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께서 아프기 시작한건 작년 5월이다. 진단 결과 뇌하수체 종양인데 다행히 양성이라고 판정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지만 어머님 연세를 고려할 때 수술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 이후 어머님을 태백에 혼자 계시게 해서는 안된다고 형제들이 생각했고 동생들과 우리집을 번갈아 가며 모셨다. 다리 수술을 받으신후 건강이 나빠지시면서 요양병원에 모셔둔지 8개월이다. 그사이 태백집은 색칠과 방수공사를 마치고 장마가 심하던 지난 여름 거의 두달동안 가보지 못했다. 기특하게도 아들이 당분간 태백집에서 지내겟다고 했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보디빌딩 유튜브채널 촬영겸 공기좋은 태백에서 운동할겸 간다는 거라 마음의 부담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병원에 계신 어머님도 항상 태백집 궁금해 하셨는데 아주 좋아하셨다.
역시 집은 사람이 살고 있어야 한다. 곰팡이와 벌레, 거미줄 제거하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았다. 태백에 내려갈 때부터 이미 저녁 먹을 곳을 정한 터라, 한시 바삐 청소를 마무리하고 물닭갈비 집을 향했다. 주인 어르신 두 분이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는 바로 어머님 안부를 물어보시길래 그동안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안그래도 안오셔서 무슨 일이 있었겠구나라고 짐작만 하셨단다. 2인분을 주문하고 물끄러미 차려주신 음식이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사이 밑반찬이 등장했다. 여느 닭갈비집에서는 물김치와 무우 그리고 양배추 샐러드가 대부분이지만 이 가게는 정성스레 직접 담은 양배추 물김치, 비트를 넣은 무우 물김치, 오이와 고추 그리고 아주 잘 익은 된장, 사과샐러드, 마른 오징어 무침으로 물닭갈비가 익는 동안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양배추의 아삭한 식감을 살리면서도 상큼하다. 양배추는 최근에 점점 그 매력에 빠지고 있는 식재료다. 더불어 위가 약해 자주 체하는 내 체질도 바꾸고 있다.
처음 물닭갈비를 먹기 시작한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고 차츰 그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이제는 전체 과정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우선 국물 한 술을 먹는다. 옅은 닭갈비 육수맛과 부추, 쑥갓, 파 내음이 고루 배어 있다. 바깥 어르신은 항상 손님들이 최적의 조건에서 음식을 드실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잘 하신다. 타이밍이 되었을 즈음 드시도록 안내하신다. 국물을 만드는 환경중 중요한 것이 냄비인데, 이 가게는 완전 무거운 무쇠솥을 사용하신다. 그러니 국물맛이 깊을 수 밖에 없다. 닭고기 스프, 닭계장, 삼계탕 등 닭을 사용한 요리들이 장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닭갈비 육수는 은은하게 인스턴트 음식에 상처난 위와 장을 다독여준다.
장내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연구 결과들은 활성글루텐이 포함되어 있는 음식들을 조금씩 멀리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라면과 스낵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닭갈비에 넣는 사리도 고구마전분이 재료인 당면을 주문하게 된다. 당면은 탱탱한 식감이 일품이다. 당면과 쑥갓과 부추, 그리고 봄철이 되면 냉이가 등장하는데 같이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닭고기를 먹는다. 닭고기는 수입육계를 쓰면 좋겠다는 말이 입안에 맴돈다. 국내산들은 닭갈비를 겨우 뜯는 정도이나 브라질산 육계만 해도 살이 투실투실해서 먹을 게 많다. 그건 나의 영역이 아니므로 말씀드리지 않길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그리고 독립적인 응식으로서의 볶음밥을 먹는다. 먹다남은 당면과 쌀알이 잘 어울린다. 한번 더 바깥 사장님이 등장하신다. 밥알이 익는 모양과 소리를 주의 깊게 확인하신뒤 먹어도 좋다는 사인을 보내셨다. 절반정도 먹고난 뒤 한번 더 등장하셔서 주걱으로 바닥을 훑어 내신다. 그 꼬들꼬들한 식감 또한 아주 각별하다. 마지막 마무리는 식혜다. 직접 담으신 살얼음이 녹아있는 식혜는 아주 시원하다. 그리고 적당히 달아서 다른 음료를 찾을 필요가 없다. 항상 두 컵을 먹게된다.
두 분은 손님들이 음식먹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신다. 좋은 식재료에 따뜻한 마음으로 만든 음식이라 아주 편안하다. 간만에 멋진 식사를 마치고 다음에 곧 뵙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선다. 그동안의 섭섭한 마음이 눈녹듯이 사라진다. 산들바람이 빰을 스치고 지나간다. 태백의 날씨는 이미 가을에 들어와 있다.