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八年
始皇東行郡縣, …… 南登琅琊 大樂之 留三月 乃徙黔首三萬戶琅琊臺下復十二歲.
作琅琊臺 立石刻 頌秦德 明得意.
-司馬遷 <史記·秦始皇 本紀>-
진시황 28년
진시황이 동쪽으로 군현을 순수하였다. ……. 남쪽으로 가서 낭야산에 올라 대단히 기뻐하며 석 달을 머물렀고 3만 호의 백성을 낭야대 아래로 이주시켜 12년간 세금을 면제해주었다.
낭야대를 짓고 비석을 세워 진나라의 덕을 기렸으며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마천 <사기·진시황 본기>-
진시황 28년이라면 천하통일의 마지막 전투가 끝난 지 2년이 흐른 후다.
진시황은 이미 한 해 전에 농서(隴西)와 북지(北地) 지역을 둘러본 후 금년에는 동쪽 옛 제나라 땅을 순수하고 있었다.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낸 다음, 진시황은 곧바로 낭야를 향했다. 낭야는 서불의 고향이며 지금 그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진시황의 어가가 낭야에 도착하고 행궁이 채 갖추어지기도 전에 서불이 진시황 앞에 불려 왔다.
2년 만의 해후였다.
서불은 진시황 앞에 엎드려 정중히 신하의 예를 표했다.
하지만 진시황은 서불에게 일어서도 좋다는 말도 하지 않고 바로 그에게로 다가가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소?
나는 그대와 헤어진 후로 줄곧 그대의 소식을 궁금해하면서 지냈는데, 어찌 그리 한 줄 소식도 없이 이 궁벽한 시골에 파묻혀 지낼 수 있단 말이오?
내가 이번에 굳이 이곳에 오려고 했던 이유는 그대를 만나 꼭 선물을 주고 싶어서였소.
혹시 불편한 점이 있으면 내게 말을 하시오. 내가 뭔가 해주고 싶어서 그러오!”
서불은 다시 한번 허리를 굽히면서 말했다.
“감사하옵니다.
신이 이곳에 와서 보니 곳곳에 아직 전생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흔적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 여건도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불철주야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을에 추수를 끝내고 세금을 제하면 입에 풀칠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이곳 백성들의 실상입니다.
옛날 순임금이 순수를 하실 적에는, 봄이면 백성들의 농사를 살펴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 주었고, 가을이면 세금을 줄여서 모자란 식량에 보태게 하였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순임금의 행차가 자기 고을에 이르기를 목을 빼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나라가 쇠약해지고 제후(諸侯)들이 할거한 후로는 그런 일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후를 호위하는 군사들이 백성들의 식량을 빼앗아 먹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곳 백성들은 폐하의 행차를 보고 근심하는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선물을 주신다면 제가 아니라 이곳에 사는 백성들에게 황제의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태평성대가 도래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시황은 잠시 말없이 서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깊이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는 항상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구먼.
내 이미 천하의 전쟁을 없애기 위해 모든 병기를 다 녹여 없애지 않았소? 그걸로 백성들이 이미 편안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대의 말을 들어보니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따름이오.
오늘부터 이 낭야 일대의 모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다 한 곳으로 모으시오.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집을 지어주고, 농토가 없는 사람에게는 농토를 주겠소. 그리고 앞으로 십이 년 동안 모든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도록 하겠소? 자! 어떻소? 또 원하는 건 없소?”
진시황은 평온한 미소를 머금은 채 서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불은 깊이 허리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니옵니다. 폐하! 이미 폐하의 덕을 세상에 펼치셨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저 미천한 이 몸을 온전히 다 바쳐서라도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기를 원할 뿐이옵니다.”
진시황은 몸을 슬쩍 돌려 서불을 지나치면서 곁눈으로 서불을 쳐다보고 난 뒤 말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이제 당신 차례요. 당신은 나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소? 어디 한번 말을 해보시오!”
그 말 한마디에 주위의 시선이 일제히 서불에게 쏠렸다.
서불은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말했다
“폐하께서 이 통일 천하를 더욱더 오래도록 잘 다스리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폐하의 무병장수를 위한 불로초(不老草)를 구해 오고자 합니다. 불로초를 구해 오는 일을 저에게 맡겨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순간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서불에 대해 실망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모두의 얼굴에는 ‘또 불로초 타령인가’하는 짜증 섞인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지 않아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한 진시황의 집념이 아직 줄어들지 않아 세상이 뒤숭숭한 참인데, 그 일을 말리기는커녕 서불이 자진해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모습에 모두가 실망한 것이다.
하지만 진시황만은 달랐다.
“허허, 이거야 원! 고맙기 이를 데 없구먼! 아니, 그래 불로초를 찾아올 복안이라도 있소? 내 그동안 불로초라고 불리는 약재를 수도 없이 먹어왔지만, 아직 이렇다 할 효험을 느끼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이르렀소. 새삼스럽게 또 무슨 불로초가 있다는 말씀이오?”
서불은 다시 말을 이었다.
“폐하! 제가 사는 이곳 낭야에는 예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다 건너 동쪽 신령스러운 땅에 불로초가 있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곳에는 세 개의 신령스러운 산이 있는데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洲山), 방장산(方丈山)이 그 이름입니다.
아직 아무도 가본 사람은 없으나, 맑은 날이면 이곳 낭야 앞바다에 그곳의 모습이 물 위에 어리곤 합니다.
늙은 제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폐하를 속이겠습니까?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불로초를 구해 와서 폐하의 무병장수를 기약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진시황은 한참 동안 말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진시황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진시황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좋소! 내 그대를 믿어보리다. 이 일을 위한 비용과 시간은 모두 그대의 뜻대로 하시오.
누구도 그대가 추진하는 일을 제지하지 못하도록 할 터이니, 그대는 꼭 이 일을 성사시키도록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