바라보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일찍이 천문(天文)을 조금 배운 적이 있소. 

그런데 진나라를 관장하는 귀성(鬼星)과 유성(柳星)이 아직 광채를 뿜으며 왕성하게 빛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진나라의 운세는 아직 한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소.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 듯, 진나라의 운세도 곧 다할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오. 만약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기필코 복수를 하리라는 생각으로 자결하지 않았을 뿐이오.”

진시황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서불을 바라보다가, 호위무사를 불러 말했다.

“귀한 분이시다. 객사를 마련하여 편히 쉬게 해 드려라.”

말은 호위무사에게 하고 있었지만, 진시황의 눈길은 여전히 서불을 향해 있었다. 그러고 서불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내일 저녁에 또 만납시다.”

서불도 진시황을 향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당신의 포로이니 말이오. 하지만 난 이제 내 할 말을 다했으니 그저 죽음을 기다릴 뿐이오.”  

   

진시황은 밤마다 서불을 불렀으나, 서불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고 앉은 채 진시황의 말을 듣기만 하다가 돌아갔다.

두 사람은 그러기를 이레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이레가 되던 날 밤 서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직은 이 세상에 당신의 운수가 남아 있소. 그러나 그렇게 길지는 않소.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이토록 공을 들이시니, 그 정성에 감복해 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나도 어쩔 수가 없소.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하오. 이왕 망한 나라의 신하로 죽지도 못하고 살아남았으니 세상을 위해 내 힘을 쏟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오. 

하지만 내게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진시황은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그대가 내 사람이 되어준다면 내 무슨 짓이든지 하리다. 얼른 말해 보시오!”

서불은 잠시 진시황의 눈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 천하통일을 이루었으니, 더 이상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오. 이 땅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바랄 것이오. 그러니 앞으로 더 이상 서로 피를 흘리는 일을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는 확실한 조치를 내리시오. 그 조치가 믿을 만하면 나도 당신을 위해, 통일 천하를 위해 이 한 몸 아낌없이 바칠 수 있을 것이오.”

진시황은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좋소. 내 내일 당장 조칙을 내려 그대의 마음을 안심시켜 드리겠소. 내 이미 생각해 둔 계책이 있으니, 아무 염려 마시고 내일 밤에 다시 만납시다.”

진시황은 말을 마치고도 파안대소를 그치지 않은 채 이리저리 방 안을 돌아다녔다.

서불은 아무 말 없이 그러한 진시황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진시황의 조치를 알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방문이 성문 앞에 붙었다.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今後絶無互相流血之事, 故將收天下之兵, 銷鋒鍉而鑄以爲金人. 

지금부터 절대로 서로 피를 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장차 천하의 병기를 모두 모아다가 칼과 활촉을 녹인 다음, 그것으로 사람 모양의 형상을 만들 것이다.     


그날 밤.

서불이 또다시 진시황의 처소로 들어왔다. 서불은 진시황을 향해 깊이 읍을 하여 예를 표한 다음 진시황을 향해 엎드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하가 왕을 대하는 공손한 태도였다.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그토록 애를 쓰시니, 이제 오히려 소인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의 진심에 진심으로 감복했으니,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되었든 이 한 몸 다 바쳐서 보필할 것을 맹서 합니다. 

폐하께서는 그토록 원하시던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룩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무슨 일을 할 작정이신지요? 

입만 열면 내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는 신하가 눈앞에 늘어서 있고, 

입을 즐겁게 하는 산해진미는 폐하의 위장이 작은 것을 한스럽게 여기도록 할 뿐이고, 

아름다운 궁녀는 폐하의 신체가 더 강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도록 할 뿐일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창고에는 금은보화가 가득 쌓여서, 들어가는 문은 있어도 사방 벽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이옵니다. 

굳이 잔치를 열지 않아도 폐하의 귀를 즐겁게 해 줄 종고관현(鍾鼓管絃)이 사방에서 따르고 있습니다.

페하께서는 지금껏 진정 이것들을 얻기 위해서 살아오셨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폐하의 뜻은 분명코 다른 데에 있을 것입니다. 

이제 천하통일의 패업을 이룩하였으니, 폐하께서 진정을 하시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진시황은 웃음 띤 얼굴로 서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눈길은 그대로 둔 채 큰소리로 외쳤다.

“밖에 누구 없느냐? 

이 좋은 밤에 술 한잔이 없어서야 되겠느냐? 

내 오늘 밤 새 친구를 만난 기쁨을 억누를 수 없구나. 

맑은술 한잔으로 나의 벗을 환영하고 싶도다!”     


진시황이 벗이라 부른 그는 제나라 낭야(琅琊) 출신으로 이름은 서불(徐市)이라 했다. 부친은 조나라에서 미관말직으로 벼슬을 하다가 제나라로 망명한 서검영(徐劍英)이다. 기원전 266년에 태어났으니 진시황보다 일곱 살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출중하여 통달하지 못한 분야가 없었다. 의학, 천문, 지리, 기상 등은 물론이고 바닷가에서 자란 탓에 항해술은 자연스럽게 익혔다.

진시황은 서불을 가까이 와서 앉게 했다.

두 사람의 무릎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진시황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나를 아는가?”

서불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오나, 폐하의 일생을 미루어보아 하시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감히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오히려 진시황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뭔가?”

서불은 두 손을 바닥에 짚고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미 이 땅은 모두 가지셨으니, 이제 이 땅이 아닌 곳을 보고 계시지나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시황은 속으로 흠칫 놀랐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뭔 소린가? 나도 모르는 소리를 하니, 흥미롭긴 하구나. 어디 한번 들어나 볼 수 있을까? 자, 우선 고개를 들고…….”     


서불이 진시황의 처소를 물러나온 것은 첫닭이 울고 난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서불은 옆에서 보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한 점의 취기도 없었고 아무런 피로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두 사람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무슨 얘기를 주고받은 것일까?    

 

이튿날 아침.

모든 벼슬을 버린 평복 차림의 서불은 조촐한 행장을 꾸려 필마로 자신의 고향 낭야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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