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에서 가을의 한가운데에 이르기까지 깨끗한 공기와 맑은 하늘과 형형색색의 구름으로 인해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너무 좋아하면 안 되는 건가? 미세먼지가 뿌옇게 하늘을 뒤덮었다. 중국에서 코로나 확진환자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인구가 천만도 안 되는 유럽과 남미의 나라들이 연일 천명 이상의 확진자 발생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한 일이다. 오후가 되자 바람이 많이 불어온다. 바람과 함께 먼지도 쓸려 가버려 점점 다시 깨끗한 공기와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어있어야 채울 수 있다. 물이 흘러가는 모양처럼 내 몸에 찌든 때들이 씻겨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 곳을 채울 것들이 몰려온다. 광범위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내게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이 발견한 문제의 시각과 그들이 해결하려는 방향을 보면서 나 역시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시각을 다듬고 해결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그게 오늘 하루 나를 사로잡은 생각이다.
감정의 찌꺼기들을 털어낸 곳에는 긍정적인 감정이 자리 잡는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 내가 읽고 있는 책과 듣고 있는 음악에 대한 기대,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단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평생에 걸쳐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매일매일 계단을 올라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는 것은 단순히 몸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에 대한 생각들이 자꾸 떠오른다. 독감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았는데 맞아야 할 것인지에서부터 과연 나는 비대면, 코로나, 디지털 전환시대에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만나고 있는 대부분의 환경은 대량생산시대, 산업사회에서 확립된 가치 기준과 그에 맞는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산업사회나 대량생산 시대의 사고방식과 철저하게 불화하면서 그 세월을 견뎌왔다.
조직이 원하는 대로 모나지 않게 살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에너지나 활력과 열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절망했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바보처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잘 가꾸어 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패턴으로 살거나 아니면 적당한 지점을 찾아 거기서 자신의 역량을 멈추는 일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를 통해 일상 속에서 자신이 만들어온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시키거나, BTS가 일상적인 삶의 가치를 지평 선위로 끌어올려 그 가치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을 때 나이와 지역과 계층을 불문하고 사람들이 호응한 것은 그들만이 가진 가치와 장점을 느끼고 공유하고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문화는 각자의 삶의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다. 나의 일상적인 삶 중 1/12 정도는 계단에 있다. 그 계단을 오르며 몸을 단련하던 시선이 조금씩 내면으로 향한다.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가치, 내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매일매일 탐구하게 된다.
계단 창문을 완전히 열어젖힐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에 미세먼지도 씻겨나갔다. 하늘에는 어느새 별들이 하나둘씩 떠서 팍팍한 나의 일상을 온화한 미소로 위로하고 있다.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한다. 몸과 마음은 같이 단련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따로 움직이지 않고 하나임을 되새겨본다.
(210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